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도덕적 해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깨자

해미  / 2005년04월18일 14시30분

작년 가을부터였다. 2003년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의 힘에 밀린 경총이 만든 ‘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가시적인 성과들이 정책적·이데올로기적으로 전면화 되면서 이의 근거로서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부각된 것이...

지난 가을 경총산하 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실시한 ‘산재보험 문제점과 개선방안 실태조사’ 결과에 대한 보도자료가 배포된 후 언론의 반응은 하나였다. 이 보도자료가 나가자마자 온갖 일간지에 ‘산재보험 재정 줄줄 새...’, ‘나이롱 환자 양산하는 산재보험제도’, ‘산재보험의 효율 위해 민영화해야..’ 등등의 논조가 담긴 글들이 실렸다. 여기에 바람잡이 역할을 한 것이 공중파 방송으로 ‘산재환자가 받는 돈이 더 많다’는 등의 인터뷰를 주요 뉴스에 기획 꼭지로 배치시키기까지 하였다. 최근에는 도덕적 해이 관련해서 구속된 환자들을 보도하기도 하고, 모 일간지의 경우에는 월급 명세서까지 비교해가며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

한편 이러한 도덕적 해이 공격을 기반으로 하여, 근골격계 직업병에 대한 관리와 통제의 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 업무관련성 인정기준 처리지침(안)’으로 자본의 말을 듣지 않고 제출하는 근골격계 직업병은 불승인을 때리고, ‘요양업무처리규정’을 통해 노동자들과의 접점을 희석시키고, 전원 및 요양연기등을 어렵게 만드는 한편, 자문의 확충을 통해 요양기간을 관리하고 의료기관 및 환자 감시를 통해 장기요양을 막고 있다. 게다가 이런 도덕적 해이의 근본원인으로 산재보험제도를 꼽으며 민영화, 심사일원화 등등의 정책 대안을 추진 중에 있다.

실로 효율성과 투명성이라는 미명하에 도덕적 해이를 바탕으로 산재환자들의 치료권과 인권까지 침해하는 위험한 사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경총에서 도덕적 우위에 있는 투쟁 사안이라고 인정(?)한 노동보건운동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하는 활동들을 기반으로 정책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공세와 통제․관리 전략을 세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도덕적 해이’가 문제인가?

도덕적 해이는 의료서비스 이용의 빈도와 강도를 증가시키는 보험의 경향을 일컫는 개념으로 보험의 필연적 특성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보험과 사회보험이 광범위하게 도입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빈번히 사용되기 시작한 ‘도덕적 해이’라는 단어는 비윤리적이며, 비도덕적인 행동 또는 사기행각으로 불리던 초기를 경과하면서 불확실성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경제학적 분석은 도덕적 해이가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인 경제 행위이며 보험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개념정의라는 가치중립적 접근법을 제시하였다.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뿐만이 아니 고용주들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연구들도 있었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한 고용주들의 행태와 노동자들의 행태는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이 있고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인데 고용주들의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도덕적 해이는 주된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이주 노동자들의 노말헥산 중독 사건이나 규제완화를 통한 안전조치의 약화 등에서 보이듯 자본은 틈만 있으면 노동자들의 건강과 관련된 안전망들을 약화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근본적으로 불건강할 수 밖에 없게 노동자를 쥐어짜는 자본에 대한 정당방위 아닐까?

논리적 근거로 따져도 ‘도덕적 해이’ 이데올로기는 빈 곳이 많다.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산재보험의 ‘효율성’의 문제는 경제학자들의 규범적 목표일 뿐이고 ‘적절성’이라는 잣대와는 다른 것이다. 도덕적 해이 때문에 ‘비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사회보장이라는 측면에서의 ‘적절성’은 별개의 문제인데 이러한 가치가 혼용되어 언론에 유포되고 있다. 더군다나 노동시장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모형이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자신의 노동을 자유롭게 판매하고, 자신이 노동환경을 스스로 통제하며, 질병과 재해를 당했을 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의료공급자를 선택하고, 의료서비스의 유형과 양을 결정한다고 가정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사회보장은 ‘효율성’의 잣대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의 무게를 재기 위해 30cm 자를 사용하는 꼴인 것이다.

물론, 현재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 나라 보다 복지수준이 높다는) 외국의 경우를 보면 극히 일부만이 보험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수근관 증후군의 경우 전체 환자의 22.6~62.5% 만이, 염좌의 경우 11.6~46.9%, 직업성 상지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11~21%가 보험청구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치명적인 직업성 질환인 경우조차 무려 40% 이상이 해고의 두려움 때문에 보험청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이 주장하는 돈의 문제만을 놓고 보아도 그렇다. 사회보장제도의 일차적인 목적은 사회적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보험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위험에 의한 질병과 재해의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가치체계에 따르면 보험급여의 확대는 긍정적 가치이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보험급여의 확대는 부정적이다. 이는 체계의 본래 목적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작용에 집중하는 모습일 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산재보험은 질병 혹은 재해로 인한 손실의 일부분 밖에 보상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평균 임금으로 인한 생활 외에 병으로 인한 치료비, 재활비등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 대공장 노안실의 한 간부는 “생계보조금으로 평균임금 20%를 추가로 지급하는 등 여타사업장의 경우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급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발적인 잔업특근을 할 정도로 실질적인 임금 부족인 상황에서 기본적인 생활비는 물론이고 산재환자인 조합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이외의 치료비는 상병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이 전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한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한 상황입니다.”고 급여의 실제적 포괄 범위를 지적하였다.

이는 중규모의 사업장도 마찬가지여서 한 자동차 부품사업장의 노안간부는 “평균임금의 70%를 제외하고 정기 상여금과 성과급을 추가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산재환자들의 질환이나 질병내지는 기타 재활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이 일정하지는 않지만 보통 산재요양기관에서의 치료 외 1~3군데 정도 추가적으로 재활치료를 더하고 있어 급여부분 중 치료비 부분으로 소요되는 비용이 많아 급여에 대하여 부족을 호소하는 산재환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고 지적하였다. 또한 “기타 재활과 복귀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1인당 월 30~40만 원 정도 소요된다고 평균적으로 산재환자들이 말하고 있고 소요비용의 대부분이 기타 추가적인 병원 치료 및 재활치료에 사용되는 비용이었다.”며 급여의 보장성을 지적하였다.

그나마 이는 민주노조가 있는 금속 사업장의 이야기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는 더욱 심각했다. 얼마 전 노조가 만들어진 한 비정규직 노조원의 이야기는 기본적인 보장조차 되지 않는 지금의 산재보험의 실태를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아저씨가 언덕에서 리어카를 막 끌고 내려오다가 힘을 못 배기고 다리를 다쳤어. 자기 사비로 치료 할 수는 없으니까 산재처리해서 고대병원에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그냥 나가버리더라고. 그 아저씨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어서. 그 아저씨가 들어가겠다고 새로 들어온 사람을 해고할 수도 없는 거고 하니까."

“그런걸 몰라서 그런지 산재하겠다는 사람은 없어요. 산재 처리 되면 그만둘 생각을 하던지, 휴직계를 내야지. 노조 없을 때는 휴직계가 어디 있어? 그냥 나가면 그냥. 해고지. 단협에 휴직이란게 있어도 돌아올 때 자리가 있어야지, 자리가 없는 상태면 기다려야 되니깐.”

실제의 상황은 이러한데 자본에서는 노동자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산재 환자와 현장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연구를 보더라도 노동자들의 거짓과 꾀병을 입증하는 신뢰할만한 근거는 아직 없다. 일례로 캘리포니아 노동자 산재보장체계를 다룬 1997년 신문에 따르면, 주의회가 보험자에게 실사팀을 구성하여 모든 의심나는 청구를 보고하도록 한 5년 동안, 도덕적 해이로 의심나는 청구는 전체의1% 미만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보험급여 대상으로 인정받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근골격계 질환이나 비상해성 증상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고 한다.

더빈의 “도덕적 해이는 윤리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성이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제한적인 시각을 넘어서서 소위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윤리적인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이 문제가 보험급여 수준과 관련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사회보험은 ‘효율성’이 아닌 ‘적절성’의 잣대로 판단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일할 때는 ‘산업역군’ 이라더니 다치고 나니 ‘산업폐기물’ 취급당하는 처지가 서글플 따름입니다.” 라는 한 산재 노동자의 한숨 섞인 한마디에 도덕적으로 ‘나쁜 노동자’라는 멍에를 덧씌우지는 말아야 한다. ‘도덕적 해이’를 이용한 노동자들에 대한 흠집내기와 분열전략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대응, 그리고 내 동료와 우리 조합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저들의 이데올로기를 깨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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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위 글의 연구결과들은 "Moral Hazard : A Question of Morality?"라는 Dembe A.E., Boden L.I. 의 2000년 New Solution에 인용된 결과들입니다. 마지막 문장의 산재환자의 말은 매일노동뉴스의 기사에서 재인용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