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진정한 헌법제정권력을 꿈꾸며

남한과 북한의 헌법 성립

매년 7월 17일은 제헌절이라 하여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이 날은 독자들도 잘 알고 있다시피 남한이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절차로서 1948. 7. 12. 국회를 통과한 헌법을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이 공포하여(지금 헌법은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되어 있다) 제헌 헌법이 시행된 날입니다. 당시 제헌 헌법 제1조와 제2조는 각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도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 9. 8. 인민공화국 헌법이 공포됩니다. 그 헌법에도 마찬가지로 제1조와 제4조에 각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민주공화국"과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로 규정하면서도 모든 권력의 원천에 대해서는 "국민"과 "근로인민" 이라고 거의 동일하게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헌법제정권력자로서 국민과 인민

헌법학자들도 헌법제정권력론을 말하면서 헌법제정권력은 오로지 "국민"(또는 인민)에게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남한의 제헌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봅니다. 북한의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가 있으나 1998. 9. 5. 개정된 헌법 서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 (중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민"이 헌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김일성 "수령"이 헌법을 창조한 것이라고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토 조항의 폭력성

대한민국 헌법에는 조선인민공화국 헌법에는 없는 독특한 조항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토 조항인데 헌법 제3조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조항입니다. 이 조항은 국가보안법의 성립 근거로 활용되는데, 북한 지역은 미수복 지역일 뿐이며 북한 지역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므로 북한 정권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부가 아니라 반 국가단체에 불과하며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항은 아예 북한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현실착오적 이며 매우 공격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조항을 근거로 북한을 반 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만든 후에는 엉뚱하게도 남한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인사들을 수 도 없이 감옥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도구로 사용하였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 학자적 양심에 근거하여 학문 연구를 한 결과물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벌이고 있어 국제적인 조롱을 당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헌법 현실입니다.

경제 조항의 반 민중성

제헌 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87조로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

지금의 헌법 제119조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중요 산업에 대한 국영 또는 공영 규정은 삭제되어 있습니다.

단박에 보아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제헌헌법은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되고 남한의 노동운동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자 그 타협점으로 이른바 사민주의 경제 정책 강령을 헌법 조항에 삽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6․25 전쟁으로 거의 궤멸되고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을 하고 난 뒤에는 바로 이 규정으로 바뀌어서 지금까지 한국 경제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이 조항은 어쩐 일인지 다른 헌법적 조항들은 모두 장식적 의미로 격하되었는데 반하여 금과옥조로 받들어져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였고 현재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헌법적 근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중요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이 그것 자체로는 사회주의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헌 헌법도 중요 산업에 대해서는 국유화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승만 정권 시대를 사회주의 사회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정권의 성격과 결부되어서만 판단될 수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북한 헌법에서는 "제20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 제21조 국가소유는 전체 인민의 소유이다. 국가소유권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나라의 모든 자연부원, 철도, 항공, 운수, 체신 기관과 중요 공장, 기업소, 항만, 은행은 국가만이 소유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민주적 기본질서의 허구성

대한민국 헌법 제8조 제4항은 매우 재미있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적 질서에 맞지 않은 정당은 강제적으로 해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헌법 학자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로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허용되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 규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자본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자유와 평등을 기본적인 헌법 원리라 하고 양심의 자유와 복수 정당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적인 헌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르조아 헌법의 자가당착적인 설명이 그 가면을 벗고 솔직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조항입니다. 위와 같은 조항이 있는 것이 독일 헌법인데 이 조항으로 인해 실제로 로자룩셈부르크가 조직한 독일 공산당이 1956년 위헌 정당이다 라는 심판을 받고 강제로 해산된 적이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민중에게 헌법 권력을

대한민국의 헌법 제정과 개정의 변천 과정은 철저하게 민중이 배제되어 온 채 당시의 지배권력이 민중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또는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약간 양보하는 수준에서 제․개정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서 1987년에 노태우의 기만적인 이른바 "6․29 선언"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의 6월 항쟁의 주도 세력들은 지금은 집권 세력이 되어 7․8․9 노동자 대 투쟁 세력에 대해 무한한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버려진 계급이 되었고,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그야말로 70~80년대의 노동조건에서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노동,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노동계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탄생하여 이 사회의 "자유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87년 6월 항쟁이 자유주의 세력에게 헌법 권력을 안겨 주었다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에게 헌법 권력이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적 법칙이 될 것입니다. 제헌절에 그 날을 꿈꾸어 봅니다.

박훈(금속산업연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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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 민중 ,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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