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결정적 시간' 맞는 미디어운동

전규찬 이사장, 신학림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에게 실천 호소

전규찬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이 어제(20일)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 ''미디어행동' 선택의 결정적 시간'에서 연대운동 내부 문제의 일단을 드러내 관심을 끌었다. 공개적으로 거론하기에는 부담스런 요소가 많아보이는데 짚을 것을 짚어가며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었다.

전규찬 이사장은 "개인적 감상의 글"이라며 글문을 열었다. 물론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발언하는 위치로 보나 글의 내용으로 보나 '개인의 감상'을 훌쩍 뛰어 넘는다.

첫 문장에서부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전규찬 이사장은 "(미디어행동에서 그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여기서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라고 언급했다.

'알 만한 사람'과 '알 것'이란 대체 무엇일까. 언론 어디에도 보도된 바 없었는데, 미루어 보건대 '알만한 사람'이란 미디어행동(언론사유화저지.미디어공공성사회행동) 집행부와 미디어운동 진영 내부를 일컫는듯 하고, '알 것' 최근 역시 미디어행동의 회의와 실천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련의 해프닝을 이르는 것 같다.

전규찬 이사장은 "속된 말로 말렸고 솔직히 말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쎄다. 언론 지면에서 ‘말렸다’와 같은 표현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운동 진영 내부의 일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전규찬 이사장은 지난 2월 구성한 미디어행동에 대해 “기존 비판적 언론개혁진영과 진보좌파세력을 아우르는 보다 큰 단위의 운동단위를 구성코자 한 것”으로 “포괄적이고 장기 지속적이며 활동력 높은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판을 짜고자 하는 시도”라고 당시 출범의 의미를 환기했다.

이후 운영에서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 공개적 토론의 정신이 강조되고 또 강조” 되었고 “당연하고 또 중요한 합의의 규칙을 기반으로 해서 마침내 40여개 이상의 언론, 미디어.사회운동 단체들이 참여”한 연대 활동을 해왔다고 확인했다.

한계도 짚었다. 전규찬 이사장은 “정연주 사장 퇴진을 계기로, 그리고 KBS와 MBC 문제에 모인 대중적 관심을 기회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투쟁을 본격 추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아프지만 맞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미디어행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미디어행동이 문제가 많아 대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는 논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 ‘말렸다’고 이야기한 대목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지난 7월 18일. 민언련의 주요 인사들이 미디어단체의 주요 대표들에게 KBS 대응 문제를 중심으로 ‘범국민행동’(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 건설을 제안하고 이후 두어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기동적인’ 연대판을 짠 데서 비롯됐다.

특정 사안에 대한 특정 연대체의 제안과 건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범국민행동’은 제안과 건설 과정에 있어, 연대의 가장 기초가 되어야 할 연대 주체의 신뢰를 사실상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미디어행동 내부에서는 연대의 원칙과 도의를 크게 저버린 일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공영방송’ 이슈가 부각되면서, 제안 주체는 KBS 지키기를 위해서는 제안 시점부터 2-3주 기간이 관건이고, 따라서 미디어행동의 틀을 넘는 범국민행동의 건설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영방송’ 문제와 일차적인 이해가 있는 PD연합회, 언론노조 등을 이끄는 대표 주체들은 후에 외연을 확대하고 비상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의 범국민행동 제안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미디어운동의 많은 단위 중에서도 해당 사안이 특히 당사자인 상황에서 뚜렷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는 판단이다.

미디어행동 9차 집행위가 열린 것은 최초 제안자 회동이 있은 날로부터 5일 후인 23일. 그러나 '범국민행동'은 22일 오후 6시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후였고, 24일 오후 6시 출범 기자회견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22일, 24일 기자회견에는 40여 개 미디어행동 연대 주체들 대신 ‘범국민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참여했다. 시민사회 원로 100여 명을 고문으로 하는 ‘거대한’ 연대체가 탄생했고, 다수 언론들은 공영방송 사수 싸움을 할 만한 뭔가가 만들어진 것처럼 크게 보도했다.

미디어행동은 23일 집행위와 한 주 뒤인 29일 열린 긴급집행위에서 '범국민행동'을 안건으로 다루었다. 제안과 건설 과정에 대한 사실 확인이 이루어졌다. 범국민행동의 제안, 건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주체들이 미디어행동을 어떻게 판단했는 지가 자세히 확인됐다. 최초 제안자들의 의도는 명백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제안 받은 주체들에 있어 '분열'의 행동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미디어행동은 이윽고 기왕 벌어진 판이니 개별 참여를 하자는 의견, 일단 힘을 싣고 추후 평가를 하자는 의견 등을 나누며 사태를 수습했다.

그렇다면 범국민행동이 왜 연대의 원칙과 도의를 저버렸다는 지적이 나왔을까. 우선 최초 제안 주체로 알려진 민언련의 대표들이 민언련이 미디어행동의 참여 단체라는 점을 모를 리 없었다. 당시 시점이 미디어행동으로 일을 도모하기에 진정으로 부족하고, 그래서 외연을 확장하는 범국민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사무처를 통해, 또는 멜링리스트를 통해 제안하고 토론하며 일을 도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처럼 ‘거대한’ 범국민행동을 18일 첫 모임과 이틀 후인 20일 두 번째 모임 만에, 미디어행동의 민주적인 소통 체계를 고려하지 않은 방식으로 추진한 관련자들의 행동은 참여단체들의 혹독한 비난을 불렀다. 불과 4-5일 만에 536개 단체, 15개 운영위 단체, 100여 명의 원로를 조직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나라에 단 한 명 뿐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없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의 시시콜콜한 줄거리다.

그렇다면 전규찬 이사장이 이같이 미담도 아닌 껄끄러운 이야기를, 그것도 한참이나 지나간 지금 시점에 들춰낸 이유는 왜일까.

전규찬 이사장은 “수백 개 단체들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뻔한 얼굴과 몇몇 단체들만 남은 그런 구태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계속해서 “숫자는 활동하지 않는다. 단체의 이름, 인물의 명성이 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직 현장에 몸담고 있는, 신체를 움직여 활동하는 활동가들만이 공영방송 사수 투쟁이든 미디어 공공성 수호 투쟁이든, 책임 있게 자기 운동으로 밀고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500개가 넘는 연대단체에 상근 인력이라고는 민언련과 언론노조와 언론연대에서 파견한 활동가로 한 손의 손가락을 겨우 꼽는다고 한다. 비상하게 판을 짰으면 비상한 활동이 뒤따라야 하는데, 실상은 미디어행동에서 구성했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집행력 수준으로 범국민행동이 가동되고 있다. 허우대는 멀쩡하나 실속은 없는, 오늘 우리 사회 연대운동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일이다.

외연의 확장이 ‘공영방송 사수’ 투쟁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 지도 의문이다. ‘사수’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방송장악’ ‘독재망령의 부활’이라는 수사가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명박 정부와 미디어자본의 미디어 재편 구상을 이처럼 간단히 정의하는 것도 위험이 따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영방송을 지키는 싸움의 일차적인 주체는 공영방송을 구성하는 당사자들 자신이다. 당사자들이 담 밖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구하지 않는 한, 밖에서 촛불을 들고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제아무리 용을 써도 부차적인 ‘힘’에 불과하다.

범국민행동이 긴박하다고 판단했던 2-3주가 지났다. 미디어운동의 상태와 연대의 실체에 대해 짚고 넘어갈 시점이 되었다.

범국민행동이 첫 대표자회의에서 밝힌 △이명박 정부 공영방송 장악음모 및 네티즌탄압 저지를 위한 국민적 반대여론 조성, 정치적 압박 △당면 방송장악 시도, 탄압 및 네티즌탄압에 대한 저지행동 및 촛불문화제 등의 국민저항 운동 △방송장악을 위한 초법적 조치에 대한 법적 대응, 네티즌 지원 활동 △관련 법 제도 개선 활동 등 4개의 사업계획은 워낙 미디어행동이 '언론사유화 저지와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해 추진해온 활동과 다르지 않다.

전규찬 이사장은 글의 말미에 신학림 새 집행위원장에게 미디어행동이 중심을 다시 잡아줄 것을 호소했다.

전규찬 이사장은 "KBS 문제가 공영방송의 문제 전체가 아니듯이, 공영방송의 문제가 미디어 공공성의 문제 전체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인터넷 검열 문제, 개인정보법 개정 문제,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 문제 등 줄줄이 출현할 엽기적 사태에 총체적으로 대응할 실효적 연대의 체계, 교통의 테이블이 절실하다"며 미디어운동이 해야 할 일들을 열거했다.

전규찬 이사장은 "행동력 없는 껍데기로 남을 것이라면 빨리 접을 것이고, 남을 거라면 알찬 행동계획으로 자신의 입지를 되찾을 것"이라며 미디어행동에 참여하는 주체의 의무를 강조하며 글을 맺었다.

‘미디어행동’ 선택의 결정적 시간

[전규찬의 \\\'도끼질, 대패질\\\'] 공공미디어연구소 이사장

회의 참석이 어려우니, 그냥 착잡한 개인적 감상을 글로 전한다. 속된 말로 말렸고 솔직히 말해 지지부진한 상황을 까발리고 싶은 것이다. ‘언론 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에 관해서다. 언제 누가 왜 ‘미디어행동’이라는 걸 만들었고, 어떤 원칙에 기초해 행동코자 했으며, 그 실제 활동의 성과는 어떠했는지를 여기서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래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자유주의 자본국가의 본격적 등장에 따른 언론자유와 공영방송, 미디어 공공성의 위기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기존 비판적 언론개혁진영과 진보좌파세력을 아우르는 보다 큰 단위의 운동단위를 구성코자 한 것이다. 한미FTA 저지투쟁의 와중에서 태동한 구상으로서, 포괄적이고 장기 지속적이며 활동력 높은 미디어운동의 새로운 판을 짜고자 하는 시도였다.

위기 상황에 대비해 철저하게 현실적인 대응 전략으로 기획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대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고 한미FTA 협정 때부터 확연하게 드러난 운동권 내부 이견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차이와 이견이 여전히 존재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 공개적 토론의 정신이 강조되고 또 강조되었던 것이다. 당연하고 또 중요한 합의의 규칙을 기반으로 해서 마침내 40여개 이상의 언론, 미디어.사회운동 단체들이 참여한 미디어행동이 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선임 문제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해, 촛불정국 동안에는 조중동 절독과 공영방송의 의제화에 분투했다. 인터넷 검열과 통제 같은 사안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언론학자들이 미디어 공공성 운운하고 있으나, 이러한 현실의 움직임에 비해서는 한참 뒷북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미디어행동의 성과에 대해, 내부자적 시선에서 냉정한 평가가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해보자면, 이렇다. 과도한 평가는 금물이나, 그렇다고 지나치게 인색해서는 안 된다.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고 먼 판을 설계하는 단위로서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활력을 되찾자는 제언이다. 어찌 부족한 점, 아쉬운 부분이 없겠는가? 해야 하는데 제대로 못한 대목, 그래서 욕을 먹어야 할 지점들을 어찌 빠뜨리고 가겠는가? 정연주 사장 퇴진을 계기로, 그리고 KBS와 MBC 문제에 모인 대중적 관심을 기회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투쟁을 본격 추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아프지만 맞다. 만약 그것이 인·민 대중들로부터 제기되고, 신자유주의 저지 반자본 공공성 투쟁을 위해 함께 해야 할 다른 부문의 단체·조직들로부터 지적된다면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행동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미디어행동이 문제가 많아 대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는 논리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미디어행동이 배태한 문제라는 것도 다름 아닌 그 구성단체들끼리의 문제였던 측면이 많고, 또한 활동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이유는 확인된 원칙에 기초한 역할 분담과 연대 강화의 노력이 내부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컨대 미디어행동의 문제라는 것은 그 참여 단체들과 그들 사이의 문제였던 셈이며, 행동 중 대화를 통해 이를 시정·극복하면서 단일대오로서 폭력적 현실을 기운 넘치게 치고 나갔어야 했다. 정치권 등등과의 보다 넓은 연대가 필요했다면, 그것은 미디어행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다. 그랬더라면 무책임한 보수여당 정치꾼들이 뻔뻔스레 얼굴 들이대는 후진 판은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수백 개 단체들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뻔한 얼굴과 몇몇 단체들만 남은 그런 구태를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는가? 숫자는 활동하지 않는다. 단체의 이름, 인물의 명성이 활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직 현장에 몸담고 있는, 신체를 움직여 활동하는 활동가들만이 공영방송 사수 투쟁이든 미디어 공공성 수호 투쟁이든, 책임 있게 자기 운동으로 밀고 갈 수 있다. 물어보자. 현재 판에 뛰어들어 자기를 드러내놓고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몇이나 되는가? 그런 활동가들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선택은 바로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인자의 배치를 최적화하고 그럼으로써 활동의 동력을 최고화하는 것뿐 아닌가?

사원행동도 좋고 노조파업도 좋다. 하지만 시민사회와의 연대 없이 제대로 될 일이 없다. 치고 나가면 하는 수 없이 시민사회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사고는 금물. 어차피 길게 갈 길, 언론·미디어 운동권역의 민주화도 그 외부 신자유주의 반자본에 대항하는 투쟁만큼이나 중요하다. 운동의 민주적 질서가 해체되고 그래서 연대구성의 가능성이 방해받는다면, 어찌 대안과 대항의 모색이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그렇게 하자. 자신에게 맡겨진, 스스로 자임한 활동들을 꾸준하게 전개하시라. 미디어행동도 그렇게 경합하자. KBS 문제가 공영방송의 문제 전체가 아니듯이, 공영방송의 문제가 미디어 공공성의 문제 전체는 될 수 없는 일. 인터넷 검열 문제, 개인정보법 개정 문제, 방송법과 신문법 개정 문제 등 줄줄이 출현할 엽기적 사태에 총체적으로 대응할 실효적 연대의 체계, 교통의 테이블이 절실하다.

미디어행동이 그 중심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디어행동이 공영방송을 포함한 언론·미디어 분야 전반의 투쟁 중심점으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결코 한가한 발상이 아니다. 패권 투쟁적 아이디어와는 거리가 멀다. 여타 조직들에게 자기 역할이 있듯이, 미디어행동에게도 기대되는 역사적 책무가 아직 충족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모든 눈이 공영방송에 쏠린 와중에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안들, 앞으로 예상되는 사안들 등등에 대해서도 긴밀히 토론하고 정확히 결정하고 신속히 행동할 시점인 것이다. 신학림 새 집행위원장이 집중해야 할 부분도 바로 여기라 생각된다. 행동력 없는 껍데기로 남을 것이라면 빨리 접을 것이고, 남을 거라면 알찬 행동계획으로 자신의 입지를 되찾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참여자들의 의무이겠고.

(출처 - 미디어스.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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