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중늙은이가 집회현장에 안나가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집회에 참가했다. 5개월만이다. 지난 5월 조합을 나온 뒤 처음이다. 이참에 안좋아진 건강이나 챙기고 구십 다된 노모 돌보면서 생업에만 신경쓸 참이었다. 이참에 아예 노동운동 근처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난 5년 얼마나 고생했던가. 개인적으로 잃은 건 얼마였던가.
그래서 요 근자 노조가 당국으로부터 탄압 받을 때에도 남 보듯 했다. 지난날 노조는 나에게 종교이자 신앙이 아니었던가. 그런 노조가 핍박받는데도 애써 외면했었다.
그런데...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는데 바람이 너무 어수선하다. 자본과 권력의 음흉한 바람이다. 연이어 노동자가 죽어나는데 책임질 자본과 권력은 마이동풍이다. 어제 정부가 내놓은 노동대책이란 한마디로 사기다. 별 것 아닌 내용을 대책이라 내놓곤 끝에 빠트리지 않는다. '말 안 들으면 가만 안 놔둔다'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에 이르는 노동탄압의 헌칼. 너무 오래 써먹은 녹쓴 칼이다. 이제쯤 버릴 때도 되었는데 아직 버리지 못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우려 써먹고 있다.
권력과 자본은 순치의 관계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이가 없으면 입술이 서럽다. 그래서 둘은 궁합이 잘 맞는다. 부창부수. 노동자가 죽거나 말거나 예서 '얼씨구 하면 제서 좋다' 다.
영등포 경찰서장의 망언에 이어 경총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조직적으로 열사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민주노총에 도덕적인 흠집을 내려는 음험한 흉계들이다. 민주노총은 어제 '당신들은 재벌이 죽으라면 죽겠느냐'고 즉각 쏘아붙였다.
사람 목숨은 개개인 다 소중한 것이다. 노동자는 누가 죽으라면 그냥 죽는 파리 목숨이 아니다.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절박한 사정 때문이다. 이들의 죽음에는 비정한 샤일록의 손배소가 있었고 서러운 비정규직이 있었다.
나는 60평생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있지도 않은 손배소로 심각히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다.
지난 겨울이었다. 현장에서 임금체불이 생겼다. 노동자 수십명이 석달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건설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유형으로 하청이 노동자들에게 줄 노임을 가지고 날랐다. 노조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원청으로부터 손배소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면서 작업을 못한 손실분, 화목으로 손실된 목재 값 등 노조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게 그냥 흘러나온 말이지 당장 손배 가압류를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은근히 걱정되었다. 정말 만에 하나 손배 가압류가 나온다면! 나는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죽음. 분신이 떠올랐다. 너무 뜨겁겠지. 목을매? 오래전에 본 목맨 사람의 길게 늘어진 목. 타워에 올라가 투신? 수십년 일하면서 수십번 추락, 여기저기 병신 된 것만도 서러운데 죽을 때도 떨어져 죽어? 그보다 연세 많아 어린애같은 노모는 어쩌고.
나는 비교적 삶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생활력도 강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것이다. 전쟁 때, 풀빵 하나를 사먹기 위해 종일 역전의 기차 밑을 기어다니며 유리조각을 주웠을 정도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다. 늘 꿋꿋하게 살았다.
그런 내가 손배소에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예민했던 건 조직의 책임자 한사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가압류할 개뿔이나 무엇도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느긋할 텐데 문제는 손배소 가압류란 게 목적이 노조 죽이자고 있는 것인만큼 노조 간부들까지 피해가 가는 것이다. 조합 간부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은 조직의 책임자로 그보다 더한 자책감이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압류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간부들의 얼굴을 대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비정규직의 서러움>
역시 지난 겨울이다. 1월 중순인가. 조합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처리를 해주지 않는단다. 현장에 찾아갔더니 소장이란 사람이 산재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산재가 안되었다. 현장은 이미 철수되었고 약속했던 소장은 못해주겠다고 말을 바꾸는 게 아닌가. 자기들이 직접 고용한 근로자가 아니어서 못해주겠단다. 나쁜 인간들. 언제는 원청이 직접 고용했나.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에 직접 산재요청서를 제출했다. 그게 2월인데 산재 결정이 떨어진 건 5월이었다. 그리고 한달쯤 지나서야 휴업급여를 받게 되었다. 하루벌어 사는 건설노동자가 실로 반년만에 돈을 만져 보는 것이다. 그간 재해자 조합원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나? 반년씩이나 돈 구경을 못한 그 집은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각 흩어진채 가정이 깨지고 말았다.
지난 추석때, 연락이 왔다. 추석 바로 전날 그 재해자의 노모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명절이라 문상객 없는 상가에서 상주는 이렇게 말을 흐렸다. '마누라만 안나갔어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지 않을 건데...' 추석 다음날 상 나가던 이른 아침은 태풍 매미로 비가 억수로 오는데 관들 사람은 단지 세 사람, 이래저래 처연한 생각이 들면서 이 사람이 정규직이었으면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겹쳤다.
나는 솔직히 말해 평범한 노동자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자본과 권력이 횡포를 부리지 않는다면 평범한 노동자로 살아도 만족하는 별 욕심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본과 권력이 평범한 노동자로 살고 싶은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본과 권력은 잘못은 저들이 하면서 노동자만 탓한다. 모두 노동자 잘못이란다. 법을 안 지키는 것도 노동자요 나라 망치는 것도 노동자들이란다. 참 어이가 없다. 저들은 부당노동행위 하나 안 하는데, 정부는 관리감독 잘하는데 노동자들이 괜히 난리란다.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지 말라고 자본과 권력에 말하고 싶다. 지금 우리사회의 문제는 자본과 권력이 개과천선하지 않은데 있지 노동자들이 잘못하는 데 있지 않다. 먼저 사측은 법을 지키라고 권하고 싶다. 정부는 사측이 법을 지키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역시 권하고 싶다. 그리고 생각들을 좀 바꾸라고 권한다. 생각을 바꾸어 개혁을 좀 하라고 말이다.
쇠귀에 경읽기 같겠지만 정치자금은 일체 주지도 받지도 말고 만병의 근원인 사학을 개혁하라고. 또 하나 이것만은 귀 기울였으면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실로 가공할 만하다. 인적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 손실만 년간 약8조원이다. 이렇게 엄청난 재해를 줄이는 방법은 노사정 산재방지 현장위원회를 구성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이지음 건설노동조합이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맺고 전임비를 약간 받는 걸 문제삼는데 참으로 쪼잔하고 치사하다.
실은 건설현장에 노사정 위원회를 두어 산재예방,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마땅하다. 정부나 자본이 기피하니까 노조 단독으로 애 쓰는게 아닌가. 정부와 자본은 이제부터라도 발상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같은 중늙은이가 집회현장에 안나가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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