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권"과 "네티즌"이라는 현재 논쟁의 대립구도 자체는 내가 보기에 상당히 허구적이며,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어 생산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대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조차 국가장치들, 혹은 제도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작동은 당연히(!) 멈추지 않았다. 미디어는 미군에 의한 두 여중생의 압사사건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을 아무 상관도 없는 '월드컵 광풍'에 연결시키기 시작했고 동계올림픽 스케이트 게임에서의 부당한 판정에 대한 사람들의 일회적이고 비정치적인 불만의 표출과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채널링하면서, 싸움의 진정한 이슈들을 모호하게 만들고 대적전선을 흐트러 놓는데 성공했다.
미국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신세대, 생각하는 것을 그냥 뱉어놓고 보는 과감함을 가지고 있는 신세대, 동시에 조리있는 말들과 논리를 전개할줄 모르는 '사랑스런 무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세대가 나섰기 때문에 이 싸움이 가능해졌다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 개입한 한겨레21, 딴지일보 등의 선전선동은 너무나 시기 적절했고 그 효과는 가히 파괴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조작이 단지 이번 사태에 관련된 어떤 일회적인 것에 불과했다면 이와 같이 파괴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X세대, N세대, 386세대, 무슨 세대, 무슨 세대, 일일이 기억조차 할 수 없이 이름을 바꾸어 대면서, 대중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무능력한 존재로 표상하도록 조작해온 이러한 '세대'이데올로기는 10년이 넘도록 진보적인 정치운동들을 이 사회에서 주변화시키고 대중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동원되어온 이데올로기였으며, 가장 친숙한(!) 이데올로기로 성장해 나왔고,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신속하고 파괴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적들의 이데올로기적인 공세에 대해 소위 "운동권"이 전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문제는 깃발을 내리고 올리고가 아니다. 깃발을 내리면 어떤가? 그것이 진정한 문제인가? 깃발을 내리라는 요구들에 대해 "운동권"이 나르시시스트적으로 대응하고 그 요구들을 단지 페티부르주아적인 것으로 비난하면 할수록 적들의 이데올로기적인 공세(그것의 목적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운동권의 고립이다!)에 더욱 더 깊게 말려들 뿐인 것이다.
만일 집회의 형식이 달라져야 한다면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예컨대 산개해서 대중들과의 정치적인 논쟁들에 기꺼이 참여해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형식적인 것들에 있지 않다. 문제는 대중들의 내부로부터 쟁점들을 형성해낼 수 있는 "운동권"의 능력이다. 허구적인 민족적 자존심의 문제로 끊임없이 이 싸움의 쟁점을 흐려버리고 살해당한 두 명의 여중생들의 죽음이 월드컵 오노 사건과 다를바 없다는 식으로 몰고가려는 미디어의 정말 가증스럽고 기가찬 시도들에 대해서 국제주의적, 반전/평화주의적, 민주적인 관점을 대응시키고 경제자유구역법의 이슈, 이주노동자들의 이슈 등을 결합시켜 비어있는 이데올로기의 내용들을 채워냄으로써 대중들이 스스로 자신의 내부로부터 갈라져나오게 만들 수 있는 조직적이고 통일된 정치적인 실천들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운동권"은 적들의 이데올로기적 공세(특히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하거나, 반대로 대중의 외부에 동떨어져서 이제까지 싸움을 수행해온 것은 자신들이었다는 볼멘 소리나 내뱉는 무력함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그래서는 이 싸움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싸움의 형식을 과감히 바꿔내고 선전선동의 내용 및 행동지침을 명확히 마련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해 들어가자. 싸움을 지속시켜나가기 위해서 대중추수적으로 임하자는 말이 아니다. 싸움은 대중 속에서 대중을 관통해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하지만 대중은 결코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이나 동질적인 "세대"가 아니다.
필자는 뉴욕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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