미국노총 AFL-CIO:내부혁신의 실패와 노동제국주의의 부활

원영수(노동자의 힘 회원)

노동제국주의의 부활(?)

베네수엘라의 반차베스 쿠데타가 강력한 민중저항에 부딪혀 "2일천하"로 끝나면서 미국의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논쟁이 불붙었다. 그것은 이번 쿠데타 과정에서 미국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2년간 미국노총 AFL-CIO의 국제사업기구인 미국 노동자국제연대센터(American Center for International Labor Solidarity, ACILS)가 보수적 레이건 정권 하에서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증진"한다는 명분으로 창설된 전국민주기금(NED)의 자금을 베네수엘라 노동총동맹(CTV)에 적지 않게 지원하였다. 또한 AFL-CIO는 노동자 권리의 보호라는 미명아래 차베스 정권의 사회개혁에 저항하고 있던 CTV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과두정치세력의 한 축 민주행동당의 외곽조직인 베네수엘라 노동자총동맹(CTV)은 쿠데타와의 직접적 관련을 부인하였지만, CTV가 자본가단체인 페데카마라스(Fedecamaras)의 "반동적 총파업 선언"에 동참하여 반차베스 시위의 확산과 쿠데타의 성공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냉전시기, CIA의 협력파트너로서 AFL-CIO가 세계 각지에서, 특히 남미전역에서 반노동자적 노동조합을 조직-지원함으로써 미국 제국주의의 선봉대 역할을 했던 구시대 노동조합의 악습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행위였다. 이에 현장활동가들을 중심으로 AFL-CIO에서 노동제국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1995년의 '궁정혁명' - 미국 노동운동 혁신의 희망

지난 1995년 미국노총인 AFL-CIO 총회에서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냉전시대 독일-일본의 노동조합과 함께 국제자유노련(ICFTU)의 주축을 이루면서 반공주의의 선봉에 나섰던 레인 커클랜드 지도부가 사퇴한 후, 그 후계자 도너휴에 맞서 서비스노조(SEIU) 위원장 존 스위니를 필두로 한 새로운 목소리(New Voices) 지도부가 당선되었다.
일반 조합원들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활동가들도 신자유주의 공세에 20여년간 양보교섭과 무기력한 대응으로 침체한 미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개혁과 혁신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했다. 냉전시대 CIA 공작의 보조도구로 전락했던 국제부를 정리하고, 조직의 재정과 역량을 조직화에 집중하겠다는 스위니 위원장의 선언은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1980년 항공관제사 파업(PATCO)의 패배와 중부 전쟁지역(War Zone)에서의 연이은 패배로 침체한 국면에서, 1997년 여름 스위니 지도부를 지원했던 '팀스터 노조'(트럭운송노조)의 UPS 파업은 미국 노동운동의 부활을 예고하는 투쟁이었다. 더욱이 1999년 시애틀 투쟁에는 노동조합이 적극 결합함으로써, 시애틀을 새로운 반지구화투쟁의 역사적 발원지로 위치지우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혁의 한계 - 관료주의와 비즈니스 조합주의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궁정혁명'은 단지 최고지도부 교체라는 위로부터의 혁명이기에, 위원장인 스위니 개인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근본적으로 미국 노동조합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비전이나 의사가 없었고, 여전히 기득권 세력, 특히 산별노조 지도부와의 협력을 필요로 했다.
이와 같은 한계는 시애틀 투쟁에서 노동조합 대오의 기회주의적 투쟁회피와 곧 이어진 2000년 4월 워싱턴의 반세계은행-반IMF 투쟁에 조직동원을 거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위원장의 진보적-개혁적 언사에서 불구하고, AFL-CIO의 뿌리깊은 관료주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질적 권력을 가진 산별노조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과 막대한 재정을 독점한 부패관료들의 아성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진영의 붕괴로 투쟁해야 할 대상이 사라지면서 낡은 반공주의 논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지만, 수십년을 유지해온 노자협조주의와 실리주의 관행은 여전히 미국 노동조합의 변함없는 생존논리이자 일상이었다. 노동조합 자체가 비즈니스인 미국적 상황에서, 수십만불의 연봉, 수많은 혜택과 이권, 자가용비행기와 호화별장으로 상징되는 관료적 특권층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파산한 궁정혁명 -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혁신의 힘 필요

부분적인 개혁의 성과와 낡은 관행 사이에서 동요하던 AFL-CIO 지도부에게 9.11 테러공격은 정치적 결정타였다. 테러의 충격 속에서 미국 노조는 반동적 애국주의 흐름에 굴복하여, 부시정권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선언하였다.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심으로 한 대중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 스위니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한 네탄야후 전총리와 만남으로써 일반 조합원으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거기에 베네수엘라 노조에 대한 지원공작에 이르면서, 미국 노동운동의 궁정혁명은 전면적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관료주의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아래로부터의 투쟁은 양보교섭과 비즈니스 조합주의를 바꾸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일부 노조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를 넘어, 공화당에 추파를 던지고 있으며, 한때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내걸었던 미국노동당은 개점휴업 상태다.
비록 미약하더라도, 거대한 관료주의와 무기력한 정치적 좌파 사이의 틈새를 뚫고 현장의 투쟁은 끊임없이 조직되고 있으며, 관료주의의 사슬을 끊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우려는 현장조직의 흐름도 존재한다. 그리고 시애틀 이후 직접행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청년과 학생들의 운동도 노동조합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비록 1995년 스위니 혁명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지만,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의 동력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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