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의 내 인생은 부록이 아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성에서도 제외 되었고, 장애 안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던 장애여성이 이젠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 또 전동휠체어에 앉아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말하고 싶습니다. 일상이 치열하지 않으면 생존 할 수 없는 얘기들을 하려 합니다.

혼자 밖에 나가기 두렵다

박영희  / 2005년05월27일 21시54분

승이(가명) 언니가 상기된 얼굴로 옆자리에 앉는다. 숨소리가 가뿐 것보니 틀림 없이 무척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다.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는 한쪽 팔과 다리를 다른 손으로 당겨 놓으면서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으로 숨을 돌린다.

“너무 기가막혀서 참...”언어 장애가 있는 언니는 어눌하게 천천히 말을 시작한다.

다리에 장애가 있는 언니는 지하철 계단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올라 가고 있었다. 순간 “나랑 사랑 할래?”하는 소리가 들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남자가 웃으며 돌아보고 있었단다.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언니에게 그 남자는 입에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또 말했다.
“나랑 사랑하자”

언니는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오고 무서워졌다.
언니를 바라보며 남자는 유유히 웃으며 계단으로 사라져갔다.
언니는 다리에 힘이 빠지고, 계단을 올라가면 그 남자가 또 있을까봐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며칠이 지난후에도 언니는 그 때 그 기분이 사라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화가나고, 괴롭다고 한다. 그러면서 언니는 말한다. “내가 말이라도 빨리 할 수 있었음 소리라도 질렀을텐데... 내가 빨리 걸을 수 있었음 쫒아가서 따귀라도 때려줬을텐데...”

언니가 말을 빨리 할 수 있거나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당하는 성폭력이나 오랫동안 당해온 성폭력에 빠르게 강하게 저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고, 거의 불가능한 것임을 여성들의 경험으로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에 저항하거나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정신지체여성은 더욱 더 그것에 저항하기란 힘들 수밖에 없다. 정신지체청소녀에겐 위력을 쓰지 않아도 위계가 있을땐 그것은 더 큰 위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울산에서 정신지체소녀의 성폭력 사건을 이제 서울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울산에서 해결 되었어야 할 사건이 서울까지 온 이유에는 또 한 번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에 대한 의식 없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울산에 거주하는 정신지체청소녀(정신지체2급, 피해당시 14세) A양은 1999년부터 어머니의 내연남으로부터 5년동안 성폭력을 당해왔다. 2003년 중학교 특수교사로부터 인지 되었고, 울산, 부산지역의 장애, 여성, 시민사회단체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하여 울산지방경찰청에서 수사 되었다.

2004년 4월에 울산지방법원은 피해자가 정신지체임은 인정하지만 충분히 항거 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공대위는 부산고등법원에 항소 하였고, 올해 4월 20일 역시 가해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현재는 대법원에 항소한 상태로 A양 사건은 서울에서 또 법정투쟁을 해야 할 것이 되었다.

언제나 우리가 괴로워 하는 것이 성폭력특별법 8조에 명시 된 ‘피해자 항거불능’상태임을 입증해내야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항거불능’상태는 언제나 중증 1급정도로 재판부는 법리해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팔과 다리에 장애가 없으면 모두 항거할 수 있다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정신지체여성에 대한 인권보호가 안 되어지는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에 상담오는 장애여성은 90% 정도가 정신지체여성들이다. 그녀들은 거의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일부는 청소녀시기부터 성폭력 피해의 경험을 했다. 가해자들은 이웃집의 가까운 관계도 있지만,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불특정다수 남성들이 있다. 이웃의 아저씨나 가까운 관계에 놓여 있을수록 정신지체여성들은 위계에 약할 수밖에 없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만 인지되어온 그녀들은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 싫다고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 되지 않으면 계속 폭력을 당하며 살 뿐이다. 또한 청소녀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신지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성폭력피해시 무력감에 빠지는 이해도 없이 비장애중심적인 사고로 판결을 내림으로 정신지체여성들의 인권을 외면하는 것이다.

현재, 성폭력사건에서 외국의 경우 가해자가 자신은 가해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하는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피해자가 자기 피해를 입증해내야 하는 과정은 정황을 정확하게 설명해내지 못하는 정신지체여성일 때, 그 장애에 대한 배려나 이해를 받지 못 한다.

그러나 정신지체 피해여성과 신뢰관계가 형성되고, 그녀의 말에 주시해 보면 틀림 없는 피해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데 정신지체여성이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당했는데, 장애가 이해 되어지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답답하다.

팔과 다리에 장애가 없다면, 언어장애가 없다면, 도망도 잘 갈 수 있고 ‘안 된다’고 말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정신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다. 또한 위력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폭력은 소외와 언어와 분위기가 위력적폭력이 될 수 있다. 재판부가 이러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지체성폭력피해 여성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를 못할 것이다.

재판부는 단 한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 당하는 것을 막겠다고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장애를 이해 받지 못해 폭력 당해야 하는 장애여성의 피해자들을 열 명, 백 명을 나아가 가해자들이 ‘좀 모자란 여자 그렇게 하면 어때’라는 사회를 방관하지 말기를 바란다.

승이 언니는 혼자 밖에 나가기가 두렵다고 한다. 사람이 무서워진다고 한다. 언니는 자신이 철저하게 무력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녀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울산 사건 해결이 장애여성운동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어줬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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