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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문 과학기술 측정 기관(TA)들이 필요한 이유는 과학기술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정부는 중재역할을 상실한 채 애매한 경제 성장 논리에 과학기술을 결부시킴으로써 사람들의 표 긁기에만 관심을 가진 듯하다. 애시당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잘못되었다. 현재 이 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여전히 소수자문위원회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다. 소수자문위원회는 주로 각 분야에서 유명한 자들로 구성되며, 이 구성 과정에서 의견의 다양성은 결여된다. 소수의 관심에 맞는 사람들이 소수자문위원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 정책 기관이 있지만, 이 기관들의 목표는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의 여러 분과에 중요성에 따른 위계질서를 매기고, 국가 주도 경제 개발에 과학기술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정책이 장기적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다.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주변 환경의 변화이며, 몇몇 인기 종목에 도박을 거는 식의 정책은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인기 종목이 확실한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확증이 없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인간 사회에서 지식을 가지고 벌어지는 경쟁 변수가 주변 환경에 개입할 때 지식은 단 하나의 국가에 종속될 수 없다. 어떤 특정 지식을 독재적으로 확보해 경제 도약을 꿈꾸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더욱이 과학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 경우 최초 계획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과학적 실험을 위한 기술적 기반으로 개발된 것들이 나중에 우리 생황에 유익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실례가 VTR이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과학의 성과가 나중에 새로운 기술의 창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과학기술을 몸으로 비교할 때 건강을 위해 옛 어른들이 기통(氣通)을 강조했듯이, 다양한 분과의 제대로된 연결망과 환경 변화에 따른 그 연결망의 가변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이 평범한 사실이 소수자문위원회 및 국가 주도 정책 기관에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의 대가리에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듯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결과만으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에, 연구개발 과정에서 단계적 평가가 계속 이뤄져야 하며, 또 그 평가가 공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그러한 평가가 소수자문위원회에서 이뤄진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까? 인간배아줄기세포연구를 둘러싼 우리 논쟁의 경우 큰 두 축이 있다. 하나는 생명윤리위원회이고, 또 하나는 과학기술정책위원회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생명윤리위원회의 경우 대다수가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제어론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황교수 사건을 놓고 과학계의 대국민 사과 혹은 대국민 윤리교육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주장은 마치 대구지하철참사가 났을 때 유사한 재난 재발 방지를 위해 국민의 15%를 위기시 리더쉽을 발휘할 수있도록 교육을 해야한다는 연구결과보고서의 내용과 같다. 그러한 주장은 사고 1달 후 동성로에서 젊은이들이 웃고다닌다고 젊은 세대의 윤리의식을 질타한 어느 노교수의 발언과 다르지 않다. 황교수 사건에 물리학자, 화학자, 의학자 모두 모여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어느 지역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면, 그 지역 사람들 모두 모여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하는가? 또 한 축인 과학기술정책위원회는 실제 과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는 곳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과학을 수단화하여 과학자들을 그저 도구로 생각하는 곳에 불과하다. 또 한편 정부는 자신들이 젊은 연구원들 돈까지 삭감해가면서 밀어붙이고 있는 황교수가 위기에 처하자 상황을 보아가면서 덮기에 급급하다. 이 와중에 발빠른 자들은 자발적 난자 기증 단체까지 만들었다. 이 단체의 설립자는 이 단체가 앞으로 난자 관리까지 하겠다고 한다. 난자를 모으는 단체가 난자를 관리하겠다니 우스울 뿐이고, 게다가 그 단체의 수장은 난자 채취 과정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정도의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재 인간배아 한 개를 얻기 위해서는 약 200개의 난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수준의 과학기술이 대량생산 가능해져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선전하는 사람들 자체가 문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필요한 것은 발생과정 및 질병 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 줄기세포 이식이 막 바로 치료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대다수 난치병은 유전병으로서 체세포 복제시 그 병이 그대로 전이된다. 국민들의 난치병 치료와 줄기세포연구에 의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는 어설픈 기대감의 확산에는 황교수의 책임이 크다. 그는 항상 4단계 난치병 비밀론을 강조함으로써 비밀교 교주가 되었고,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설픈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또 그는 하나의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과학이 민족주의의 이념이 되는 데 기여를 했다. 그는 과학자를 국가를 위한 일벌레로 전락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근면성실이 과학적 발견의 원천이라는 그릇된 과학관을 심었다. 결국 과학의 발전이 강한 민족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이제는 황교수 비판자는 빨갱이 혹은 반민족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세태가 도래했다. 황교수의 연구가 별 경제적 성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과거는 망각한 채 재빨리 종교적 개종을 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황교수가 아니라 과학에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도 크다. 지금까지 뻔한 얘기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까? 당장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불가능한 것 같다. 사람들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선전과 선동을 사람들이 믿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또 정권 유지에 목 매다는 것이 정치인의 습성이라면, 정치인들이 경제와 과학기술을 무차별하게 연관시키는 것을 쉽게 막을 수도 없어 보인다. 자문위원회야 소속원들의 이념에 의해 움직이니 그들에게 의식 변화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결국 답이 없다. 하지만, 다 측면에서 과학기술을 평가하는 독립 기관들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한 기관들이 정부 소속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기관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어야 한다. 정부, 과학자 집단 그리고 시민 사이를 매개하는 집단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집단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다음이다. 1. 해당 과학기술에 대해 평가가 가능한 지식을 가진 구성원들을 갖는 집단이어야 한다. 2. 미래 계획을 위해 채택된 과학기술의 경제적 효과 및 위험성을 측정할 수 있는 조직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 3. 그러한 측정은 위급 상황과 같은 단기적 계획에서 시민의 공감대를 요구하는 장기적 계획의 구분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전염병 대책에 시민투표가 들어갈 수는 없다. 4. 중장기 계획과 관련해 사전에 예측한 측정 결과를 시민들에게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주고 그들의 의견이 반영된 측정이어야 한다. 5. 과학기술 측정 기관은 일종의 모의 실험 측정 기관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실례로 특정 과학기술의 효과와 위험성 측정에서 무선적으로 해당 지역 시민들을 골라 정보를 주고 투표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재평가하는 것이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선택된 시민들에게는 인사 정책 등에서 불리함이 없고 실질적 약간의 이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또 인터넷을 활용할 수도 있다. 6. 그렇게 하여 얻어진 측정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어야지, 사전에 정책을 먼저 정해놓고 정책 구현을 위한 수단 마련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지금까지의 결과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7. 과학기술 측정 기관이 하나가 되면 안 된다. 하나라면 의미가 없다. 여러 개를 확보하는 것은 그리 돈이 들지 않는다. 실제 공학윤리 인증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대학은 많아도, 공학부에 과학기술 측정 연구 기관을 가진 곳은 없다. 8. 과학기술 측정 기관들을 활용할 수 있는 합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특정 과학기술의 선별은 소수자문위원회나 국가 정책기관이 해도 좋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진행할까는 아니다. 아직 관료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이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복된 연구에 연구비 낭비하지 말고 그 돈으로 과학기술 측정 기관들에게 프로젝트를 주는 것이 좋다. 일정 경쟁 구도에서 성실하지 못하거나, 자료를 조작하거나 혹은 별 소득을 달성하지 못한 기관들에게는 하청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9. 과학기술 측정 기관에서 얻어진 측정 결과를 정책 수립 및 수정에 반영되게 하는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 그러한 결과가 국회 및 정부 기관에 상정되어 집단적 합의 결과를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 피드백이 필요하다. 정책이 수립되어 시행되더라도 그것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한 평가가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결국 별 얘기는 아니다. 여러 과학기술 측정 기관이 민간 기업 형태든 혹은 대학교 부설 기관이든 있다면, 그런 기관들의 측정에서 해당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시민에게 퍼진다면 그리고 과학기술 측정에 시민의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다면, 그런 기관들이 정치권, 인문학계 및 과학계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민이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알 필요는 없고 해당 과학기술의 윤곽과 경제적 가능성 및 위험성 그리고 논란 거리에 대한 정보만 가지면 된다. 현 상황에서는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결국 몇 년 동안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정권은 몇몇 유명 인사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하고, 그 인사들의 적들은 정책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을 가하는 양상이 이어진다. 이러한 양상 속에 갈등은 이념 전쟁으로 끝나며, 그 갈등은 사람들을 편가림하여 싸움을 일으킨다. 이 싸움은 논쟁이 아니라 대리 전쟁일 뿐이다. 과학기술 측정 기관이 갖춰야 할 10가지 조건은 세밀화 작업을 필요로 한다.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아니다. 나는 꿈 깼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합당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며, 또 움직이려고 해도 길이 막힌 제도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이다. 질기게 운이 좋왔던 노무현 정부의 기본 실패 원인은 사람을 잘못 쓴 데 있다. 노 대통령은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햇다고 공격해대는 미친 것들의 소리가 무서웠던 것인가? 역사를 살펴 보면 성군은 주변의 배운자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성군이 갖춰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과 지식을 가진 자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몇몇 유명인의 자문에 따라 정치를 하여 왕이 성군이 되는 경우는 딱 하나다. 그 자문 위원들이 성인의 자질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은 다양한 정보가 유기적으로 흐르게 하고, 상황에 맞는 제도 구축에 의한 갈등 중재 노력이 권력가에게 요구된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길을 거꾸로 갔다. 학교에서 결정한 총장을 몇 사람 말에 러플린으로 바꿔치기가 가능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총애하는 주변 유명 인물들의 말에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무슨 로드 맵을 짠다고 민심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민심이 선전 선동에 감화되면 그 결과는 항상 좋게 끝나지 않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과가 나올 시점에는 선전과 선동이 통했던 환경이 변해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5년이 지나도 인간배아줄기 세포 연구가 긍정적 결과를 낳지 못할 경우 지금 먹혔던 선전과 선동은 원한으로 돌아올 것이다. 자고로 귀여운 강아지도 사람 손을 많이 타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황교수 사건에 대해 다른 나라 국민은 별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 쓰레기 기자들 말에 속아 다른 나라가 시기심 때문에 황교수를 박해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리고 이 싸움을 과학 대 종교 전쟁으로 몰고가지 마라, 신문 방송들아! 미국 부시 공화당 정권에 의해 벌어진 종교 대 과학 전쟁까지 모방하려고 하는가! 난자 문제만 해도 잠잠했던 것들이 지금와서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조금씩 솔직하기를 바란다. 현재 문제들, 실례로 황당한 난자 기증 여성 단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찍 소리도 못한 채 이 나라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투명한 난자 확보가 중요하다는 이중성은 제발 보이지 마라. 또 1-2년 지나 그 단체에 문제가 터지면 거품 물고 나오겠지. 니들이 지금까지 기득권 행세를 하면서 한 짓거리가 다 그랬다. 서울대 반대론을 주장하는 신문사가 실제로는 서울대 출신 기고자에 의해 움직이지 않니? 좌파를 가장했지만, 기자 개인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시큰둥 해졌지? 누가 비판을 하면 어떤 신문사 놈들은 툭 하면 빨갱이로 몰았었지? 철학자든 과학자든, 유명하든 무명이든, 제발 낮과 밤을 가리고 살자. 지금 이런 세태에 인기 편승 잘못 하다간 나중에 좇된다는 것 쯤은 생각하고 살자. 이제 잔다~! 마지막 한 마디만 남긴다. 모두들 상식이라는 개념을 너무 막 사용한다. 히틀러 시대 나치에 편승한 대다수 독일인들도 상식을 갖췄다. 상식은 항상 여러 가치관과 결합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무릇 배운자는 상식적, 비상식적 혹은 양심적, 비양심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역사 속에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상식이 어떤 가치관과 결합해야 긍정적인지는 과거 경험 속에서 진단할 수 있는 것이지 현 시점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사는 우리에게 딱 하나의 교훈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정권과 신문 방송의 선전에 의해 가공된 어설픈 경제논리 및 민족주의에 무의식적으로 빠져 과학과 기술을 바라볼 때 그 결과가 좋게 끝난 적이 없다. 그 잘난 스노우의 "두 문화"는 서구의 그 역사를 반영한 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