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꽁짜란 없다. 이 말은 모든 걸 돈을 주고 사고파는 자본주의 사회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류가 겪어온 오랜 시간 속에서 그 어떤 사회라도 무언가 ‘좋은 것’을 꽁짜로 내 주는 사회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무언가를 ‘꽁짜’로 먹었다는 소식, 또 다른 표현으로 ‘날로 먹었다’는 등의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오기도 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이거나 혹은 압제자라고 불려도 괜찮을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진심이다. 아니, 적어도 날로 먹는 그 순간만은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음악사회의 영역에도 무언가를 날로 먹는 사람들은 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누굴까. 소리바다, 당나귀, 푸르나를 통해, 그리고 웹하드를 통해 음악을 내려받는 나 같은 사람일까. 컴퓨터를 켜자마자 벅스뮤직에 접속해서 원하는 음악을 직성이 풀릴 때까지 틀어놓고 지내는 내 친구일까. 혹은 아침의 일과를 마치고 라디오를 켠 뒤 저녁의 하루 종일 라디오와 벗이 되어 지내시는 우리 형수님 같은 분을 말하는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일제시대 약장수가 켜 놓은 유성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 지직거리는 음악을 하루 종일 듣고 앉아 계시던 우리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말하는 것일까.
사실, 음악사회에서 날로 먹는 사람들은 PD 뒷주머니에 돈다발을 한 움큼 찔러 넣고 그 대가로 대박파티를 벌이는 사람들이다. 뒷주머니에 슬그머니 채워진 돈다발을 한 손에 쥐고 나머지 한 손으로 ‘챠트’ 순서만 살짝 바꾸어 주는 단순 브로커들이다. 어린 가수의 약점을 잡아 은퇴할 때까지 풀 서비스 종업원으로 고용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랏빛 꿈을 핏빛으로 빨아먹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날로 먹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제대로 갖추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 허탈한 웃음이 자꾸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것은 이처럼 날로 먹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을 향해 ‘니들은 남의 피땀을 날로 먹으려는 도둑놈들이다!’라고 소리쳐대는 때문이다. 그것도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브로커라고 부른다. 거간꾼이라 하기도 하고. 소비자들과 생산자들 사이에 흥정을 붙이고 수수료를 챙기는 사람들을 말한다. 음악 사회에도 이런 브로커들은 상당히 많은데, 이들은 단순히 수수료를 챙기는 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운 이들이다. 수수료가 아니라 몸통 전체를 챙겨왔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날로 먹어왔기 때문이다. 브로커의 힘이 지나치게 비대한 사회에서는 시장의 합리적 재편 과정이 부당한 횡포를 부리는 브로커들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말이 길었지만 디지털과 그를 토대로 한 온라인 세계는 브로커들의 영역을 급속도로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 이 과정은 ‘직거래’ 형태로 구현되기도 하고 ‘소비자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 형태로 구현되기도 한다. 온라인 음반 쇼핑몰이 직거래에 해당된다면 소리바다, 당나귀, 푸르나 등은 소비자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에 해당될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구축은 안타깝게도 동네의 양심적이고 소박한 브로커들, 다시 말해 동네 음반 가게 아저씨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을 미끼로 소비자와 창작자 양자의 권리를 모두 침해해온 비양심적인 브로커들, 즉 많은 음반제작자들의 입지를 위협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위협의 상징은 소리바다에서 벅스뮤직으로 옮아갔다. 소리바다의 이슈를 잠재운 것은 음반회사들의 법정소송도, 네티즌들의 권리 포기도 아닌 벅스뮤직이라는 유별난 사업체에 의한 것이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2년 만에 무려 1000만 명의 회원을, 그로부터 또 2년 만에 또다시 1000만 명의 회원을 가입시켜 현재 2000만 명이라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벅스’뮤직이 아니라 ‘사우르스’뮤직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그 온라인 회사 말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상징은 사실 소리바다의 것이어야 했지 벅스뮤직의 것은 아니어야 했다. 소리바다는 네티즌들끼리 교류하고 네티즌들끼리 주장하며 네티즌들끼리 결정하는 온라인 시대의 새로운 소통과 유통 시스템이었지만, 그래서 브로커들과 구조적으로 맞설 수 있는 것이었지만, 벅스뮤직은 사실상 공룡같은 초거대 브로커가 출현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 공룡은 그동안 ‘초식(草食)’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육식(肉食)’으로 ‘변태’될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7월 13일 벅스뮤직은 유료화를 선언하였다.
벅스뮤직이 그동안 나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에게 음악적 풍요를 선사한 것은 사실이고 또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한편으로 벅스뮤직이 그어버린 온라인적 상상력의 한계는 아주 부정적인 것이다. 벅스뮤직은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과거 오프라인 시절, 소비자와 창작자의 권리를 외면하고 음반 업자들의 부당한 이익만 추구하던 시스템이 그대로 온라인에 이식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과 온라인을 통해 벅스뮤직은 소리바다를 제치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세상, 상상력의 최고치로 각인되었다. 그 부정적인 효과는 당장의 네티즌들의 반응으로 드러나고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벅스, 그동안 할 만큼 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니 덕에 그동안 꽁짜로 배불리 먹었다. 이제 돈 내고 먹을께.’라는 이야기가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벅스뮤직이라는 엄청난 풍요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시 예전의 음악시장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게토를 찾아 숨어들거나 하는 방법 외에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소리바다를 둘러싸고 디지털 시대의 음악적 미래를 논쟁하던 시절의 모습들과는 너무 달라진 것이다. 횡포를 일삼던 브로커들의 입지가 다시 확대되려는 찰나로, 과거로 사람들은 거기로 제발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를 보고 ‘성숙했다’고 표현할 것이다.
문제는 브로커들이 다시 장악하고 말 음악시장의 암담한 미래에 있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놈의 ‘꽁짜라는 죄책감’, 우리의 내면 한 구석에도 심각한 문제는 숨어 있다. 라디오 시대의 논쟁과 죄책감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 위해 돈을 내고 저장미디어를 사는 대신 상당한 돈을 내고 온라인에 접속하고 있다. 말하자면 만만치 않은 월세를 내고 온라인에 건설된 게임방, 음악감상실 등을 이용하는 셈이다. 그놈의 ‘콘텐츠’들을 꽁짜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모든 표현들이 디지털 정보로 코딩되어 돌아다니는 온라인 고속도로에 돈을 내고 저마다 필요했던 디지털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이란 말이다.
네티즌들은 그렇게 적지 않은 자비를 투자해서 디지털 인프라를 건설했다. 그러니 그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컨텐츠들은 그들의 소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 건설에 아무런 비용도 대지 않고서 그저 무임승차하고 날로 먹으려는 이들이야말로 온라인 시대의 일원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들 수 없어야 하는 데도, 그들은 부끄러움은커녕 네티즌들이 사비를 들여서 만들어낸 디지털 인프라가 주는 이익을 모두 독점하려 할 뿐이다. 자기가 자본을 정당하게 투자하고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일구어놓은 독점도 사회적으로 비난을 면키 어려운 판에 말이다. 그러므로 음반업자들은 흥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은 이미 디지털 정보의 사용권을 매달 3만원씩 꼬박꼬박 지불해온 양심적인 네티즌들이 아니라 온라인 망(網) 사업자들과 만나서 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지불해야 할 우리의 중도금을 쥐고 해피 라이프를 꿈꾸고 있는 온라인 망(網) 사업자들 말이다. 이미 캐나다의 음반 업자들은 네티즌 대신에 이 망(網) 사업자들과 법정 소송에 나서고 있다. 누가 음악을 위해 돈을 지불했고 누가 그 돈을 가져갔는지 이제서야 눈치를 챈 것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성숙한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벅스뮤직의 유료화 선언을 보며 아쉬운 점은 이거다. 벅스뮤직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꽁짜음악듣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대에 걸맞는 더 많은 쟁점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나, 벅스뮤직은 그러한 쟁점들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벅스뮤직은 사람들에게 ‘도’ 아니면 ‘모’를 선택하도록 강요한 셈이 되었고 ‘개, 걸, 윷, 빽도’라는 더 많은 쟁점들을 가려주었으며 궁극적으로 ‘음반협회, 저작권자의 승전비’를 온라인의 어느 경계쯤에 세워준 꼴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결과가 P2P와 달리 일방적 소통을 구현했던 벅스뮤직이라는 비즈니스 스타일에 내재된 한계였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지난 한 해 동안 P2P 등의 여파로 미국에서 제조업으로서의 음반 시장은 축소되었지만 오히려 음악 창작자들의 저작권 수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 말이다. 벅스뮤직, 소리바다의 유료화, P2P의 불법성을 외치는 자들 앞에서 주눅 든 당신은 결국 누구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뉴욕타임즈 2004년 1월 25일자 그림 기사]
김뱅오 (449프로젝트, 음악만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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