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농업 '다원적 가치' 외면할 것인가?"

'한·칠레FTA 비준안' 국회상정 앞두고 농민반발 확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 상임위에서 기습적으로 가결 처리되면서, 정치권이 농어촌 지원 법안으로 내놓은 '한·칠레FTA 이행특별법안'의 상임위 통과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는 '한·칠레FTA 비준동의안'를 투표를 거쳐 가결 처리했으나, 전제조건으로 '한·칠레FTA 이행특별법' 등 농어촌 지원 4대 특별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동시에 처리키로 했다.

현재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 계류돼 있는 '한·칠레FTA 이행특별법'은 29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정식안건으로 상정될 예정이다.

일단 농해수위에서 이행특별법안을 거부한다면, 본회의에 비준동의안을 상정할 명분이 약해진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이에 각 도와 시군에서 '이행특별법안에 대해 반대할 것'을 지역 출신 농해수위 소속 의원들에게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전농은 단순히 요구의 수준을 넘어 법안 통과는 곧 비준동의안을 찬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임위에서 이 법안을 거부하더라도,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농은 "각 도와 시군은 지역출신 의원들에게 단순한 반대표만 행사할 것이 아니라,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강제"한다는 대응방안을 밝히면서, "농촌지역출신 의원들만 똘똘 뭉쳐도 본회의 상정을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 반대행동을 하지 않은 의원은 결국 찬성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회단체 '비준동의안 상임위 통과' 규탄 잇따라

'한·칠레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둔 가운데, 농민단체를 비롯해 사회단체들은 일제히 규탄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민주노총·보건의료단체연합·민교협·문화연대 등 36개 정당·사회단체로 구성된 전국민중연대는 27일 성명을 내어, '한·칠레FTA 비준동의안' 국회 통과는 농업을 말살시키고 농민의 생존권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민중연대는 협정으로 인해 "1200여개가 넘는 농산물의 관세가 철폐되면 값싼 수입농산물이 들어오고, 그 결과 농업이 연쇄반응으로 몰락하고 농가수입 감소로 농촌과 농민생존이 붕괴되는 것과 동시에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쳐 국가경제가 휘청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전농은 26일 성명을 통해 "국가기간 산업인 농업은 연간 49조원의 다원적 가치(홍수조절, 대기정화, 토지유실 방지 등)를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곡물유통량의 80%를 4개의 곡물메이저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농업문제는 더 이상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적 문제"라며, 농업의 가치와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전농은 "미국에서조차 다른 나라와 맺은 투자협정에서 비준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3년에서 길게는 10년인데 반해, 유독 우리나라만이 협정을 연내 처리하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며 "비준동의안 처리가 불가피하더라도 세계무역기구(WTO)/도하개발의제(DDA) 협상 이후에 재논의 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또한 같은날 성명을 내어 "정부와 정치권은 '대외개방 의지 천명', '해외 수출기지 확보'라는 허울뿐인 명분으로 수출증대 및 시장확대 등 경제적 실익이 거의 없는 칠레와의 FTA를 무조건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농·한농연·전국농업기술자협회 등 8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전국농민연대(상임대표 송남수)는 FTA의 내용뿐만 아니라, 정치권이 이를 조급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데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WTO/DDA 농업협상이 마무리되고, 개도국지위보장 등에 관한 문제를 포함해서 DDA 농업협상의 내용이 확인된 후에 FTA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FTA에 대한 정부와 국회 등 정치권의 강행처리가 농민들의 분노를 더욱 확산시키고 있는 셈이다.

'FTA 저지' 국회 앞 대규모 시위

한편 비준동의안의 상임위 통과와 관련, 어제에 이어 오늘(27일)도 전국의 농민들이 각 당 지구당 사무실에서 농성을 벌이고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강원 횡성군농민회는 이 지역 농민단체와 함께 원주 이창복 의원(열우당) 사무실 점거에 들어갔으며, 춘천지역 농민들은 한승수 의원(한나라당) 사무실 점거를 시도하다 경찰과 한때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충북지역의 경우 괴산·청원·진천 등에서 농민들이 군청과 면사무소 등 지역 관계당국에 '농기계 반납투쟁'을 벌이고, 차량시위를 진행했다.

또한 전북 정읍농민 200여명은 이날 오후 2시 농기계 70여대를 동원하고 집회를 연 뒤, 정읍톨게이트를 통해 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했다. 전북지역은 정읍을 비롯해 고창·군산·김제 등 12개 시군에서 농민들이 농기계를 동원하고, 각 당 의원 사무실 점거농성 등을 벌이고 있다.

경북지역 농민들은 안동 권오을 의원(한나라당) 사무실을 점거해 농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상주와 영천 농민들은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남 남해군농민회는 이날 오후 5시 열린우리당 남해사무실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전농을 비롯해 농민연대 소속 단체들은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29·30일 양일간에 걸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근에서 대규모 농민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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