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지난 23일 '청와대 6자회담'을 마치고 회담 결과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최근 국제적 이슈가 된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축으로 나뉜다. ‘전쟁의 축’과 ‘평화의 축’이 그것이다. 세계 최대 핵강국 미국은 북한의 확인되지 않은 핵무기 ‘개발 단계’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실상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7월 경제개혁 조치 이후 국제적으로 가시화된 ‘북한의 변화’는 한반도 정세가 평화 지향적으로 전개되는데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였다. 남북간 철도가 이어지고 비무장지대 지뢰가 제거되고 있다. 각급 차원의 남북 대화가 이뤄졌으며 미국을 제외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정상외교 등을 통한 대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이같은 평화 조성 분위기를 정면에서 거스르게 한 사건이 바로 북한의 핵 관련 문제에 대한 ‘미국의 발표’다. 발표의 배경을 놓고 미국 내 ‘상대적’ 매파들의 공작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남한의 통일부 장관도 미국의 상황왜곡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대한 영향력 축소를 우려한 미국의 견제 의도가 이번 사태의 심층에 도사리고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를 향해서 ‘고발’한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실성을 의심받고 있으며, 발표 이후 정세가 한반도의 평화 기류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면서 미국의 대응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볼 때 이같은 분석은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개획 시인’ 발표가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오고 있다. 미국은 당장 북한의 핵무기 보유, 제네바 합의 파기 등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평화적인 무장해제’를 내세우며 거세게 압박할 태세다. 야당과 다수 언론도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미국의 입장에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 일부의 국적 없는 대북 강경 입장이 평화적인 핵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당장 중요한 것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태의 배경과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계획 ‘시인’과 그 ‘배경’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미국의 명백한 증거 앞에 북한이 백기투항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이 이제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던 사항을 켈리의 면전에서 시인했다고 보기는 대단히 어렵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지지부진한 북미관계를 대화를 통해 일괄타결하기 위한 고강도 협상수단으로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최초 북한의 의도는 후자였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배경은 북한이 미국이 설치한 덫에 완전히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비공개 빅딜을 통해 북미간 현안을 일괄 타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고 관계 정상화 추진에 동의한다면, 핵개발 전면 중단 및 사찰 허용에 대해 협상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대내외적으로 호조건인 지금 핵검증 작업과 북한의 대미현안을 패키지로 빅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기본 입장은 빅딜이 아닌 현안 하나하나를 단계적 해결을 통해 해결하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 정부 내 대북강경세력이 언론을 통해 이를 공론화시킴으로써 북한의 운신 폭을 완전히 제약한 상태로 몰고 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제 북미간 관계는 미국이 완전히 주도권을 갖고 북한을 압박하는 지형으로 전환됐다.
여기서 미국의 대응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를 미국은 북한의 무장 해제와 핵프로그램의 폐기로 종식시키며, 이를 평화적·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대이라크 전쟁, 대테러 전쟁 등에 군사 및 외교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때문에 군사적 해결은 불가능에 가까운 수단이다.
미국의 평화적 해결 기조는 군사적 해결수단만을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외교적 ‘압박’, 즉 북한의 이해관계가 있는 모든 유관국가를 동원해 경제적, 외교적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제 북한은 재차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하는 가혹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1994년 핵위기보다 현재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당시 키를 쥐고 있던 클린턴 정부의 ‘연착륙 정책’에 비해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핵문제를 장기간 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내외적으로 북한의 긍정적인 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이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북한의 개혁·개방 조치는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우리의 대북포용정책 기조와 성과를 약화시키고, 차기정권의 대북정책 수행에도 상당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조건에서 우리사회 일각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적 없는 핵문제 대응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대응방식에 종속되기보다는 평화적인 해결의 주체로써 우리의 역할을 시급히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일단 핵문제와 기존 남북관계 개선문제를 분리시켜 진행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런 사태이다.
기존 남북관계 개선 프로그램을 지속시키고,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덫에 가둬놓고 완전히 발가벗기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북미간 현안을 쌍방이 일괄타결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지속적인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109호] 10.28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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