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논평 '이명박 역도' 표현 씁쓸

[기자의눈] 국가와 국가로서의 남과 북 발전 생각해야

4월 1일 로동신문 론평원이 낸 논평이 화제다. '남조선 당국이 반북대결로 얻을 것은 파멸뿐이다'라는 글이다. 로동신문의 논평 내용은 대체로 정당하다. 이명박 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의 요소를 짚은 점, 비핵개방3000의 핵 문제 해결이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외통수라는 점, 핵확산방지구상(PSI)과 미사일방어체제(MD) 참가 추진이 한반도 평화에 역행한다는 점 등의 대목은 이명박 정부가 반드시 새겨듣고 뜯어고쳐야 할 내용들이다.

아울러 문제가 되거나 토론이 필요한 대목도 많다. 선군이 아니었다면 미국의 핵전쟁 도발을 막을 수 없었다는 주장이나, 주체사상이 전면적으로 구현된 인민대중 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에서 인권 문제란 애당초 있을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주장 따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구에 회자되는 건 논평에 등장하는 ‘역도’라는 표현과 그에 준한 유사한 표현들이다. 시사하는 바와 우려되는 바가 공히 많다.

일단 논평은 남과 북이 갖춰야 할 대화의 기본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요점만 잘 간추려 이야기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또 존중할 수 있을 텐데 이번 논평은 그렇지 않다. 역도란 역적도당의 줄임말로 나라나 임금을 반역을 꾀하는 자 또는 무리를 일컫는다. 단어 자체가 봉건 시대적 배경을 갖는 데다, 역적의 율이 능지처참과 같은 극단적 형벌을 수반한다. 시대착오적 표현이다.

로동신문의 논평은 조중동 같은 족벌언론, 자본언론의 사설과는 결이 다르다. 로동신문의 논평은 수령-당-인민을 관통하는 수뇌부의 생각을 담은 것으로, 사실상 북의 공식적인 입장에 준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종합해 볼 때 북이 역도로까지 표현할 만한 정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영삼 대통령 집권 당시와 비교할 때 시대적, 정치적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오늘날 남북관계의 발전 흐름과 실질적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한 국가의 정상을 역도로 규정하며 비난을 퍼붓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이었는지는 자문해볼 일이다.

한편 북이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로 호명한 데는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보수성과 반동성을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관성도 함께 작동한 것으로 읽힌다.

북은 분단 이래 지금까지 남을 하나의 국가로 명시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통일방안에 있어서 북은 반외세 자주화 노선에 기반한 연방제통일방안을, 남은 분단 논리의 영토조항에 기반한 남북연합통일방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다른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작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시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정례화 제안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을 친척집으로 비유, 남북관계가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며 손사레를 한 적이 있다.

지난 달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축구 아시아 3차예선 남북 경기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거부한 사례도 단순히 지나칠 일이 아니다. 피파의 월드컵 예선 규정에는 '참가국 국기를 경기장에 게양하고 선수들이 입장한 뒤 국가를 연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평양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하지 않으며, 한반도기로 대체해야 한다는 북의 고집으로 경기는 결국 제3국인 중국에서 열리고 말았다.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북의 텔레비전이 이를 생중계한 대목과 비교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하나의 온전한 국가 형태로 내치를 하고 외교활동을 하며 발전해가고 있다. 단지 남과 북만이 상호 국가로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논평에서 이명박 역도라는 표현과 그에 준한 유사한 여러 표현의 등장 배경에는 국가와 국가의 대표를 모두 인정하지 않으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중 하나는 이명박이 현직 대통령이란 점이다. 소수자와 장애인 비하, BBK 동영상 파문, 비리 연루 의혹 등 비난받아 마땅한 숱한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체제의 강화냐 반인민적 정책을 펼치느냐 따위와 관계없이 형식적 절차적 과정을 거쳐 대통령 신분을 갖고 있다. 전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후에 어떤 문제가 생기든 지금 분명한 건 이명박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해 북을 만나야 하고, 정상으로써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하는 정치적 주체이다. 북은 필요에 따라 정치적 공세와 공방을 펼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국가로서의 남과 국가의 대표로서의 대통령을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 역도 당연히 그래야 할 때가 되었다. 이미 두 차례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얼마든지 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3월 26일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2008년도 남북관계발전 실행계획과 통일정책 추진 4대원칙(실용과 생산성, 원칙에 철저(비핵화,남북대화) 유연한 접근, 국민 합의, 국제협력과 남북협력의 조화)이 대결적 맥락에서 북에 접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수준의 비판은 이미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고, 한반도 평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명간 그 정치적 책임을 엄하게 따지는 계기도 마련될 것이다.

대화의 기본은 상호 존중이다. 사회적 합의에 따른 룰도 지켜야 하고 당대 시민사회가 인정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갖춰야 한다.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이를 갖추지 않으면 연대는 보장되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 실현이라는 시대적 소명 앞에서만큼은 남북 정상간, 남북 당국간, 남북 사회구성원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설령 ‘역도’와 같은 정책을 펼치고 발언을 한다 하더라도 즉자적이고 자극적인 반발보다는 남북 당국과 모든 정치세력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와 비판을 통해 극복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남과 북의 실체를 인정함에 있어 그 수준을 '체제'를 넘어 '국가' 차원으로 확장해야 할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단일민족 단일국가라는 오래되고 낡은 추상의 통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가가 연대나 연합을 어떻게 잘 이루느냐를 놓고 남과 북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그리고 한반도 사회구성원의 안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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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 한반도 , 비핵화 , 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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