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섶]의 왼손 놀이
문화는 민중의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글로 보여주고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필자는 문화이론가이면서, 부안의 주민으로서 반핵투쟁에 결합하여 지역 공동체의 역동적인 문화에 대해서 눈시울 뜨거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문화와 생활이 어우러진 우리의 삶 속에서 진보의 방향을 고민해 본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가

고길섶  / 2005년05월10일 11시59분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읍니다. 지금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읍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읍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읍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셔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읍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읍니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서울의 한성여중 2학년이던 진영숙 학생은 시위에 가담하러 가기 전에 유서를 이렇게 써놓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유서를 쓴 4시간 뒤에 총탄에 맞아 희생되었다. 오늘 다시 유서를 읽다보니 마음이 참 슬프다. 어린 그녀의 죽음이 슬프고, 그이들의 희생이 끊임없이 치러져온 오늘까지 나라꼴이 제대로 되어본 적이 없어 슬프고, 급기야 쌓인 고름이 터져 중고등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슬프다.

더욱 가관으로 슬픈 것은 학생들이 촛불을 들지 못하도록 처벌을 하네 어쩌네 지랄을 떨고 학생들 수보다 더 많은 교사들이 동원되어 저지하고 자빠졌고 그 어린 학생들 수보다 10여배나 많은 전경들을 풀어 청소년공안정국을 꾀하고 있어서다.

교육당국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그런 짓거리들을 하면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말을 함부로 하는가. 처벌을 하네마네가 지네들의 권리인가. 교사들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몸으로 저지하고 협박하는가. 퇴학시키겠다고? 학생들이 당신네 밥줄인가? 노무현 정부는 도대체 그 어린 학생들이 무엇이 두려워 전경들을 수천명씩이나 동원시키는가. 청와대라도 쳐들어갈까봐? 요새 애들 말투대로 졸라 쪽팔리지 않냐?

뜻을 알았으니 어른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생각난다. 부안항쟁, 2003년 8월말 2학기 개학이 시작되면서 핵폐기장 문제로 각급학교들이 일제히 등교거부 투쟁에 돌입하자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긴급히 부안성당에 진을 치고 있는 반핵대책위를 찾아 왔을 때의 일. 한 초등학생이 교육부총리에게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어른들은 민주주의 이야기 하면서 왜 부안에서는 안하죠?” 교육부총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서 멋쩍게 웃고 말았다. 이 아이는 정곡을 찔렀지만 교육부통리는 침묵했다.

민주주의가 두려운가? 아이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둬 바. 아이들도 할 말이 있고 할 행동이 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표현을 말하고 소통할 권리가 있고, 권리를 만인에 소리칠 삶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광화문광장에서 즐길 수 있었듯이, 다시 자신들의 문제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거짓말 마라. 어른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그 ‘어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날 교육부총리가 포고하지 않았는가.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지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학생들을 학습노동의 착취로 내모는 것밖에 없다. 세계를 뒤흔든 68혁명 때 프랑스의 앙제르 고등농업학교 학생이던 르네 부리고는 이렇게 당시를 기억한다.


1968년 5월에 대한 나의 가장 생생한 기억요? 모든 이들이 새롭게 발견한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누구와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5월 그 한 달 동안의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5년동안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또다른 세계였지만--아마도 꿈의 세계였을 것입니다--그것은 내가 항상 기억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말할 필요와 권리 말입니다.
참새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