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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 씨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하게 됩니다. 약간 덧붙이자면, 일부 비판가들은 이 연구가 상용화에 까지 연결되기에는 아직 초보적인 연구수준에 머물고 있으므로 국익론 등을 동원한 현재의 연구성과에 대한 과장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은 그것이 과연 효과적인 비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이러한 연구가 상용화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대중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비판가들조차도) 이 연구가 상용화되는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못 박을 수는 없다는 점이 바로 대중들이 환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라는 식의 비판이 대중들의 환상을 전혀 건드릴 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한 편, '국익론'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도 우리가 과연 '그것은 국익론에 불과하다!'라는 비판을 넘어서는 비판을 현재 제공하고 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물론 말을 조금 바꾸지요. '그것은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 동일한 말입니다. 국익론의 환상에 빠져 있는 대중들에게 결국 우리는 '국익론은 나쁜 것이다'라는 식의 말을 돌려주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분명히 여성의 난자채취와 관련된 비판은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도 결국은 연구절차상의 합리성을 확보하는 문제로 좁혀지고 잊혀지게 될 가능성이 많지요. 사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만일 이 연구가 상용화될 수 있는 길이 앞으로 (수십년 내에) 열리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가능성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에만, 효과적이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가는 비판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의 난자채취에 관련된 문제만 하더라도,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상업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가정했을 때에만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만일 이 연구가 상용화된다면 그 때는 자본이 개입해 들어오기 때문에 더 이상 연구 절차의 합리성이라는 수준에서 그것을 통제하기는 힘들어질 것입니다. 난자매매 같은 경우 그것이 중심의 국가들에서 공공연하게 대규모로 행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주변 및 반주변의 국가들(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남아메리카)에서 음성적인 방식으로 행해질 가능성은 상당히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족국가의 규제를 피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초민족적인 의학 및 제약 자본들이 개입해 들어올 것이기에 문제는 더욱 대중들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악화되기 쉬울 것이고요. 또 사실 '인간복제' 등에 관련된 생명윤리 문제도 이러한 상용화 가능성을 정면에서 볼 때에만 더 심도깊게 논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그러한 배아줄기세포의 추출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질 때, 과연 '인간복제'를 효과적으로 막는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점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부작용 혹은 원치 않는 사고의 발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마치 '핵'의 경우가 그렇듯이, 이러한 생명공학이라는 것도 일종의 '필연적 사고'의 가능성을 그 자체로 상당히 내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데, 인간복제가 아닌 장기복제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취하고 있는 방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인 가능성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그것이 생명과 인간종에 대한 관념 자체를 어떻게 바꾸어 놓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아우라"를 깨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장기복제의 혜택을 받는 자들은 현실적으로 소수의 부유층에 국한될 것이 분명한데, 이는 결국 종래의 계급적 분할선이 상이한 생물종들(species) 간의 분할선으로 전위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평균수명이 뚜렷이 구별될 수 있는 두 종류의 생물 그룹을 같은 종으로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계급분할의 자연화(!)가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전개될 것일 뿐 아니라, 인종주의가 완전히 새로운 양상 하에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물종을 몰살시키는 것은 그다지 부도덕한 일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공학 및 그 성과의 이용은 그에 대한 대중들의 민주적 통제를 철저하게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제한적으로 조금씩 진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점을 못박고 대중들을 설득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가질 힘(권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 만큼, 그것이 대중들의 통제를 벗어나 도리어 대중들에 대한 통제력으로 되돌아 올 때 그것이 야기할 극단적인 소외는 누구도 쉽게 책임지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역설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