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원회는 방송‘사상검증’위원회! : 강철민 이병의 휴먼다큐 <희노애락> 제재에 대하여

지난 12월 27일, 방송위원회는 파병에 반대하며 휴가 후 군으로 복귀하지 않고 농성을 했던 강철민 이등병의 이야기를 다룬 MBC 휴먼다큐 <희노애락>에 대하여 주의 조치를 내렸다. 이유인 즉, 이 방송이 ‘중대한 범법자인 탈영병을 미화하여 명백한 관련 심의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위원회의 이 결정은 참으로 아리송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디 범법자를 미화하는 방송이 한둘이던가!
연일 우리는 방송에서 영웅으로 둔갑한 조직 폭력배의 눈물나는 의리를 다룬 드라마를 시청하고, 수구 정치 모리배들에게 빌붙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사회 정의와 민주화를 가로막았던 이가 ‘애국적이고 역사적인 영웅’으로 포장되어 아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방송들이 우리 국민들의 올바른 정서 함양과 청소년의 바른 의식 성장 과정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방송위원회는 이런 ‘중대한 범법자 미화 방송’들은 모조리 그냥 놔두고 유독 ‘휴먼’ 다큐인 <희노애락>에 주의 조치를 취했더란 말인가! <희노애락>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방송이었나?

<희노애락>이 ‘범법자’ 강철민을 영웅으로 다루었다고?

이라크 파병은 지금 전 국민적 관심사이다.
국민의 절반이 어린이와 노인인 이라크에 무수한 폭탄들이 쏟아지면서 집 벽을 뚫고 들어온 폭탄에 머리를 맞은 어린 아이, 집 밖에 놀러 나간 아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폭탄을 맞고 숨진 할아버지, 전기도, 물도, 약도 부족한 병원에서 물이 없어 피로 피를 씻는 아비규환의 현장들을 보며 ‘전쟁 반대’, ‘파병 반대’를 외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양심으로부터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라크의 이 모든 현장들을 보았던 한 젊은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든 그 총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하고 있을 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 이에 동조해 그들과 똑같이 사람을 죽이게 될 지도 모르는 ‘파병’을 한다는 것이 이 젊은이에게는 너무나도 괴로운 고통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파병되는 것도 아닌데 휴가 후에 중대한 결심을 했다. 자신의 청춘을 감옥에서 다 보내고, 그 후의 미래도 어쩌면 보장받지 못할지도 모르는데도 그는 ‘감히’ 군의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님께 ‘파병을 하지 마시라’고 편지를 쓰고 군 복귀를 거부한 채 농성에 들어갔던 것이다.


<희노애락>은 그가 군 복귀를 거부하고 통곡을 하시는 어머님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에서부터 농성을 하고 결국 연행되어가기까지의 과정을 어떠한 감정 개입도 없이 스케치하듯 다뤘다. 이 방송은 그의 이데올로기나 영웅적 행위에 대해 극찬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그가 소시적부터 얼마나 남다르고 훌륭한 인간이었는지 감동 스토리를 이끌어 낸 것도 아니었으며 그의 멋진 모습들만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줌으로써 다른 군인들이나 이 땅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아, 나도 강철민 아저씨처럼 될래요!‘ 하고 거리로 튀어나오게 만든 것도 아니었다.
<희노애락>의 화면에 담긴 강철민은 사람들이 농성장에 차려준 조그만 생일상 앞에서 나이에 안 맞게 트롯트나 부르고, 농성하러 나와서까지 군대식으로 군복을 ‘각을 세워’ 접어 놓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영웅’처럼 멋지게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을 뒤로 하고 차에 올랐던 ‘정말 평범한 이등병’일 뿐이었다.
하기에 이 방송은 국가와 군의 명령에 철저히 따라야만 하는 한 ‘군인’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양심’이 상충되는 상황에서 내린 결정과 고민을 다룬 그야말로 ‘휴먼’ 다큐멘터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며 여기에는 어떠한 영웅적 미화도, 정치적 언급도 없었다.
역사적으로 명백한 정치 깡패인 김두한을 ‘영웅’으로 다뤄 온 동네 아이들의 우상이 되게 만든 모 드라마에 비한다면 이게 어딜 봐서 ‘범법자를 미화하고, 영웅시 한’ 프로그램의 축에나 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방송위원회인가 방송‘사상검열위원회’ 인가

방송위원회는 이미 KBS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에 대해서도 각각 권고, 주의 조처를 내려 이와 비슷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송두율 교수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송두율 교수를 미화했다는 이유였으며,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은 김일성 시계를 미화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아무래도 방송위원회에는 숨겨진 몇 단어가 있나보다. ‘방송(사상검열)위원회’.
방송 기술과 주요 방송 매체가 애초에 전쟁을 계기로 발달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중에서 가장 잔인한 세계적 ‘범법행위’인 이라크 전쟁을 미화하는 방송은 자유롭게 전파를 타도록 내버려두고 앞서의 방송들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시청자의 준법정신을 고취 시킨다’는 방송 심의 규정 32조의 속내에는 사실은 여전히 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 정신보다도 우선하는 모종의 파시즘적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틈새 / 문화사회 편집위원 rebel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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