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지리산의 나눔과 평등

해미  / 2005년05월09일 20시19분

지리산 종주를 했다. 꼭 정신적 공황과 육체적 피로가 겹치는 이런 시기에 몸을 혹사(?)하는 종주를 하는 것은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서다.(물론 몸도 살찐다. 심한 듯한 운동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고, 아주 드물게 삼시 세끼와 간식까지 챙겨 먹게 되기 때문이다. ㅠㅠ)

이번에는 노동절 집회에서의 ‘반일투쟁으로의 남북노동자 대동단결’과 한국노총 위원장의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 민주노총의 ‘세상을 바꾸는 투쟁 D-365일’에 연타석으로 얻어맞고 휑~ 해진 가슴과 공황상태에 빠진 머릿속을 채우는 입산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왜 산을 가는지?’와 ‘왜 산에 다녀오면 정신적 공황과 육체적 피로에서 회복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는 나눔과 평등이란 평범한듯 하면서도 어려운 단어였다.

지리산에서의 2박 3일은 사람들과의 나눔의 시간이다. 무겁게 짊어지고 힘들게 산행을 하건만 쌀이 부족하면 쌀을 나눠주고, 술이 부족하면 술을 나눠주고, 가끔 운이 좋으면 삼겹살을 얻어 먹게도 되고, 커피도 나눠주고, 숟가락 젓가락도 나눠주고, 담배도 나눠 주고, 짐을 들어주기도 한다. 힘들어 하는 동료가 있으면 다독 거려가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오이 하나를 밝은 웃음과 함께 건내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왔건만 진정 ‘내 것’은 없다.

산 아래에서는 사장이고, 노동자고, 지식인이고, 농민일지 모르지만 산에서는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돈은 얼마나 잘 버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물론 레저 산업이 발달하면서 좋은 옷과 좋은 장비가 있지만 좋은 옷과 장비가 없다고 해서 깔아 뭉개지 않는다. 좋은 장비가 없더라도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대로 그때의 낭만과 패기로, 나이가 든 사람이면 나이든 사람대로의 연륜과 경험으로 생각한다.

일행 중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앞에서 이끌어 주고, 뒤에서 밀어준다. 경사가 급하고 위험한데가 있으면 손도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속도가 처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속도에 맞춰가려 하고, 누가 나를 앞질러 간다고 해서 기분 나빠 하지 않으며 기꺼이 양보하고 오히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인사를 건낸다. 다리나 무릎이 아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주물러주고 붕대도 매준다. 빨리 오르거나 내려가기 위한 경쟁도 없다.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필요가 있고 옆길로 새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을 뿐 나머지는 나눠주는 것이고 함께하는 것일 뿐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란 이란 말을 찾을 필요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그저 조금 부족한듯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나눈다. 힘들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면서 꾸준히 땅을 꼭꼭 밟아가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것에 눈을 돌리고 일상을 얘기하고 생각을 나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인사를 나누고 소주한잔 권하는 곳이 지리산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흐르다 보니 “정말, 별유천지가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지리산을 떠올리며 빨치산의 처절한 투쟁이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떠 올릴 수는 있겠으나 내게 지리산은 사람들과의 나눔과 평등의 장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 2박 3일의 휴가를 낼 수 없는 사람들, 산까지 오기 위한 교통비가 없는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일주일이 걸려서라도, 혹은 종주가 아니더라도 장애인들과 산을 오를 수 있고,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휴가를 낼 수 있고, 산까지 오기 위한 교통비가 필요 없다면 지리산이라는 별천지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더라도 꾸준히 땅에서 발을 띄지 않고 자분자분 땅을 꼭꼭 밟아가며,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을 사람들과 나눠가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지리산은 어느 곳에나 있는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5월 지리산에서 본 선명한 신록과 화사한 봄꽃들의 맵시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옆길로 새지 않고,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땅을 꼭꼭 밟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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