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식]의 내 맘대로
자본과 권력이 꿈꾸는 유비쿼터스 사회. 모든 사물에 전자칩이 깃들고 온라인을 통해서 무엇이건 제공받을 수 있는 이 사회는 희망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극단화된 감시사회의 전형이다. 필자는 지문날인 폐지를 필두로 전자감시 반대활동의 선두에서 일해 온 사람이다. 모든 감시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필자를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들어보자.

댓글을 폐하라!

정보통신부발 긴급조치 혹은 계엄령

지문반대 finger@jinbo.net / 2005년05월31일 15시01분

정보통신부발 긴급조치 - 댓글을 폐하라!

전에 정형근 의원이 모 호텔에서 필리핀 산(産) 묵주를 세고 있는 것이 언론에 기사화된 적이 있다. 정형근 의원을 무척이나 혐오하는 입장이지만, 이번 일만큼은 워낙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일인지라 오히려 그 생난리를 치는 언론들의 오바질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형근 의원의 프라이버시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 사건과 관련해 박장대소를 한 일이 생각나서 그거 이야기 한 번 하려고 한다.

모 포털사이트에 이 기사가 실리자 순식간에 몇 천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 중 몇 가지가 필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형근이형, 묵주비디오 다 다운 받았슴돠. 코덱은 뭘 써야 되여??”
“정형근 의원, 다음 비디오 주제는 목탁으로 결정!”

뭐 이런 식이다. 정형근 의원이 호텔 방에서 어느 여인과 필리핀산 묵주의 알을 꿰고 있었는지 수입판매를 위한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는지는 관심사가 아니다. 항상 국가의 안보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근엄의 원조 정형근 의원이 한낱 조롱거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리고 그 조롱의 방법으로 댓글이라는 것이 동원되었다. 그 댓글들 덕분에 간만에 실컷 웃어도 봤고.

사실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진단은 예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정보통신부가 원용하는 ‘사이버폭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게시판에 올리는 글 자체도 문제지만 최근 들어 보다 심각한 문제는 ‘쪽글’, ‘댓글’ 등 본문과 관련하여 답글보다는 간단하게 올리는 글들이다. 웃대나 디씨 사이트에는 쪽글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이 일종의 메니아층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웃대의 경우는 아예 베스트 쪽글 메뉴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사이트나 포털사이트보다 더욱 심각한 댓글, 쪽글 문화를 보여주는 곳은 다름 아닌 정치사이트다. 일단 이곳에서 횡행하는 댓글의 경향은 딱지 붙이기. 노빠, 한빠, 찌질이, 난닝구 등등이 주요 메뉴인데, 뭔가 쟁점이 될 수 있는 글이 올라오면 바로 딱지 놀이 댓글들이 줄을 잇는다. 딱지 붙이기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알바’ 딱지다. 한나라당 알바, 열우당 알바, 민노 알바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게시판 댓글전문 알바고용할 정도로 돈이 남아돌던가? 암튼 그건 모르겠고, 이러한 딱지놀이는 자칫 본문에 대한 비판보다는 정치적 경향에 따른 상호비방으로 몰려가기 십상이다.

댓글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명예훼손 또는 협박. 만나서 한 판 뜨자는 댓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만나서 자웅을 겨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명예훼손은 심각한데, 이에 대한 반응도 가지가지다. ‘맞다이’ 뜨는 사람, 즉 똑같이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방법,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겠다고 하며 증거보존용 카피를 떠놓는 방법, 아이피 추적하겠다고 설치는 방법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가족을 들먹이며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게중에는 제풀이 질려서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고, 유령으로 활동하며 ‘멀티’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고명하신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문화의 정화를 위해 칼을 빼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도 보인다. 댓글들의 언어폭력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온갖 사이트 다 돌아다니면서 명예훼손혐의의 피의자를 찾아내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검열이다. 이 검열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하는 것, 그리고 검열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 이러한 현상을 두고 네티즌들은 ‘계엄령’ 또는 ‘긴급조치’라는 표현을 쓰면서 비난하고 있다.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상의 명예훼손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발상을 왜 했는가이다. 말로야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사에 대한 명예훼손이 너무 심각해서라는데, 언젠 안 그랬나? 술자리에서 아는 인간들끼리 누가 어쨌다더라 하면서 떠드는 것은 뭘로 막을 것인가? 게다가 명예훼손이라는 범죄, 이거 친고죄다. 즉, 피해자가 고발을 해야만 수사를 할 수 있는 범죄이다. 지금도 피해자들이 명예훼손죄로 고소고발 하면 당연히 수사 들어간다. 그런데 새삼스레 뭘 어쩌겠다는 건가? 피해자들이 말 하지 않아도 알아서 수사해주겠다? 왜?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일반 인민들의 사생활보다 더 보호되어야 하나?

물론 정보통신부, 일반인들 역시 피해자로 포함시켜놓고 있다. 그런데 지금 정보통신부가 돈과 인력을 얼마나 쓸지는 모르되 5000만에 육박하는 전국 모든 인민들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보호해줄 만큼 여력이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생활보호보다는 기업이윤확보보장에 더 열을 올리는 정보통신부,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사생활 보호 운운하면서 말도 안 되는 긴급조치 내리는 건가? 내막이 궁금하다.

댓글로 쌈박질을 하던 서로 빠돌이 칭호를 선물하던 그건 그 사이트 안에서 해결되어야할 문제다. 그 과정에 인신공격, 명예훼손, 비방, 협박 등이 이루어지면 그 때 신고 받아서 수사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자유 게시판이라는 거 공개적으로 하고픈 이야기 하라고 설치한 거고, 그게 싫으면 게시판을 폐쇄하던지 댓글쓰기 기능을 없애면 될 일이다. 다른 나라 사이트들, 자유게시판 운영하지 않아도 잘 돌아간다. 정보통신부, 할 일 없으면 조용히 있어주기 바란다. 괜히 제풀에 미안해서 일하는 척 하려다가 엉뚱하게 삑사리 좀 내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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