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특구법안 저지 투쟁에 나서자!

류미경(투자협정 WTO반대 국민행동 사무국)

노동자 민중에 대한 총체적 공격, [경제특구법안]

지난 8월19일, 남한을 동북아의 물류 및 기업/금융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을 뒷받침한다는 [경제특별구역의지정및운영에관한법률안]이 입법예고되었다. 정기국회에 상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법안을 철회하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 법안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노동권-환경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무력화하고, 교육-의료부문의 공공성을 해치고 상업화를 부추기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제특별구역으로 지정되는 지역에 입주한 외국인투자기업은 [근로기준법]상의 '유급월차휴가'와 '유급생리휴가'에 관한 조항을 면제받을 수 있고, [파견법]상의 파견대상 제한 업종과 파견기간 제한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외국인 투자기업은 개발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사업 승인을 얻는 것만으로, 약 30여 가지에 이르는 환경관련 인허가 조치를 일괄 타결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경제특별구역 내에서는 외국인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사립학교법], [의료법]에 상관없이 외국인들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학교 및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기업들은 조세감면, 자금지원, 국공유지의 임차·매수 등 각종 혜택을 누리게 된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4년여 동안 해외투자자들에게 최적의 투자환경을 제공하고,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각종 조처들을 단행해왔다. 또한, 한국경제를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세계경제에 깊숙하게 편입시키기 위해,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약하는 것으로 지적된 각종 금융규제를 완화해왔다. 그 결과 초국적 자본은 국내에 투자할 시 세금감면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교육업 등 일부 투자금지항목, 공기업 등 투자지분 제한항목을 제외하고는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모두 개방되었다. 2단계에 걸친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를 통해 기업간, 개인간 외자의 유출입이 자유화되었다. 이 밖에도 현재 국회 비준 일정에 올라있는 '한일투자협정', 협상중인 '한미투자협정' 등 양자간 투자협정을 체결하여 해외투자자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손실이 없도록 '소유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한국사회를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의 발판이 되는 '신흥시장'으로 내주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더욱 적극적인 투자유인책이 필요하니, 노동권-환경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근거들을 모조리 포기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횡행하는 한국사회에서 '유급월차휴가'와 '유급생리휴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최소한이나마 지키는 조항이다. 근로자파견제가 중간착취를 용인하는 등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파견법에서는 그 대상과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법파견이 50%를 넘는 등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데 있어서 실효성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외국인투자자들에게 이러한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명시하는 것은, 투자유인책이 될만한 '극도로 유연한 노동력'을 양산하겠다는 것이다.

장밋빛 미래의 실상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 실현방안]은 특정도시를 이른바 '세계도시'로 개발, 외자유치를 촉진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미 인천국제공항과 부산항, 광양항을 동북아 물류 중심으로 만들고, 그 인근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인천공항 인근지역인 영종도, 송도, 김포매립지, 고양시는 각각 '국제적인 관광-레저단지', '국제 업무-지식 기반산업 중심지', '국제금융단지', '관광-숙박 전시단지'가 된다. 부산항 광양항 주변은 지방의 수출 및 물류 거점인 '자유무역지역'이 된다.
오늘날 해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데 관건이 되는 것은, 금융화된 초국적 자본이 선호하는 첨단 IT 산업 기반과, 금융 귀족들이 회합,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각종 레저 및 편의 시설 등의 서비스 기반, 그리고 이에 종사할 비정규, 불안정 노동층이다. 70년대 수출자유지대가 노동 3권이 적용되지 않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필요로 했다면, 오늘날 경제특구는 금융 귀족들의 소비를 충족시킬 하인노동을 제공하는 각종 비공식, 비정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경제특구법안]을 통해 경제특구 내에서 사실상 근로자 파견제를 자유화하고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실현방안]이 발표되자마자, 각 지자체는 경제특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수도권 중심으로만 금융시장, IT산업이 팽창하여 자금이 이곳으로만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중소기업의 연쇄부도, 지역 금융기관의 합병과 퇴출, 세수 부족 등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지라, 각 지자체는 노동통제, 조세감면, 자금지원 등의 '출혈'을 앞 다투어 감내하여, 자신의 지역으로 개발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특정 지역에 산업기반과 자금을 집중시켜 이를 발판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은, 지역간의 (출혈적)경쟁을 부추겨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치하게 되는 '해외직접투자'가 생산과 고용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현재 국내에 유입되고 있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성격은 생산과 고용을 늘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대부분 헐값에 나온 국내기업을 사거나, 지분을 인수하였다가 되파는 주식투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외자유치 가운데는 국내 자금이 해외 조세피난처의 역외펀드를 통해 들어오거나, 외국의 투기자본에 담보를 제공하고 들여오는 사실상 '해외차입'인 경우도 많다.

경제특구법안,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정부는 외자 유치만이 한국 경제가 살길이므로, 이에 따르는 다소간의 고통을 참을 것을 강요해왔다. 이제 [경제특구법안]의 도입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기업의 천국'으로 일컬어지는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이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데에는, 낮은 임금을 유지하는 데 앞장섰던 노동조합의 역할이 컸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 스스로의 위기를 (노동조합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에는 '국가 신인도'를 내세워 사상 초유의 정리해고를 단행하며 노동자 민중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더니, 이제는 동북아의 비즈니스 중심 국가가 되겠다는 장밋빛 환상을 내놓고는, '이것의 성공 여부가 모두 노동자들에게 달려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덩달아 전경련은, 특정 지역에 한정하여, 그리고 해외투자자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경제특구법안]이 역차별을 조장한다며, 그 범위를 전국으로, 그 대상을 국내기업에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아예 한국사회 전체를 '무법지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경제특구법안]이 아무런 보장 없는 미래를, 노동자 민중의 삶을 담보로 기약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민중의 삶을 파탄내고, 한국 사회를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상황으로 몰고 갈 [경제특구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시급히 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