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택(노동자의 힘 선전위원장)
6.13 지방선거 결과의 정치적 의미
이번 2002 전국동시지방선거 결과가 드러났다. 한국사회 전체계급세력관계로 볼 때 이번 지방선거의 초점은 지배분파 사이의 세력 역관계가 어떻게 표출될 것인가에 모아져 있었다. 특히 민주당의, 이른바 '게이트'와 '3홍'으로 얼룩진, 부패와 비리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그 직전에 일기 시작한 '노무현 현상'을 거부할 것인지 아니면 수렴될 것인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일전에 '노무현 현상'이 표면적으로는 기성 제도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불만이 표출된 것이지만 이의 사회경제적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거부가 놓여 있기 때문에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신호탄으로 읽은 바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한국사회 전체가 좌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렇다면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우리의 이와 같은 파악에서 볼 때 과연 어떤 해석이 가능한가?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한 속에서, 또한 월드컵의 열기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는 속에서, 비록 정당명부 투표가 갖는 정치적 긴장이 대선의 그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녹색평화당은 놔두고라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을 선택한 대중이 합해서 10%에 이르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배세력들조차 비록 민주당의 참패와 한나라당의 압승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맞이했다. 이는 선거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사회당 또한 득표율로는 지배세력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며,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민주노동당의 약진에 가려졌지만 이전 노동자 민중진영이 대선에서 얻은 득표율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당연히 민주노동당의 약진과 사회당의 선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한국사회 전체가 좌선회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여야 한다. 보수 언론이나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과 노무현조차 '노무현 현상'이 수그러들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철저히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노무현 현상'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보수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노무현으로부터의 이탈이 한나라당 또는 이회창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노무현으로부터의 이탈은 노무현에 실망한 '노무현 현상'의 소극적 표현이며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으로의 선회는 '노무현 현상'의 적극적 발로이다. 넓은 의미에서 자민련의 몰락도 '노무현 현상'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이 곧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에 대한 우리의 가치 판단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우리의 입장에서 노동자계급에게 민주노동당 또는 사회당의 노선과 정치활동에 참여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보여준 정치활동에 대한 그 어떤 정치적 지지나 비판과는 일단 무관한 것이다. 우리가 지적하고 있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을 선택한 대중은, 그들은 비록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을 선택적으로 지지한 것이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기존 보수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를 드러낸 것이라는 사실 자체이다. 그리고 이는 최소한 신자유주의 반대 대중투쟁이 낳은 결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정치 노선이나 강령 또는 선거 방침이나 공약과 정책은 이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의의를 가질 뿐이다. 물론 후보 선출 방식이나 인물이 미친 영향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만약 지난 발전노동자 투쟁과 같은 대중투쟁을 이번 선거와 결합시킬 수 있었다면 양적으로 지지율은 더 높아졌을 것이며, 질적으로는 그들을 단지 유권자의 지위에 머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로 조직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경향을 강화하는 대가를 지불하였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선거에서 이룩한 약진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마냥 즐거워 할 수는 없다. 비록 한국 사회 전체세력관계 속에서 이번 선거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올바로 자리매김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눈을 노동자 민중진영 내부로 돌려본다면 거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87년 이후 노동자대중이 투쟁을 통해 형성한 정치적 지위와 역할을 8.11%라는 수치로 치환시켰다. 이전까지의 2% 내외의 수치를 4배 이상으로 끌어올렸으며, 5%의 벽을 넘음으로써 정치 자금마저 받기에 이르렀지만 이러한 가시적 성과를 무색하게 하기에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8.11%라는 지지율 자체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따라서 지지율의 높고 낮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우리 역시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 의미를 결코 낮게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고무받고 있는 것은 지지율 자체, 즉 8.11%를 오로지 '높은' 수치로서만 평가하기 때문이지만 - 그런데 이는 부르주아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정치적 태도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8.11%가 낮은 지지율이 아니지만 그것이 노동자대중이 87년 이후 투쟁을 통해 형성한 정치적 지위와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그것이 설령 81.1%일지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 민중이 8.11%을 지지한 사실과 민주노동당이 그들을 수동적 유권자로 묶어 놓았다는 사실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민주노동당은 8.11%의 지지자들만 수동적 유권자로 묶어 놓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체(전체)를 수동적 유권자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130만을 넘어선 지지자들 사이에 의례 있을 수 있는 그 흔한 어떤 정치 축제도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붉은 악마'가 보여준 자발성은 고사하고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는 '커밍 아웃'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현실에서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 경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과 맞물려 있다. 선거 직후 민주노동당이 성명을 통해 "'진보진영의 단일한 대선후보를 추대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추진기구'를 구성해서 본격적인 대선활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한 데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게서 어떤 투쟁을 조직하겠다는 것을 듣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망하다. 민주노동당은 8.11%의 지지를 얻는 대신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편 사회당도 이점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사회당은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에서 - 사회당이 주장하고 있는 스스로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 자신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강변하고 있지만 노동자계급의 주체 형성 과정을 강단에서의 정치학 또는 교육학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이 아무리 현실 투쟁에 개입하고 그것도 매우 헌신적으로 결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현재로서는 많은 부분 현실 역량과 조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민주노동당이 입으로만 투쟁을 말하는 것에 비해 사회당은 이를 몸으로 말하고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은 투쟁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라는 기댈 곳이 별도로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사이에 그 어떤 심오한 정치적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그 차이를 단번에 무색하게 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사회당 역시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 경향에 기울어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사회당은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경향과 분명한 일선을 그어야 한다. 우리 역시 여러 번 밝히고 있지만 선거 참여 또는 선거 전술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토대를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노선 때문이 아니라 정치 역량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를 반드시 경과할 필요 없이 곧 바로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또는 달려나가야 하는 정치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우리는 배제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해 의회주의와 조합주의가 만개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번 지방 선거를 계기로 드디어 한국 사회에서도 보수 정파 일색의 정치지형에 일대 균열이 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비록 선거 행위가 계급세력관계를 있는 그대로 또는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되거나 굴절될 수 있되, 그와 전혀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 또한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도 노동자 민중진영의 일부가 - 그 일부가 현재로서는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 이제 스스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의회주의 정치세력으로 상존하는 정치환경이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연동하여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도 현재로서는 조합주의 경향이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동조합운동의 조합주의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한 테제로서 제기되었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역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조합주의 경향을 더욱 부채질하는 하나의 조건으로 등장한 것이다. 보다 정확한 진술은 민주노동당의 탄생과 전개 과정이 이미 민주노총의 조합주의화 경향에 바탕 한 것이었으며, 이제 그 영향이 역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의회주의와 조합주의가 만개한다는 것은 곧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는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의회주의와 조합주의가 만개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경향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자 중에는 결국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나서야 그들에 대한 대중적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이야말로 무책임한 태도일뿐더러 패배주의의 소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번 지방 선거 결과가 보여주고 있는 정치적 의미의 핵심은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 재편의 흐름에서 분명 좌선회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 경향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자대중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직접적인 대중투쟁을 '투쟁의 독재'로 삼아 이 힘에 기초하여 노동자계급 주체를 형성하고 동시에 타계급에 대한 정치력을 발휘할 것에 동의하는 노동자대중은 대중의 좌선회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켜 나가는 정치활동을 정력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민주노동과 사회당을 지지한 10%를 결코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되며 이들을 수동적 지지자에서 적극적 주체로 끌어내는 것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의 몫이 아닌 바로 그들에게 비판적인 정치세력이 짊어져야 할 과제이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한국사회에서도 노동자계급은 선거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우리가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를 비판하는 것과 우리가 의회·선거 전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이는 실천적으로 검증 받아야 할 미래적 과제라는 것을 우리 역시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실패가 예견되고 있는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를 쫓는 것은 우리 자신과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신 행위이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세력화 방식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선험적으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의회주의적 정치세력화의 길을 가지 않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우리는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투쟁에 근거한 정치세력화를 끈질기게 추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담당할 수 있는 부대로서의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당면 정치적·조직적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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