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를 전주답게 하는 교동의 전통찻집, 다문(茶門)
문화인들과 흥취를 아는 시민들이 오가는 이곳에 오늘은 색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부분은 일반인들과 같은 양복이나 평상복차림이지만 간혹 노동조합 조끼가 눈에 띈다.
조금 일찍 방에 든 일본 오사카지역의 머리 희끗한 항만 노동자 나카무라 다케시(中村 猛, 61세)와 민주노총전북본부 조문익부본부장, 전준형집행위원장은 ‘다문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뒤이어 들어오는 김종섭 민중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민주노총전북본부 관계자들이 마당에서 오랜만에 마당에서 모여 왁짜지껄한 분위기다. 정겹게 서로를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던 그들이 모두 7시 20분경 방으로 든다.
방에는 민주노총전북본부 명예지도위원 나카무라 다케시 동지의 회갑연을 축하한다는 플랑이 걸려있고, 한국의 노동자집회에서 나카무라 다케시씨가 연설하고 있는 장면에 “우리들의 영원한동지 나카무라 다케시”라는 글이 쓰여진 실사걸개그림이 다른 벽면에 걸려있다.
조문익 부본부장의 사회로 나카무라 다케시씨가 준비된 방석위에 앉고, 전북지역 여기저기에서 온 20명이 넘는 남녀노소가 모두 함께 나카무라 씨에게 회갑을 축하하는 큰절을 올린다.
큰 절 뒤에 나오는 것은 노동자들의 덕담(德談)
민주노총 이전의 노동자들을 대신하여 현주억 전 전북노련 의장이자 현 민주노동당 익산시지구당위원장이 “89년 김포공항에서 처음 뵈었다. 나카무라 선생님이 한국에 와서 배운다고 하지만 오히려 본인은 일본노동자들에게 배운다. 항상 건강하시라”고 축수한다.
그동안의 한-일노동자연대의 역사를 되새기며 염경석 전 민주노총전북본부장이자 현 민주노동당 전북도지부장이 “오사카지역 노동자들이 먼저 한국노동자들에게 국제연대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본인도 일본노동운동에서 많이 배웠다. 행복하시길 빈다”고 축수한다.
현재와 앞으로의 전북노동자를 대신하여 신동진 민주노총전북본부장이 “올해서야 알고 뵙게됐다. 그동안의 연대의 역사를 들었다. 지속적으로 연대될 것이라 믿는다. 포기하지 않는 운동 할 수 있도록 도와주리라 믿는다. 민주노총전북본부 지도위원으로서 지도바라며 앞으로 교류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겸 축수를 한다.
나카무라 씨가 자신의 실사 사진이 나온 걸개 앞에 좌정하자 모두 음식상에 자리를 한다. 질박한 나무탁자 위에 놓은 깔끔한 옹기그릇에는 차분하고 깔끔한 반찬들이 가득 담겨있다. ‘다문청주’가 역시 옹기주병에 담겨 탁자위에 놓이자 한잔씩 나누며 담소를 나눈다.
약간 늦게 도착한 시립예술단노조 최명호씨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대금을 입에 댄다. 나카무라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한 음률이다. 먼저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이 흐른다. 태평성대였다는 요순(堯舜)시대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다음에는 즉흥곡인 산조(散調)무대가 마련된다. 대학 강단에서 사회복지학을 강의하는 이원식씨는 나카무라씨에게 음악을 설명하느라 열심이다.
익산 노동자의 집 활동가였던 김순희씨와 남편인 현대자동차노조 전주지부 조합원인 김동규씨의 아이들이 좌중을 부산하게 뛰어다니며 노는 것도 산조의 한 가락이 된다. 연주를 마치고 아주 오래된 노동자 나카무라씨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예술노조원인 연주자 최명호씨가 서로 손을 잡고 한잔씩 술을 따라준다.
다음으로 나카무라 씨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시간
전체 참가자를 대신하여 염경석씨가 이현선씨와 함께 산 손자까지 함께 차를 마실 수 있는 ‘5인용다기셋트’를 선물을 전달한다. 터져나오는 좌중의 박수.
그리고, 민주노총전북본부를 대신하여 신동진본부장이 ‘2004년 최신판 민주노총 조끼’를 본부의 명예지도위원에게 선물한다. 공식적인 선물이외에도 개인들의 선물이 이어진다. 염경석씨가 따로 다탁(茶卓)과 차포(茶褒)을 선물을 했고, 나카무라씨가 평소 자기고향이라고 말씀하시는 노동자의 집을 대신하여 유기만소장이 여름 잘 나시라고 모시메리를 준비했다.
나카무라씨는 일본어로 “생각도 못한 성대한 자리라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좋다”고 운을 뗀 뒤 “눈 깜박할 사이에 15년이 흘렀다. 15년간의 교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 모두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정년퇴임을 해서 현장에서는 퇴역했다. 한편으로는 서글프지만 지난 15년을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잠시 눈에 이슬이 맺히는 듯 나카무라 씨는 “오늘 이 자리에 서니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눈물이 난다.”면서 분위기를 돌리듯 “나이가 이미 환갑이니 앞으로 5년만 지나도 노쇠해져서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용기가지고 계속 운동하겠다. 5년이후에도 젊은 기분으로 열심히 하도록 하겠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의지를 다졌다.
밤과 국이 들어왔다. 다문청주를 마시며 흥취가 익어간다.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개인적으로 축하노래도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하며 밤이 무르익는다. 민주노총 오기주 익산시지부 의장은 “일본에 갔다와서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거기에 있는 동지들과 항상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며 일본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했다.
김호근 공공연맹전북협의회 사무국장은 “나카무라 선생님의 회갑연을 보니 사람이 산처럼 느껴진다. 우리들도 그런 날이 오도록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소회를 말한다. 2003년 방문단장이자 이번 행사의 주관자인 ‘2004 전북지역 한일노동자연대위원회 공동실행위원장인 김춘식 사회보험노조 전 전북본부장은 일본노동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면서 ‘또다시 앞으로’를 부른다.
다시 예술노동자 최명호씨가 일어나 대금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들려준다. 그런데, 최재춘 군산시지부 의장은 어디갔지.
마지막으로 연회 마지막까지 사진을 찍으며 애쓴 젊은 노동자 박재순 민주노총전북본부 선전부장이 “한일노동자연대를 넘어 전세계동자의 연대와 해방을 위하여”라는 건배제의를 마지막으로 공식행사가 마무리되었다.
사회를 맡았던 조문익 부본부장이 시일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참가자들에게 가을에 ‘한일노동자연대운동 15년사’를 쓸 예정이며 나카무라씨가 자료를 갖고 한국에 와서 함께 집필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과 16일 오후 3시에 정읍에서 열리는 집회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 나카무라씨의 일정을 전하였다.
모든 준비된 행사가 끝났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아쉬운 듯 파안(破顔)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방문단 이야기, 운동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의 연대운동 이야기등등..... 정(情)과 우의(友誼)가 있으니 어찌 시간이 보이겠는가?
다문 마당은 어둑어둑하나 전등불빛은 창밖우물을 비춘다. 다문 식구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돌아나와 굳게 잡은 손. 골목길에서 다시 인사를 나누고 아쉬움은 끝없어 또 아쉬움.
오늘 숙소는 그동안 한번도 일본노동자들을 재운 적이 없어 꼭 나카무라씨를 모셔야겠다는 염경석씨. 송천동 아파트 인근에서 2차를 기약한다.
어디 2차뿐이겠는가? 1989년 아세아스와니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했고 자신들의 투쟁에 대하여 “현해탄을 넘었다”고 했다. 진정한 믿음과 우정이 함께 하는한 국경은 이미 없다. 모든 세계 노동자들에게 국경이 무의미한 그날이 오기를 기원하는 초여름 하룻밤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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