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결의대회에 서서
사당에서 남태령을 넘어가면 과천이 나오고, 거기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 인덕원 고개를 지나고 나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우로는 안양으로 가는 길이 외따로 뻗어져 있는가하면, 왼쪽으로는 널따라니 의왕으로 향한 길이 더 왼쪽의 성남으로 꾸부러져가는 길과 나란히 섰다. 의왕 쪽으로 길을 잡고 가다보면 곧 높다란 건물 사이로 슬금슬금 안양천이 흘러내리고, 그쯤이면 어김없이 근처 카레공장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가 차 안까지 파고들어와 코를 찌르기 마련이다. 그렇게, 그 곳에 내손1동 포일주공아파트 1단지와 2단지가 나란히 마주보고 서있다.
봄날이라 해도 믿을 날씨에 햇살은 땅바닥에 알알이 뿌려져 잘게 흩어져있었다. 따사로워 보이는 햇빛도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은 사람에게는 사금파리마냥 따가울 게다. 제 집 들어가는 길목을 용역반원이 다 막아버려서 이제는 겨우 하나 남은 정문 목에 포일철대위가 앉고 서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2300여 세대가 복작거리며 살던 아파트였지만 이제는 대부분 이주를 마쳤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 남을 수밖에 없는 세입자들이 이제 14가구. 그 중 두 가구를 제외한 12가구가 모여 포일철대위를 꾸렸다. 부족한 힘은 빈민해방철거민연합(빈철연)과 전국노점상총연합(전노련) 등이 연대해서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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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일철대위가 투쟁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
첫 연대발언으로 전국빈민연합 김흥연 상임의장이 입을 열었다.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을 쓸모없는 쓰레기로 만들고, 그 곳에 사는 사람을 내몰고 있다. 사람이 사는 주택은 결코 상품이 아니다. 우리의 주거권리, 삶의 권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내는 이 투쟁은 사사로운 욕심 챙기기가 아닌 의로운 투쟁이다”
그 다음으로 전노련 박준환 수석부의장이 나섰다. “세입자는 물론이고 집주인까지도 주거권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택철거민투쟁에서 롯데건설을 상대로 승리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끝까지 싸우면 승리할 수 있다”
결의대회가 진행되는 동시에 포일철대위 사람들과 재건축조합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동안 포일철대위의 심종둘 씨가 앞에 나왔다. “한밤중에 몰래 전기를 끊어서 5일도 넘도록 냉장고에서 물이 줄줄 흘렀어요. 불도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계단 복도에서 딸이 혼자 걷다 넘어졌습니다. 들고 있던 사기그릇이 깨지고 그 위로 얼굴부터 넘어져서 3살짜리 아이 턱을 100바늘도 넘게 꿰매야했습니다”
빼앗긴 땅은 눈물조차 허락하질 않는 건지. 그간의 모진 사정을 이야기하는 내내 심종둘 씨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보고 듣는 사람이 목이 메어 생수 한 병을 쥐어줬지만 심종둘 씨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발언을 계속 했다. “딸 얼굴이 피바다가 됐는데 돈은 받아서 무엇합니까? 그까짓 돈 몇푼 더 받겠다고 싸우는 게 아닙니다. 딸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도록 싸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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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종둘 씨의 발언 모습. |
이윤은 남고 인권은 사라진 주택재건축사업
주택재건축사업은 재개발과 달라서,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으로 주택주가 조합을 결성하면 추진할 수 있다. 재개발이나 뉴타운은 행정부가 주도하지만, 재건축은 집주인인 조합이 더 많은 역할을 맡는다.
이번 경우를 설명하자면, 포일주공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집주인들이 조합을 결성해서 재건축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으로 재건축사업이 시작된다. 의왕시청이 환경평가 따위를 실시한 후 사업허가를 내주고, GS건설이 시공을 맡는 식이다. 여기에 숨은 역할이 하나 더 있는데, 삼오진 건설이라는 용역회사가 그것으로, 건설현장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궂은일에는 세입자들을 내쫓는 일도 포함되고, 이것을 위해서는 ‘다양한’ 수단이 동원된다.
이주통보도 하지 않고 용역직원이 아파트단지 안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한밤중에 집을 비우라고 방문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멀쩡한 길목을 갈아엎고 용역직원이 막아서는 통에 이동권조차 제한당하고 있다. 장난삼아 유리를 깨고, 심지어는 경고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새벽 4시에 아파트를 폭파시킨다. 당연히 세입자들이 놀란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담당행정부서인 시청과 경찰서는 포일주공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의왕시청은 재건축과 관련된 모든 일은 재건축조합과 세입자 간의 문제로, 시청은 인허가 등 행정업무만을 맡을 뿐 그 이상은 개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포일주공아파트는 기묘하게도 과천경찰서 관할이다. 과천경찰서는 세입자 집 유리창훼손 등 각종 단지 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하고, 용역직원이 정문 이외의 모든 문을 봉쇄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해 권고 조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용역직원의 살벌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정문을 제외한 여타 출입구의 통행이 불가능하다. 과천경찰서 정보계장은 기자에게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니 일이 생길 때마다 112로 전화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런 마당에 소유주로 구성된 재건축조합은 각각의 조합원과 세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인적 문제일 뿐 조합 전체의 입장과 관련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으로 따져도 재건축조합은 세입자에게 단 한 푼도 줄 의무도 권리도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세입자가 빨리 이주하지 않아서 재건축사업이 방해를 받아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2006년 5월 재건축조합은 원활한 재건축사업추진을 위해서 포일철대위를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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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거점 13동
오후 늦게 집회는 끝나고 협상은 결렬됐다. 지금껏 본래 살던 집에서 따로 살던 사람들이 13동으로 모였다. 포일철대위 세입자 모두 한 곳에 집결하여 본격적으로 투쟁할 계획이라고 한다. 포일철대위는 제 손으로 자기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바리게이트를 쳤다. 그 속에서 포일철대위는 가수용단지 보장과 그 동안의 폭력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할 작정이다.
바리게이트를 만들 자재를 옮기려는 포일철대위와 이것을 막으려는 용역직원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더러는 밀고 더러는 당기며 용역직원을 쫓아내는 동안 경찰은 그저 뒷짐을 지고 서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로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이 삼삼오오 네발자전거를 끌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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