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칼 테러, 해고ㆍ폭력ㆍ사찰... 이제 희망을 본다"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3인의 해고자를 만나다

2003년 3월 19일 법으로 보장된 월차를 쓰겠다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하청 동료가 관리자에게 아킬레스건을 식칼로 난자당했다. 일명 ‘식칼테러’. 그 달 28일 현대차에서는 최초로 노조를 설립했다.

그 해 6월 23일 동서다이너스티 시설노동자들의 투쟁을 연대하는 과정에서 ‘불법파업, 폭력행위’를 이유로 27명의 노조 간부와 조합원이 해고를 당했다. 2004년 5월 파업 과정에서 다시 4명이 해고 8명이 정직을 당했다. 2004년 10월 말 4명이 복직됐지만 올 2월 다시 여휴인원 충원 문제로 파업을 벌인 이유로 4명이 해고되고 7명 정직처분을 받았다. 지노위에서 3명에 대해 복직 판정을 내렸지만 업체는 대법원까지라도 간다고 우기고 있는 상황.

이미 노조를 만들기 위해 오랜 논의와 준비를 해왔지만, 사측의 탄압은 그야말로 ‘초토화’ 작전, 현초기 300여명 넘게 노조에 동참했던 조합원들은 하나둘 이탈하고 남은 100여명의 조합원과 간부들에게 일상은 없었다. 옥쇄파업을 벌이고 대규모 집회를 여는 스포트라이트 받는 투쟁은 없었어도 그들에게 현장은 하루하루가 ‘숨 가쁜 전시상황’이었다. 전담 경비대는 매순간 노조 간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대부분이 해고자인 노조간부들은 현장 출입마저 자유로이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는 스스로의 투쟁으로 해고자를 복직시키는 경험을 했고, 1109명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아냈으며, 6월말 집단 조직화로 3배 가까이 늘어난 조합원을 바탕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다.

불법파견 특별교섭 쟁취와 부당노동행위 척결을 요구하며 아산공장 천막농성을 진행 중인 3명의 해고자들을 만났다.

“식칼테러 소식 듣고 무작정 짐 싸서 나왔죠”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6명의 대의원 중 유일한 여성대의원인 원문숙 대의원. 29살인 그녀는 7살의 아들을 둔 가장. 상고를 나와 딱히 어렵다할 일 없이 직장을 다니다 아이를 낳고 2002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노동자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비정규직이 뭔지도 몰랐다. 주야간 특근으로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해도 월급이 100만원을 겨우 넘겼고,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는 너무나 다른 처우를 받았지만 “저 사람들은 오래돼서 그런 거구나”고만 여겼다. 그러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모욕과 무시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고, 노조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는 구나” 알게 됐다.

“3월에 식칼 테러 소식을 듣고 무작정 짐을 싸서 집을 나왔어요, 엄마에게는 ‘일주일만 있다가 오겠다’고 하고요. 그리고 시작이었던 거죠”

그리고 그녀도 해고와 복직, 해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그녀는 “매일 지는 싸움만 하다 우리 투쟁으로 4명이나마 복직이 되는 모습을 현장에 보여준 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그래서 복직 이후 다시 해고됐어도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내 머리 하나보다 큰 경비대들이 5분대기 노조 전담으로 사찰을 하죠, 현장에서는 면전에 대고 ‘여자가 나서면 되는 일이 없다’는 둥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하죠, 사지가 들려 나온 때도 있었죠” 대부분이 남성인 자동차 현장에서 여성 비정규직 젊은 조합원인 그녀는 ‘여자가’라는 말을 귀에 달고 지내야 했다.

천막 농성을 시작하고 두어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는 그녀는 “내 유일한 희망인 아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는 비정규직이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큰 힘이라고 했다.

“처음 노조를 시작하고 ‘내가 노동자구나’, 노동자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았을 때의 감동을 아들은 비정규직이라는 고통으로 맞게 되길 바라지 않아요, 엄마는 당당히 싸우는 노동자로 올바른 싸움을 했다는 평가 받을 수 있게 꼭 승리할 겁니다“

“ 비정규직 스스로의 투쟁으로 정규직 설득해야”

오지환 사무국장은 그나마 현장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출입금지가처분 대상 해고자 6인 중의 한사람.

지회에서는 현대차아산본부에 출입협조 공문을 보냈고, 본부상집에서는 단협에 의거해 ‘상집간부 통해 출입’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김태곤 현대차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경비에게 멱살까지 잡히는 상황. 비정규직노조 보호를 넘어 정규직의 단협을 위반하는 일이다. "18년 희생으로 쟁취한 자신들의 단협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에 대한 이렇다 할 대응투쟁은 없다. 현장에서 다시 일으키고 풀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늘 밀리고 처절한 모습들만 보다 불법파견 판정 이후 현장에는 자신감이 붙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은 비정규직의 힘만으로 돌파하기에는 너무 큰 싸움.

“중식집회도 하고 노조 탄압 분쇄 투쟁도 하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아쉬움도 많죠, 구호로 외치는 연대와 실제 현장에서 연대투쟁을 만드는 현실의 쓰디쓴 괴리를 느낄 때가 많았어요”

오지환 사무국장은 “연대를 요구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스스로의 투쟁으로 정규직을 설득해나가야만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6월 집단 가입의 성과가 또 한 번 도약의 밑바탕이 될 터다.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야간, 주간조가 번갈아 아산 공장 천막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다 큰 성인이 작업장에서 똥을 싸야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오지환 사무국장과 동갑내기인 강경오 대의원(34살)은 노조 초창기 멤버가 아니다.

“저야 뭐 그냥 노조가 설리되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노조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27명이 해고를 당하는데... 그냥 있으면 저 사람들 그냥 저렇게 해고되고 말겠구나 싶더라구요, 정당한 일 하려던 사람들인데 가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노조에 가입했고 해고를 당했고 지금은 대의원이 됐다.

“작년에 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똥을 싼 일이 있었어요, 여휴 인원은 없고 라인을 세우면 돈 물어야 할 상황이니까 그냥 참다가 그렇게 된 거죠”

결국 그 동료는 업체를 관두고 떠났다.

“다 큰 성인 남자가 멀쩡히 눈 뜨고 그런 일을 겪는 현실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들을 그렇게 박봉으로 쪼아대며 우리가 번 돈으로 현대차나 바지사장들은 몇 억 몇 조 이득을 보는데, 이런 뻔뻔한 불합리함이 말이 됩니까?”

한동안 계속될지도 모를 해고 생활에 대한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집에서 반대를 하면 힘들 텐데, 맞벌이 하면서도 내 하는 일이 맞다 믿어주니 그게 큰 힘”이라며 역시 천막 농성이후 제대로 잠 한번 못 잤다는 강경오 대의원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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