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아직 정신 못 차렸다, 더 강하게 갈 밖에"

[인터뷰] 본사 앞 천막 농성 중인 김옥련 한원CC 조합원

장기 투쟁 사업장이나, 소규모 투쟁 사업장 집회마다 어느 순간부터 한원 CC 조합원 조합원들의 문선이 단골이 됐다. “노예가 되라는 용역 전환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들의 투쟁 역시 어느덧 사람들에게 장기 투쟁사업장으로 익숙해 져가고 있었다.

  지난 9일 한원 CC 본사 앞 결의대회 후 조합원들은 두 동의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한원 CC “용역 전환 철회, 원직 복직” 싸움이 8개월이 되던 지난 4일 원춘희 조합원이 수면제를 먹고 동맥을 끊었다. 항상 문선패 맨 앞에서 긴 머리를 날리며 힘찬 문선을 보여주던 이였다.

원춘희씨와 함께 문선패에서 얼굴을 보곤 했던 김옥렬(39세)씨를 만난 것은 21일 경찰청고용직노조 조합원 3명이 고공농성을 감행한 날 연대집회의 자리에서 였다.

한원 CC에서 경기보조원으로 10년, 투쟁을 시작하고 아이에게 소홀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 “춘희에게 미안해서라도 더 이 악물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김옥련씨.

대부분 아이가 있는 기혼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 여성 조합원들에게 8개월 투쟁의 과정은 “정말이지 죽고 싶지만 억울해서 죽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교섭을 거부한 채 일상적인 폭행으로 일관하던 회사는 전체 조합원에게 손해배상 15억원과 가압류 5억 5천만원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으로 금전적 압박을 시작했고, 원춘희 조합원도 2억 4천 1백만원의 가압류가 떨어진 상태.

원춘희 조합원 자살 기도로 여론이 나빠지자 회사는 부랴부랴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22일 교섭에서 회사는 조합원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용역철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시 교섭은 결렬 상태다. 김옥렬씨는 “이미 작년까지 회사는 식당, 매점, 프론트나 경기 진행팀까지 모두 용역으로 돌렸고 이제 마지막 남은 경기 보조원 용역 문제를 반드시 강행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증언한다.

때문에 이 싸움은 한원 CC 조합원의 투쟁만으로 돌파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춘희는 누구 하나라도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절박한 심경으로 자살을 결심한 것“이라는 것이다.

한원CC 조합원들은 지난 7일 “마지막 한판”이라는 각오로 서초동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교섭 결과를 들은 조합원들은 "회사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고 분노하고 있고, 25일 다시 대규모 집회를 준비 중이다.

이하는 김옥렬씨와의 1문1답이다.

원춘희 조합원의 상태는 어떤가

어제 퇴원했다. 그러나 동맥 회복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농성장으로 오고 싶어하지만, 아직 회사가 입장을 바꾸지 않은 상황에서 농성장에 있다보면 또 어떤 자극을 받게 될지 몰라 우리가 만류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놀랐을 것 같다

당일 아침 서초 경찰서에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러 가있다가 전화로 소식을 들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집회 신고서도 내지 못하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조합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 심정이야 어찌 다 말하겠나...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답답하기만 했다. 저 하나 그리 되도 그걸로 우리 모두를 지키려고 한 걸 생각하면 , 춘희에게 미안했다. 앞으로 어떻게 제 얼굴을 보나 싶기도 했다.

그런 극단적 결정을 하게 된 동기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버지 유산으로 춘희가 어머니와 공동 상속 받은 집에 가압류가 5천만 원이다. 전에 한번은 “언니 세 준 집이 나가야 하는데, 만약 이사 오는 사람이 등기부 보고 가압류 사실을 알 텐데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악박이 컸던 거다. 그러나 자기 힘들 걸로만 사람이 어떻게 목숨을 끊으려 하겠나. 해도 해도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자기 일로 조합원 문제가 해결되기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기혼 가장들인 걸로 안다. 어려움이 많지 않나

처음에 43명이었는데 지금 38명이 남았다. 대부분 아이들이 있고, 별거를 하는 등 혼자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언니들이 대다수다. 파출부며 서빙, 아니면 다른 골프장에 일당으로 나가 있는 언니들도 있고 20여명 정도가 실제로 싸우고 있다. 지금 이 집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끝까지 가 볼 사람들이다.

얼마 전 한 언니가 “아이에게 정말로 먹일 게 없어서 간장을 비벼 먹였다”며 울더라. 조합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전기 끊는다”는 소리에 달려 나가는 일도 비일비재다. 초인종이라도 울리면 옆집에서 수도세 달라는 소리가 아닌가 가슴이 내려 앉는다. 집에 들어가기가 겁나다는 언니들도 있다. 뭐 차비가 없어 조합 사무실에 못나오는 경우도 있다.

회사도 조합원들의 이런 사정을 잘 알지 않겠나

여자에, 아이 있고,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이제 나이도 있고... 그러니 이 힘든 경기보조원 일로 살아왔던 것 아닌가. 회사는 우리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너희가 버텨봤자 얼마겠나 하는 거다.

이렇게 버티는 동력이 뭔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동지애 때문이다. 이 어려움이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억울해서 시작한 싸움이지만, 돈 천원이라도 나누며 용역 깡패들에게 맞아가며 8개월을 함께 왔다. 정말로 위기다 생각할 때 뒤돌아 보면 언니들이, 동지들이 남아있었다. 함께 이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연대해준 동지들에게 감사하고 있다. 우리도 정말 열심히 뛰어 다녔다.

어렵고 힘든 싸움인데 연대가 없으면 외로운 싸움이 되고 그럼 조합원들도 없어진다. 투쟁을 하면서 느낀 건 투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연대라는 점이다.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연대를 다닐 때 말이다, 어떤 사업장에 가면 사측이 “우리는 너희를 잊고 있었다”고 말하더라. 참 어처구니가 없고 비슷비슷한 우리 처지가 서글프고 분노스럽고...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적은 수일까 싶었다.

아직은 바람이 차다. 농성은 어떤가

가처분 전에는 회사 앞에서 천막을 치고 지냈다. 1월 말 경에 2차 가처분이 떨어지고 나서는 조합 사무실만 이용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본사 앞에서 상주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 6~7명이 매일 번갈아 가며 붙박혀 있고, 비정규노조 등 연대단위들이 매일 함께 농성을 하고 있다. 어떻든 결판이 나야 하지 않겠나, 한판 다시 싸움이라 생각들 하고 있다.

회사는 22일 교섭에서 "손배 등 법률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하겠다, 그러나 용역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거다. 우리도 강하게 갈 수밖에 없다. 25일 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계속 회사를 압박해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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