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노동자의 힘 정책위원)
반복되는 '진보진영 대통합'의 환상
지난 7월16일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10개 주요단체 지도부는 '2002 대선 승리를 위한 범진보진영 주요단체 지도부 간담회'에서 7개항에 합의하였다. 그것의 핵심 내용은 '2002년 대선승리와 범진보진영 단일후보 선출을 위한 범국민추진기구(이하 '범추')를 8월 말까지 구성하고, 예비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선출하며, 그 후보는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출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범추'를 '명실상부한 진보진영의 대선기구'로 위치 짓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제안해서 합의한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선에 민중진영의 공동 대응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위와 같은 행보가 민중진영의 공동 대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며, 더 나아가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와 대중운동을 계급적·민주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현 정세에서 노동자·민중 진영에 부여된 최대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고용불안, 부정부패, 정쟁 등으로 인해 터져 나오고 있는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다시금 '선거'를 통해서 무마하거나 새롭게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지배계급의 의도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보수일색인 정치지형을 노동자·민중의 주도로 재편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진영의 공동대응이 필요하지만, 노선 상의 차이에 대해서는 대중에게 분명히 밝히고, 대중적 투쟁과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대중과의 직접적 관계 속에서 풀려나가야 함을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러한 연장선 위에서 민주노동당이 지난 해와 올해 초에 주장했던 '진보정당 재창당' '진보진영 대통합' '후보단일화' 등의 주장과 제안에 대해 현실의 노동자·민중진영의 공동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을 어렵게 만드는 '정파적 주장'이라고 한 바가 있다. 그들의 제안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진행하겠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이 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지자체 선거의 결과 '제3당'으로 등장한 것에 고무받아서인지 계속해서 같은 제안을 되풀이하고 있다. 결국에는 민중진영 주요단체의 지도부 합의의 결과로 '범진보진영 후보 단일화'와 그것을 위한 '공동대응기구의 건설'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앞으로의 과정이 지속될 경우 '대중적 실천'으로 가기보다는 주요 단체의 상층 지도부간의 '합의'에 그치는 형식적 대응에 그칠 것이며, 그 결과 노동자·민중진영에 부여된 과제를 한걸음이라도 앞당겨 수행하는 결과를 낳기보다는 왜곡과 후퇴의 길을 밟게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는 단지 민주노동당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대중을 포함한 노동자 민중진영 전반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제도 정치권에서조차 제3당으로 부상할 정도로 일반 대중에게는 노동자·민중진영을 표현하고 있는 '유력세력'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민주노동당 후보를 밀어달라'고 하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시행한 '국민경선제'가 '참여민주주의'와 '정치개혁'을 향한 획기적인 출발이라는 보수정치권과 소장 정치학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그것의 실제 모습은 결국 국민들을 또 한번 부르주아 부패정치와 관료정치의 들러리로, 국민을 '정치의 관객'으로 전락시키고 있음이 국민경선 이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행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노풍' 현상이 나타난 것이나 그것이 퇴조하게 된 것도 사실은 노동자·민중의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반발과 저항'을 동일한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경선'이라는 제도가 '노풍'을 불러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이를 '패러디'하여 이를 노동자·민중진영의 공동 실천의 유력한 기제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노동자·민중정치를 일구어나가야 할 정치세력이 부르주아 정치기제를 답습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결국 노동자·민중의 정치 열망을 단순히 '표'로서 확인하는 것일 뿐 공동 실천을 향한 징검다리역할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민주노동당에 의해 지금 주로 거론되고 있는 '예비경선' '국민경선'은 민주노동당 당원뿐만 아니라 운동진영 전반의 민주적·대중적 논의와 참여를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의지의 표상이라기보다는 대국민적 이미지 창출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이를 노동자·민중진영의 대선에 대한 공동대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설정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노동자·민중진영 내에서 민주적 결정과 절차, 그리고 공동대응을 위한 실천의 과정에서 '복수후보'의 출현 시 이를 단일화하기 위한 절차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차후의 문제이지 결코 선결 과제가 될 수 없다. 대선에 대한 대응은 '후보선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와 '후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범진보진영 대선 대응의 기조는 결국 노동자·민중운동의 정체성을 흐리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된다. 민주노동당이 추진하고 있는 '범진보진영 원탁회의'와 구성하려는 '범추'의 제안 대상 단체에는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노골적으로 지지했거나, 보조했던 세력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보수정당에 몸을 담으려고 지속적으로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세력과 반노동자적인 '노동법 개악'에 합의했던 당사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먼저 선거대응의 내용적 기조와 정책을 세우고 그것에 동의하는 세력을 모으는 것이 상식이지 않는가? 최소한 민주노동당 스스로도 '정책정당'임을 누누이 강조해 오고 있던 바이지 않았던가? '범진보진영'에는 신자유주의 세력까지 포함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표'를 위해서 노동자·민중운동이 추구했던 투쟁의 지향점과 요구 내용은 훼손되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지자체 선거 당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 말 그대로 '표'로써 심판 받았다는 것을 벌써 잊어버렸는가? 또한 7월16일 합의결과를 보면 '범추'를 명실상부한 진보진영의 대선기구로 만들자고 하면서 결국에는 '후보선출기구'로 위상을 설정하고 있으며, 또한 그 후보는 '진보정당의 후보'라고 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대선 대응이 골자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노동자·민중진영의 대선 공동대응을 위한 제안은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하는데 대중적(?) 명분을 얻기 위한 형식적 절차일 뿐이며, 이는 결국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의 '국민경선'에서 국민이 그 과정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결국 '관객'으로 전락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으며, 노동자·민중진영의 제 세력과 단체를 민주노동당의 들러리로 세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민주노동당 후원회'를 광범위하게 꾸리거나, 제 노동자·민중 세력을 향하여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훨씬 솔직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노동자·민중진영은 지배세력에 대응하는 하나의 '세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결코 하나의 '조직'은 아니다. 그 '세력'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는 기제는 '지지'나 '표'가 아닌 '투쟁'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제안대로 향후 대선 대응이 가시화되었을 경우 '투쟁'은 뒷전에 밀려지고 기껏해야 '표'를 얻기 위한 의례적 절차에 국한될 것이 뻔하다. 10여 개 단체 지도부 간담회 합의문의 4항에 있는 '2002 대선 승리를 위해 공동투쟁을 전개한다'는 내용은 그야말로 '문서'상의 내용일 뿐이거나,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된다. '표'는 '투쟁의 결과'임이 운동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소중한 교훈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지방선거에서 얻은 민주노동당의 8%는 그간의 노동자·민중투쟁의 결과이지 '선거운동'으로써 얻어진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결국 '선거'와 '투쟁'은 분리되며,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상상은 '선거'에 한정되어 버리고, 노동자·민중이 행한 정치적 행위는 '표'로만 표현되고, 결국 노동자·민중이 정치적 주체가 아니라 '정치의 관객' 말 그대로 '유권자'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 확실하다. 이는 결코 지나친 침소봉대가 아니다.
'단일후보'에 앞서 '공동투쟁대오'를 현실화하자
지금까지 이야기한 민주노동당의 제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대선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부정하기 위한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대선 공동대응을 가능하게 하고, 보다 노동자·민중진영의 과제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실질적 행동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경로와 실천은 무엇인가? 이번 대선은 향후 한국 정치지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권력의 재편기'라거나, 혹은 '친미보수수구세력과의 일대 격돌의 장'이 아니다. 그것은 주관적 바램일 수는 있어도 정세에 대한 과학적 판단은 아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는 여전히 잔존하고 그 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결과로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에 따른 불만과 저항의 일상화와 그에 덧붙여 부정부패로 얼룩진 보수정치권에 대한 전반적 거부 등은 대중적으로 만연해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이번 대선은 '지배체제의 위기'를 새로운(?) 지배권력의 창출로 극복하려 하거나 지연시키는 과정으로 위치지워질 가능성이 제일 크다. 대선 후보 선정을 둘러싼 보수정치권의 갈등과 경쟁은 지배체제의 불안정성을 표현하는 현상이기도 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선 정국을 보수정치권간의 경쟁구도로만 전환시켜 현 정세의 핵심인 노동과 자본간의 대립구도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적 역학구도와 기제는 '새로운 후보'가 등장한다고 해서 결정적 변화를 낳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구도를 변화시킬 흐름과 투쟁을 가시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 발전노동자의 사유화 매각반대 투쟁에서는 물론 '노풍'과 지자체 선거 결과에 의해 이러한 흐름이 형성될 가능성은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선에 대한 대응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폐해에 맞서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생활권을 사수하고 옹호하기 위한 투쟁의 연장선에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더욱 확장하고 공고히 하는 과정으로 위치지워야 한다. 올해 발전노동자의 사유화매각 반대투쟁에서 노동자·민중진영은 신자유주의 전략에 파열구를 내고 전민중적인 투쟁과 전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회를 놓친 바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노동배제, 노동축출, 불안정 노동층 양산, 국가기간산업의 사유화-해외매각 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이의 정치적 표현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압살 등 지배세력의 반민중적인 행태에 맞선 대중정치투쟁을 수행할 공동투쟁대오를 형성해야 한다. 이러한 공동투쟁대오는 선거시기에서는 공동선대본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투쟁대오를 형성하고 투쟁을 하는 속에서 공동 후보를 건설하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할 때만이 상층만의 협상이 아닌 대중적 합의와 결의 속에서 힘있는 선거투쟁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투쟁'과 '선거'를 분리하여 '투쟁'은 기층 대오와 '전국민중연대(준)'이 담당하고, '선거'는 '범추'(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이지만)가 담당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선거'를 '투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연장선이자, 투쟁의 일환으로서 배치해야 만이 향후 신자유주의 반대 전선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노동자·민중 정치 실현의 주체를 공고히 형성할 수 있다.
'공동투쟁'과 정치적 재조직화
우리는 그간 진보정당운동에 대해서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라고 비판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자·민중을 진정한 정치의 주체로 세우는 길이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민족주의 세력에 대해서도 노동자·민중이 가야할 정치적 길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그들과 우리 사이에 대선 공간에서 공동투쟁이 실현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투쟁을 통한 대선에서의 공동대응을 얘기하는 것은 현 정세 속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과 보수정치권에 맞선 노동자·민중투쟁의 구심을 형성하고 그 투쟁을 강화하고 풍부히 하는 것이 현 시기 정세의 핵심적인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자·민중의 올바른 정치적 진출 및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대중운동의 민주적·계급적 강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계급적 좌파의 정치적 재조직화'를 통한 전국적 정치조직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앞서 '진보진영의 대통합'을 비판했듯, '계급적 좌파진영의 정치적 재조직화'를 넘어 향후 계급운동의 진전을 위해 어떠한 정치적 실천과 전망을 만들어 나가느냐이다. 이를 위해 당장 맞닥뜨리고 있는 대선정국에서 좌파진영이 공동의 정치행동을 펼치는 것이 그것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계기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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