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치권, 재계 총출동해 ‘투명사회협약' 체결

분식처벌 유예, 공직자 부동산 투기, 기업세습과 투명사회는 무슨 관계?

최종영대법원장과 이건희 삼성회장이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9일 오전, 백범 기념관에서 정부, 정치권, 재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이 날 행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사회, 경제계, 정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협약에 서명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고 "성공적인 민주주의을 모델 하나를 만들었다"다며 협약의 의미를 평가했다.

또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며 같은 맥락에서 ‘주식백지신탁제도’의 도입과 국무위원 전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실시를 언급하기도 했다.

내로라 하는 인사들 총출동, “투명사회 만들겠다”

협약식에서 연설하는 대통령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이어 대통령은 "투명사회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도 있다"며 "정부도 부방위를 중심으로 450개의 제도개선과 규제완화 과제를 도출해 개선해가고 있으며 저와 정부부터 최선을 다하겠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이 날 체결된 투명사회협약의 주요내용은 공공부문에서는 △부패방지시스템 개선△제도개선△공직자윤리강화△UN반부패 협약비준 등이고 경제부문에서는 △윤리경영강화 △회계투명성제고 △소유지배개선 등이다.

이 날 행사에는 행정부에서는 이해찬 총리, 사법부에서는 최종영 대법원장, 윤영철 헌재소장, 국회에서는 김덕규, 박희태 부의장 이 참석했고 임채정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참석했다. 또한 강신호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사용자 5단체장도 모습을 비쳤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4대 그룹회장도 총출동했다.

이 밖에 함세웅 신부, 이남주 한국외대 이사장, 최근 보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천기흥 대한변협 회장, 이학영 YMCA 사무총장등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총집결했다.

그러나 거국적 사회협약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평가나 그럴듯한 내용들에도 불구하고 이 협약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시각은 싸늘하다.

투명사회 협약이냐 면죄부냐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는 대통령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먼저 민주노동당은 정치부문을 담고 있는 투명사회협약 10조에 '불법정치자금 자진 반납약속 이행'이라는 문구를 삽입할 것을 주장했으나 거대 양당에 의해 거부됐고 경제부문을 담고 있는 16조에는 “현행법에 따라 과거분식을 즉각 해소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회복”이라는 문구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했으나 지난 임시국회에서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를 집단소송 대상에서 2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증권집단소송법 개정안’ 이 통과됨에 따라 의미 없는 주장이 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은 성명을 통해 “불법대선자금환수와 재벌의 과거 분식회계 해소가 이루어지지 않는 협약은 오히려 과거부패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부패청산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며 협약 참여를 거부했다.

또한 최근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사면 복권및 귀국 추진설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수감중인 현 정권 창출의 일등 공신 정대철 전 민주당 의원의 사면 복권 추진과 투명사회협약이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투명사회협약을 내거는 마당에 과거는 잊고 가자’는 식의 물타기가 시도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분식회계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증권거래 집단소송법 개정과 투명사회협약이 연달아 체결된 사실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이건희, 정몽구, 이기준, 이헌재 그리고 노무현과 투명사회협약

노무현 대통령의 옆자리는 강신호 전경련 회장 차지다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또한 공공, 경제 부문도 협약 내용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경제 부문 협약 내용으로는 윤리경영, 부당내부거래 차단, 소유제도 개선 등 온갖 미사여구가 포함되어 있지만 부당하게 전환사채를 발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이재용 남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 삼성 에버랜드 재판은 지지부진한 상황이고 현대자동차 그룹 정몽구 회장은 비상장 건설 회사인 엠코를 설립, 몰아주기 수주를 통해 경영세습에 나서고 있으나 아무런 법적, 사회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이 날 협약에 참석한 이른바 4대 그룹 회장들이 보이고 있는 협약과 동떨어진 행태는 이 밖에 일일이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

공공부문에 있어서도 공익신고자 보호 강화, 대통령 사면권의 투명한 행사, 정보공개법 개정, 공직자 윤리 강화를 위한 이익충돌 회피 제도 마련, 공직자윤리위원회 강화등이 주된 협약 내용이지만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아주 크다는 지적이다.

최근 노무현 정부가 보인 인사행태가 이를 극명하게 증명한다. 판공비 과다 사용등 온갖 도덕적, 경제적 문제가 다 드러났던 이기준 전 교육 부총리의 경우에도 청와대는 “문제가 없다”로 일관해 결국 자진 사퇴의 형식을 취했고 최근 사임한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우에도 청와대는 모르쇠로 일관해 결국 이기준 전 부총리와 마찬가지로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문제를 흐지부지 마무리 지었다.

부총리 부인의 위장전입, 취임 직후 거액의 토지거래, 투기지구 지정을 며칠 앞둔 절묘한 토지거래, 7천만원 짜리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동자가 은행에서 바로 15억을 대출받아 16억을 주고 이헌재 부총리 부인 소유의 땅을 매매한 사실 등 어이없는 사실들이 터져나와 공분을 사 사퇴한 직후 대통령은 사과의사를 표했다. 그런데 "참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아울러 괴롭고 부끄럽습니다“로 시작되는 그 사과문의 다음 내용은 ”해일에 휩쓸려가는 장수를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놓쳐버린 것 같은 심정입니다"로 연결됐다.

또한 "해일처럼 밀려온 여론 앞에 책임의 소재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를 떠내려보내는 것은 인사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부동산 투기에 격분한 여론을 해일로 비유했다. 이어 “(이헌재 전 부총리의)억울한 일이 있다면 억울함을 풀도록 하겠다"고 역성을 들었다.

"그냥 있는 법이나 잘 지켜라“

TV로 투명사회협약 체결식을 지켜본 한 사회단체 활동가는 “웃음 밖에 안 나온다”며 “어떻게 저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저런 협약을 체결하는지 역시 얼굴이 두꺼워야 한자리를 하는 모양”이라고 헛웃음을 지으며 “그냥 있는 법이나 잘 지켰으면 좋겠다”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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