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경찰서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쪽을 걷다가 잠시 착각에 빠졌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마저 잃었다.
‘안전화 작업복을 무상으로 지급하라’
‘우리는 이런 곳에서 씻어요’
구호와 함께 적힌 화장실과 세면장 사진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한 노동자는 목에 ‘노 예 종 놈’이라 적힌 칼을 차고 앉아 있다. 영등포 영세한 작은공장 노동자이겠지 싶어 다가섰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현실
대 양 금 속
대양금속은 이미 10여 년 전에 상장을 한 튼튼한 중소기업이다. 싱크대나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스텐레이스 철판을 냉각압연을 하여 생산하는 기업으로 연 매출 2천억 원에 순이익이 1백억 원에 달한다. 또한 이 업종에서는 포스코등 대기업을 제외하면, 기술력이나 매출에서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알아주는 기업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처지는 이 업종에서 밑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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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장이요? 거꾸로 가는 기차예요.”
안산 공장에서 서울사무소에 올라와 농성을 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대양금속을 이렇게 소개한다. 열심히 일하고 회사는 커 가는데, 대양금속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기는커녕 있던 것마저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있다고 한다.
“빠듯한 월급 받으며 사는 근로자들 노동조합 어지간해서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웬만큼 불만이 쌓이지 않으면, 사용자가 너무 지나치지 않으면 노조 생기지 않아요.”
대양금속 노동자는 2006년 1월 9일 금속노조 경기지회의 분회로 노예가 아닌 노동자임을 선언했다. 해도 해도 너무해서 선택한 것이 노동조합이다.
해도 해도 너무해서
“회사가 어려워 고통을 분담하자면 기꺼이 나누지요. 아이엠에프 때 너도나도 어렵다고 해서 4년 동안 임금을 동결해도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그 때도 우리 공장은 수출이 잘 돼서 이익이 넘쳤지만요.”
쌓이던 불만이 표출된 이유는 상여금의 삭감에서 왔다. 550% 지급하던 상여금을 2004년에 400%로 낮추고, 150%는 성과급으로 전환하자고 제시한다. 회사는 형식만을 전환하는 것이며 기존과 같이 550%를 지급할 테니 서명을 강요했다.
형식만을 바꾸겠다는 회사는 말을 뒤집고 성과급 지급을 하지 않았다. 상여금 150%는 고스란히 사라지고 말았다. “상여금은 우리에게는 고정 월급과 같은 거예요. 다달이 나오는 급여의 부족분을 상여금으로 메우며 생활을 하거든요.”
왜 급여가 삭감되어야 하나
사라진 것은 상여금만이 아니다. 학자금 지원도 슬그머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대양금속에는 20년 이상 되는 장기근속자가 많다. 12시간 주야 맞교대를 주로 하며, 일 년 365일 공장은 절대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일이 끊임없이 있다는 이유로 대양금속에서 일을 해왔다.
“한 달에 한 번 쉴까 말까 해요. 일 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분도 있어요. 급여가 적은 것을 특근으로 메우며 살아간 거지요. 그렇게 빠듯이 살아갔는데, 있던 상여금도 학자금도 사라지니 참을 수 있나요.”
6개월에 한 번씩 지급하던 안전화를 1년에 한 번으로, 그리고 지금은 2년에 한 번 지급한다. 회사에서 준 안전화로 2년을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제 돈을 들여 사서 신는다. 작업복도 30%는 제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억누르며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급여마저 빼앗기고 나서 이것은 노예의 삶임을 깨달았다.
“적자를 보는 것도 아니고, 흑자가 나는데, 그것도 엄청난 순이익이 나는데, 거꾸로 가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남들보다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있던 것이라도 없애지 말아달라고 조합을 만든 거예요.”
대양금속은 설립자인 대표이사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한다. 중간관리자들이 가지는 권한은 없다시피 한다고 한다.
회사가 아니라 왕국
화장실이나 세면장 보수 문제는 중간관리자와 이야기하면 얼마든지 고쳐지는 일이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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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금속분회에 대해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기관지에 한 조합원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조합원은 대표이사의 권위를 손상시켰다고 징계를 곧바로 당했다고 한다. 이 정도니 무엇을 건의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대화를 하는 것은 예초부터 상상을 할 수가 없다.
“너무 억눌리고, 하소연할 곳조차 없으니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많았죠. 하지만 조합을 아는 사람도 없고 누가 앞장 설 사람도 없으니 속만 태우고 일을 했죠.”
이 때 윤옥동 분회장이 나섰다. 한 조합원은 어쩔 수없이 윤옥동 씨가 나섰다고 한다,
하소연할 통로는 노동조합
“노조활동 다시는 하지 않으려던 사람이었어요. 예전에 조합활동을 하다가 해고를 당했거든요. 다시 해고를 당해서도 안 되는 처지고요. 하지만 도저히 21세기 공장이라 생각할 수 없는 현실에 다시 총대를 멘 거죠. 아니 우리 가운데 노조를 아는 사람은 윤옥동 당신뿐이라고 총을 떠안긴 거죠.”
금속노조 분회를 설립하고 다섯 차례 교섭을 하였다. 하지만 회사는 서로 합의되었던 내용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조합원을 탄압을 하기 시작한다. 조합 설립 반년 만에 해고자가 10명이고, 징계를 당한 조합원은 셀 수도 없다. 해고자 중 한 명은 지방노동위에서 복직 판결을 받았지만,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중앙노동위에 항고를 하고 복직을 시키지 않고 있다.
4월 2일 전면 파업으로 맞섰다. 파업을 시작하자 전체 공장이 멈췄다. 사 측은 공장 한 개 라인만 돌려 급한 물량 좀 뽑아내자고 했고, 조합은 이를 승낙했다. 교섭을 진척시키려는 마음에서 요구를 들어주었더니, 이제는 기계를 예산에 있는 공장으로 빼자고 한다.
“비조합원이 공장을 돌릴 수 있게 도와주며 대화로 문제를 풀려고 했죠. 하지만 사 측은 용역 경비들까지 동원하여 폭력을 행사하며 대화보다는 조합원 죽이기에 나섰어요.”
대양금속은 안산과 예산에 공장이 있고, 서울에 영업 등을 담당하는 서울사무소가 있다. 파업이 시작되자 생산물량을 예산공장과 다른 회사에 하청을 주고 조합원과는 대화의 길을 닫았다.
대화의 길은 꼭꼭 막고
“예산 공장도 조합을 만들었으나 회사의 탄압과 회유에 손을 들어 조합을 탈퇴했어요. 안산공장 노조 죽이기에 나서며, 예산공장에는 상여금 600%, 급여 12%를 인상해줬어요. 하지만 우리는 노동조합을 지킬 겁니다. 당장의 탄압에 물러서고, 돈 몇 푼에 회유당하여 계속 노예와 종으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굶더라도 노동자가 되어 당당히 일하고 싶습니다.”
파업이 두 달을 넘어서자 힘든 것은 생계다.
“생계가 되지 않으니 힘들죠.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대학생, 고등학생 딸 둘이 있는데 한참 돈이 들어가요. 불안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 짬짬이 날일이라도 갈까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여기서 흐트러지면 평생 노예처럼 살아야 되잖아요.”
말을 하는 조합원마다 ‘노예처럼’이라는 말이 꼭 들어간다. 그 동안의 대양금속 노동자의 삶이 어땠는지를 엿볼 수 있다. 대양금속 서울사무소 농성장에는 비가림 할 천막도 없다. 건물 주차장에서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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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초기 아침에 컵라면을 즐겨먹던 젊은 조합원들도 이젠 라면에 ‘라’ 소리만 들어도 속에서 신물이 넘어온다고 한다. 뜻하지 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의 점심 자리에 함께했다.
속에서 신물이 넘어온다
역시 컵라면이다. 하지만 특별한 식탁이라고 한다. 오늘은 석 달째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노숙농성을 하는 젊은 조합원을 위해 나이 든 조합원이 집에서 김치와 계란말이를 반찬으로 가져왔다. 12시간 맞교대로 지치고 힘들어 서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던 조합원끼리 이제 서슴없이 형 동생을 한다. 친형제 이상의 정을 나누며 농성을 한다.
“참 웃기대요. 목소리 크던 사람들은 슬그머니 회사 쪽에 붙는 거예요. 지금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은 대부분 한마디 말도 없이 열심히 일만 하던 사람들이예요. 회사는 엄청난 것을 잃고 있는 거예요.”
빈손으로 만나 밥만 축내고 왔다. 돌아서는 길, 영등포 길가에 자그마한 공장들에선 쉬지 않고 치이익 커터기 소리, 우우웅 용접기 돌아가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매출 2천억의 대양금속의 1백억 순이익과 영등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공장의 사장들이 어음을 할인하려고 뛰는 모습과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세면장과 화장실과 작업복과 안전화와 월급 명세서를 생각한다.
노예의 칼을 차고 영등포 길바닥에 주저앉은 노동자가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