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농업논쟁’을 시작하자

‘한국 마늘협상 사기극’이 남긴 것

박창규/민주노동당 정책부장
2000년 7월 한-중 마늘협상과정에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하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은 통상교섭본부와 정부당국의 태도는 현재 농업에 대한 천대와 농민에 대한 무시풍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 재벌들도 시장지상주의 국가경쟁력 향상논리를 내세워 “장기적인 국가정책적 관점에서 농업부문을 과감히 포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등 기업의 이윤추구 중심 농업관을 주장하고 있다. 또 재경부의 고위관리는 “이제 식량안보 운운하며 사기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사석에서 공공연히 한다고 한다.

한편, 농민들은 1999년과 2000년에 중국산 마늘 수입으로 인한 마늘농가의 피해액이 각각 4~5천억원으로 추정되며, 실제 작목전환 등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피해를 본 타작물농가의 피해액까지 합하면 그 액수는 천문학적이라고 주장한다. 50만 마늘재배 농가는 연간 1백만원의 수입이 감소된 셈이다.

만약 연봉 1백만원을 내리는 임금협상안을 회사측에서 제시한다면 당연하게도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이 벌어진다고 할 때 농민들의 저항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농민들, 친농업적인 인식을 가진 도시생활인과 재벌·고위공직자들을 포함한 다수의 비농업인들 사이에 농업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이해관계, 전개방향에 대한 판단이 확연하게 다른 상황임을 볼 때, 이제 한국사회는 ‘농업논쟁’을 본격적으로 벌여야 할 때임이 분명하다.

과연 농업은 재벌들 주장처럼 국가경쟁력 때문에 포기해야 할 산업인가? 서구유럽과 일본의 예를 봐도 현재보다 농업의 산업규모와 인구가 줄어야 한다면 적정한 규모의 농업유지를 위해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 지난 WTO농업협상과정에서 유럽연합과 한국, 일본에 의해서 강력하게 제기된 환경보전과 식량안보유지 등 농업의 다원적 가치는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등등.

지난 24일 식량주권과 농업의 다원적 가치, 식품안전성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한국사회의 22개 주요단체들이 모여 ‘우리쌀 지키기 농업회생연대’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보다 질 좋고 안전한 급식을 먹이기 위해서, 환경친화형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 환경보전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고 도농간의 교류확대를 위해서, WTO체제에 대한 저항을 위해서 여러 단체들의 요구가 하나로 모아진 결과이다.

지난해 11월 WTO뉴라운드 농업분야 선언문에 따르면,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즉 세계농산물시장의 과잉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면 농업보조금을 감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선언문은 개발도상국 지위의 인정이 “협상의 모든 요소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이며, 개발도상국이 “식량안보와 농촌개발을 포함한 자국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또한 선언문은 “비교역적 관심사항(NTCs)에 주목하고, 농업협정에 규정된 대로 비교역적 관심사항이 고려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농업보호의 축소와 농업개방 불가피론은 일단 부정돼야 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국민적 차원에서 농업논쟁을 통해 농업의 가치와 사회적 필요성, 산업으로서의 농업의 규모와 농촌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며 이를 토대로 2004년 WTO뉴라운드 농업협상에 임할 협상전략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 98호] 7.29 ~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