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맑스 코뮤날레 조직위원회 결성 대회가!!

박영균(노동자의 힘 정책위원)


지난 9월28일 4시 숭실대 사회봉사관 3층에서는 한반도 남단에서 해방 정국 이후 최초로 소위 맑시스트를 자처하는 학술·문화계 인사 270명의 조직위원회 결성 대회가 열렸다. 공식 명칭은 '맑스 코뮤날레 조직위원회'이다. '코뮤날레'는 코뮌과 날레('- 축제의 해'라는 뜻)를 합성한 조어로서, 앞으로 이 역사적인 대회만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상임대표 김수행 교수를 비롯하여 오세철, 김진균, 홍근수 목사 등 10명의 공동 대표와 김세균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30여 명의 집행위원이 선출되고 규약이 축조심의를 거쳐 수정 통과되었다. 이로써 지난 5월 이후 준비되어 왔던 남한 최초의 맑시스트 학술·문화 대회가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 셈이다.

90년대 현실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지구화라는 반동은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남한의 혁명적 맑시즘의 전통을 '해체'하였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혁명적인 노동자 계급의 사상·이념인 맑시즘은 퇴조하였으며 노동자 계급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의 세계화에 밀려 각개격파 당해 왔다. 하지만 자본의 지배가 성하는 곳에서 맑스는 유령이 되어 부활한다. 바야흐로 전 세계 곳곳에 '하나의 유령'이 다시 휘몰아치는 '반격'의 기운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맑스코뮤날레' 그 자체가 만들어 내는 '유령'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현실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계급의 역사가 불러 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맑스 코뮤날레'는 90년대가 낳은 '해체'의 시대를 넘어가기 위한 '사다리'에 불과하다.

90년대 이후, 남한에서는 혁명적 지식인은 더 이상 '맑스'의 이름으로 불리워지지 않았다. 따라서 '혁명'은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 '지식인의 관념' 속에서, '이론의 틀' 안에서 전개되었다. 정치가 실종되었고 그들의 삶을 종속시키는 현실은 도외시되었다. 노동자 계급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동안에도 혁명적 지식인은 당분간 그들과 함께 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식을 최종적으로 지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 현실을 움직이고 바꾸어 갈 수 있는 '사회적 존재로서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그들이 멀어져 갔을 때, '해체'는 담론의 체계 안에 있었으며 그들 사이의 소통은 단절되었다. 오직 세계를 나름대로 해석하는 '지식인들의 담론'과 '언어의 유희'가 난무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낳는 현실과 이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 계급에 의해 다시 역전되길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회'가 다름 아닌 '맑스'의 이름으로 불리워진 '코뮤날레'라는 점에서 그것은 90년대를 넘어서 노동자 계급의 반세계화·반자본 투쟁의 사상적 기반과 '반격'의 방향을 예고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내년 5월1일 노동절에 맞추어 2박 3일(예정) 일정으로 열리게 될 '맑스 코뮤날레'는 이런 의미에서 맑스주의 학계 내적으로 보면 기간 단절되었던 80년대를 이어 각자 모색해 온 이론적 성과를 상호 소통하는 기간이 될 것이며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맑스'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시작되어야 할 자본과의 전쟁을 위한 사상·이론적 모색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노동자·민중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하며

물론 이번 '대회'가 지닌 한계는 명백하다. 그것은 학술·문화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맑스' 그 자신이 강단의 지식인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함께 한 실천적이고 혁명적인 지식인이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맑스'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완인 대회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학계와 문화계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 노동자 계급의 현상태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남한의 노동자 계급은 '맑스 코뮤날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이론을 강제하고 사상을 궁극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논리' 그 자체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론과 사상을 규정하는 것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투쟁과 그 속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삶을 강제하는 '현실'과 이것에 대항하는 '변혁적 실천'이다.

남한의 노동자·민중들은 이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시 '맑스'를, 마치 '예수'를 팔아먹는 '목사'처럼 자본과 권력 그리고 그 주구들이 팔아먹게 해서는 안 된다. '맑스'의 이름을 우리 자신의 역사로, 노동자 계급의 자랑스러운 존재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맑스의 현재성'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1차 대회가 비록 미완의 맑스 대회가 될 것이지만 '현재성'의 중심에 남한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맑스가 그토록 타개하고자 했던 현실을 전복시켜 가는 남한 노동자 계급의 위대한 투쟁의 역사를 말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맑스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왔던 이론적 성과를 노동자 계급 자신의 사상과 이론적 자양분으로 전유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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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 코뮤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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