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서구 근대화를 통한 공간의 지나친 사유화와 불평등 구조는 공간점거운동, 빈집점거운동, 주택점거운동 등으로 불리는 ‘스쿼트(squat) 운동’을 탄생시켰다. 스쿼트 운동은 초기에는 공간을 둘러 싼 사회적 소수자들의 생존권 투쟁으로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과 거주권/생활권 박탈”, “공간의 일방적인 사유화에 따른 사회적 공공성 훼손 및 비효율성 가중(빈공간의 방치)” 등 공간을 둘러 싼 사회적 공공성과 권리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에 네덜란드, 덴마크 등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시작된 스쿼트 운동은 현재 유럽의 ‘점거 아틀리에 운동’, 미국의 ‘주택점거 운동’, 브라질의 ‘땅 없는 사람들 운동’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전개되고 있다.
스쿼트 운동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점거 장소와 점거 행위 자체에 커다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스쿼터(squatter)들이 “생존권에 근거한 단순 점거 행위”를 넘어 점거 행위의 사회적 근거와 의미를 제시하며 법률적/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쿼터들은 “몇 십년 동안 비어있는 건물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는 경제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일인 동시에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올바른 일”이라는 입장을 제시하였고, 이는 각종 언론과 시민사회를 통해 긍정적인 평가와 지지를 이끌어내었다.
더욱이 스쿼트 운동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아우또노미아 운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간-거주-생활-공동체’의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문화운동과 연계된다. 다시 말해 유럽을 중심으로 스쿼트 운동이 ‘점거 아틀리에’ 운동의 형태로 확대되게 된 것은, 부족한 창작공간에 대한 문화예술가들의 필요성뿐만이 아니라 스쿼트 운동 자체가 기본적으로 문화운동의 특이성(특히 문화예술창작의 거점화 및 생활화)을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시 리볼리가 59번지의 점거 아틀리에 <로베르네 집>
<로베르네 집>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점거 아틀리에이다. <로베르네 집>의 시작은 1999년 11월 1일 밤, ‘KGB’라 불리는 세 명의 예술가 칼렉스(Kalex), 가스파르(Gaspard), 브뤼노(Bruno)가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가 59번지 건물을 점거(squat)하면서 시작되었다. 점거 당시 그 건물은 금융회사인 크래딧 리오네와 프랑스 정부 공동소유였으며, 폐쇄된 후 몇 년 동안 빈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도시의 흉물이자 퇴락해가는 공간이었다. 당시 이들은 자신들의 점거행위의 목적을 “퇴락하는 장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는다”, “예술가들이 창조하고, 거주하며 전시할 공간을 조성한다”, “대안문화에 대한 정책을 실험한다”라고 제시하였다.
세 명의 예술가들의 점거가 이루어진 후 곧이어 10여 명의 예술가들이 지원을 시작하였고, 이들은 리볼리가 59번지의 건물에 방치되었던 각종 쓰레기를 치우고 새로운 문화공간을 조성․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리볼리가 59번지를 점거한 스쿼터이자 예술가들은 이 공간을 “Chez Robert, electron libre”라고 명명하였으며, 점거공간에서 각종 전시회, 퍼포먼스 등의 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개하였다. 리볼리가 59번지의 폐쇄되고 방치되었던 빈 건물이 문화예술을 창작하고 전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예술가들의 점거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채 경찰에 신고하였으며, 2000년 2월 4일 즉각적으로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로베르네 집>을 지원하였던 변호인단들은 법률적 대응을 통해 우선적으로 6개월의 유예 기간을 얻어내었고, 이 6개월을 발판으로 <로베르네 집>은 활발한 점거 아틀리에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 프랑스 언론은 <로베르네 집> 사건을 ‘Squart’, 즉 ‘점거예술’(squat+art)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언론의 지지는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계, 정부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프랑스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좌파 정치인인 베르트랑 들라노에가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파리시 역시 <로베르네 집>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2002년 5월 <로베르네 집>의 예술가들은 파리시의 협조 아래 ‘1901년 결사법 1902조’에 의한 법인 등록을 진행하여 <59 리볼리>라는 협회를 만들었다.
현재 <로베르네 집>은 해당 건물에 대한 파리시의 매입이 이루어져 공공시설로 인정받고 있으며, 건물 보수공사와 관련하여 파리시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로베르네 집>의 실험은 계속된다 : 현황, 운영 그리고 의미
<로베르네 집>은 파리 지하철 샤틀레역 근처의 리볼리가 59번지(59 Rue de Rivoli 75001 Paris)에 위치해 있다. <로베르네 집> 건물은 거대한 쇼핑센터와 백화점 등 쇼핑가에 둘러싸여 있으며, 파리시청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는 <퐁피두 센터>로부터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로베르네 집>은 32개의 작업실이 있는 7층 건물로, 숙소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낮 1시 30분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공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로베르네 집>에는 현재 20여개 국가 출신, 연령으로는 1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로베르네 집>과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약 150여 명에 이르며, 외부인이나 여행자의 경우 침구만 있으면 무료로 숙박을 할 수 있다.
건물 내부는 크게 2개의 공동 전시실, 개인 작업실 그리고 숙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 작업실 역시 문이 없는 완전한 개방구조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숙소를 제외하고는 건물 전체가 하나의 개방적인 전시 공간인 동시에 창작 공간이며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미술관인 셈이다.
프랑스 문화성의 발표에 의하면 <로베르네 집>은 연간 4만 명이 시설을 방문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파리에서 세 번째로 방문자가 많은 현대예술시설이다. 뿐만 아니라 <로베르네 집>은 독일 퀄른의 <갤러리 68. 11.>, 스위스 제네바의 등과 연계 활동을 통해 여름이면 유럽 점거 아틀리에간의 순회 전시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적극적인 해외 교류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에는 스위스 주네브 현대 미술관에서 <로베르네 집> 예술가 15명의 전시회가 진행되었다.
한편 <로베르네 집>은 점거 아틀리에의 특성상 일상적인 생활 자체가 하나의 문화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구성원들은 이를 위해 “작업실, 전시실 등 공간을 개방적으로 운영한다”, “매일 작업한다”, “서로를 존중한다-성별, 인종, 국가, 종교 등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며 평등한 생활을 지향” 등의 운영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위의 원칙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베르네 집>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바로 공간의 개방 및 공유이다. 대부분의 개인 작업실 역시 문이 없는 개방형 공간구조로 ‘작업-전시’와 ‘관람-참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이들은 <로베르네 집>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며 고정된 죽은 미술관”이 되기를 거부하며, “끊임없는 창작, 만남, 소통을 통한 과정으로서의 예술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로베르네 집> 전체가 하나의 끊임없는 문화기획이자 퍼포먼스인 동시에 문화운동인 셈이다. 또한 “매일 작업한다”라는 원칙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베르네 집>은 예술활동의 진정성과 성실성을 매우 중요한 가치로 지향하고 있다.

어느 날 밤 이루어진 리볼리가 59번가에 대한 예술가 3명의 불법점거는, 이제 공간과 문화환경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로베르네 집>은 공간의 확보, 배치, 운영 등 모든 과정에 있어 기존 문화공간의 규격화, 정형화를 거부하고 있으며, 심지어 현존하는 점거 아틀리에들의 폐쇄적인 운영조차 비판한다. 창작과 전시, 관람과 소통, 예술과 생활이 동시에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로베르네 집>의 운영방식, 그리고 이를 위한 공간배치와 프로그램 등은 개별 공간의 특이성을 넘어 문화환경 조성에 있어 내재돼야 할 기본적인 철학과 태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사례이다.
<로베르네 집>은 문화환경의 조성과 운영에 있어 ‘젊고 실험적인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 확보’, ‘이용자를 위한 개방적 운영과 프로그램 개발’, ‘창작자와 이용자의 자율적 참여와 소통’, ‘새롭고 실험적인 문화행위와 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용(합의)’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문화환경의 조성과 가꾸기에 있어 공간의 재구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각인시켜준다.
우리 사회 역시 중앙집권적, 대규모 개발 중심의 문화환경 조성방식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자율적인 행위와 지역주민의 참여를 매개시켜 줄 수 있는 문화공간 지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실험적인 문화행동과 적극적인 공간지원 그리고 사회적 관용이 일상화되기를,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점거 아틀리에와 새로운 대안문화공간들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문화사회]
빨간도둑 /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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