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의 현장
1990년 5월 한국화학연구원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후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위원장, 공공연맹의 전신 중 하나인 공익사회서비스노조연맹의 수석부위원장, 전태일 노동자상 수상, IMF 직후 민주노총 사무총장 등의 일을 해왔다. 과기노조 파견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 과기노조 정책위원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05년 4월 12일 과기노조 제 7대 위원장에 다시 선출되었다.

현 시기 노동운동에 대한 단상

노동자 대중의 건강성과 역동성을 신뢰하는 데서 다시 시작하자

고영주 yjko1003@jinbo.net / 2005년06월06일 20시14분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노동운동의 위기


노동운동을 둘러싼 환경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외국자본의 지배력 확대와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공공부문에도 시장논리, 왜곡된 경쟁 논리 및 상업화 이윤 논리가 확산되고 있다.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정규직의 고용 불안정 또한 심화되고 있으며 더불어 확대되는 사회적 양극화는 사회 체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한편으로 자본의 세계적 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적 생산 과잉과 자본의 무제한적 경쟁은 한편으로 카지노 자본주의 확대를 가져오고 한편으로 국가와 사회의 최소한의 보호체제를 위협하며 전 세계를 환경파괴와 약육강식의 살벌한 싸움터로 내몰고 있다. 정경유착에 기초한 물량 투입 위주의 재벌 체제를 근간으로 했던 한국자본주의도 그러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벌거벗은 채 노출되면서 외국 자본과 일정 부분 연대하고 중소기업 및 노동자 수탈, 개발과 투기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재벌 자본과 더 많은 이윤을 앗아가려는 외국 투기 자본의 공세 앞에 권력도 끌려가고 있으며 사회적 양극화는 심각한 양상으로 깊어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고통과 저항 또한 이에 비례해서 커지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은 한편으로 거세지고 있는 반면 자본과 권력의 탄압도 날로 강도를 더하면서 한국사회 노사관계, 노자관계는 극심한 대결과 갈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본과 권력은 노조의 현장 조직력을 약화시키고 상층부 타협에 의한 노동통제 체제, 자본이 주도하는 순응적 노사관계 구축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노동운동은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투쟁하면서 한편으로 장기적 대응 전략을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문제는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투쟁 지도력과 전략 기획력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약해지는 정규직 노조의 현장 조직력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및 정규직 노동자와의 분절적 상황이 악화되면서 노동운동에 전반적인 위기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의 원인과 범주

위기의 원인과 범주를 굳이 구분해본다면 외부적으로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방식으로는 대응하기가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거세며 내부적으로는 그러한 공세에 연동하여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책임성이라는 노동운동의 기본 원칙과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핵심적 문제가 있다.

첫째 ‘자주성의 위기’이다. 자주성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조직적, 재정적, 이념적 독립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 노동자의 눈으로, 노동자의 기세로 노동 현장과 세상을 설계하고 바꿔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이 취약하여 자본의 공세에 저항할 자신이 없거나, 재정적으로 자립을 못해 자본에 의존하려 하거나 이념과 의식에 있어서도 자본이 쳐놓은 그물에서 허우적대는 것이야말로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진원지이다.

총연맹, 연맹, 단위노조 할 것 없이 자주성의 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이것은 근본 방향을 놓친 채 전개된 교섭이냐 투쟁이냐의 왜곡된 논쟁, 실질적인 힘이나 장기적인 전략에 근거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주의에의 매몰, 조직 형식과 교섭 구조에 집착하는 산별노조 운동, 방향을 상실하고 있는 정치운동, 자본주의 소비 및 경쟁 문화로의 편입, 회사 살리기와 회사 내부 분배 투쟁에 집착하는 왜곡된 기업별 노조 의식 등으로 나타나고 더 나아가 의식적으로 조직적으로 자본에 장악당하고 있는 노동 현장을 어떻게 다시 조직하고 노동자 의식을 회복시킬 것인가 하는 노력은 소홀히 한 채 며칠의 시기집중 파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하는 조급성 등으로 나타난다.

둘째는 ‘민주성의 위기’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하는 투쟁이었으며 투쟁의 무기로서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투쟁이었다. 관료주의, 조직운영의 비민주주의, 직권조인, 부정부패, 출세주의 등은 모두 타도의 대상이었고 새로 건설되는 노동조합의 생명은 조합원이 조직 운영의 주인이 되는 투명한 조직 민주주의였다. 그러나 그 목숨과도 같았던 조직 민주주의는 갈수록 약화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왜곡되어져서 악용된다.

민주노총과 연맹 단위의 대의구조에서 비정규직과 소수 조직은 배제되거나 소외되고 있고 조합원은 대상화되어 있다. 노동자 대중은 없고 상층부 정파의 패권적 이해만 남아있는 분파 패권주의 및 관료주의, 현장의 자율성과 역동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상층부 중심의 사업, 노조 조직과 노동 현장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지배개입 및 통제의 강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노조 일상 활동의 포기 혹은 부재 등이 겹치면서 조직의 민주주의는 총체적인 약화를 경험하고 있다.

셋째는 ‘투쟁성의 위기’이다. 위로는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아래로는 노동현장의 통제와 고용 불안에 대한 저항에 이르기까지 노동운동은 그 투쟁력의 약화와 자신감 결여를 경험하고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약 10년간 노동운동은 공세적으로 노동자 요구를 관철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러나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총체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는 노동운동을 공세적 요구 투쟁에서 수세적 방어 투쟁으로 전환시켰다. 자본의 집요한 현장 장악 및 상층부 포섭 노력 앞에 결국 현장의 통제력을 자본에 내주고 상층부는 그 헌신성이 급격히 약화되어 노동운동 전체적인 투쟁력의 후퇴로 이어져왔다.

넷째는 ‘연대성의 위기’이다. 노동운동은 계급적 이해에 기반을 둔 연대성을 무기로 한다. 직종, 직업, 지역, 정규직, 비정규직, 남성, 여성을 뛰어넘어 계급적으로 연대할 때 성장하고 그 단기적 이해도 관철하고 전략적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연대는 노동자뿐만 아니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더 나은 다른 세상을 염원하는 진보 세력과 연대하며 빛을 발한다. 그러나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가 거세지면서 노동자 내부의 분절과 분열이 심화되고 사회적 연대의 폭과 깊이에도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노동자 내부의 연대를 공고히 하고 사회적 연대의 확고한 중심축을 만들지 못하는 한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다섯째는 ‘책임성의 위기’이다. 87년 이후 노동운동은 상층 간부, 조합원,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나름대로의 책임성과 헌신성을 기초로 성장 발전해왔다. 그러나 상층 간부는 어느덧 타성에 젖어 게을러지거나 온갖 비리와 담합에 익숙해져왔다. 자신의 성실성과 능력으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파에 속해 패권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경향마저 보인다. 헌신적인 활동가들은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업장안에서 왜소화되어 그 사회적 책무를 놓치고 있다. 조합원들은 자신의 고용 안정과 이해 때문에 눈치를 보거나 노조 활동에 소극적인 태도와 경향을 보이고 있다. 노동운동을 위기로 내모는 한 요소이다.

노동운동의 잠재력과 기회 요소

그러나 노동운동의 잠재력과 기회 요소는 위기의 요인만큼이나 많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조합원들의 여전한 기대, 최소한 87년 이후 축적된 인적 물적 역량, 각종 탄압과 이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의 학습 및 훈련,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광범위한 불만, 노동운동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과 저항, 확대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과 근본적인 해결 욕구,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정치의식의 성장,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제국주의화에 대한 전 세계적인 저항과 연대의 확산은 위기 이상으로 노동운동에 역동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올바른 목표와 전략을 세우자

이제 노동운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이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목표를 명확히 할 때 가능하다. 노동운동의 목표는 물론 일차적으로 노동자들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 권익을 보호하고 신장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노동자를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노동 자체가 존경받게 하면서 노동자가 사회의 중심 주체가 되도록 하는데 있으며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그 목표는 물론 단기적인 목표와 중장기적인 목표로 구별되어 제출되고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한다.

그 전략의 핵심은 첫째 총연맹과 노동 현장 수준에서의 세계화 및 시장화 반대 투쟁을 실제적으로 조직, 둘째 사회 양극화의 해소와 사회 공공성 실현을 주요 과제로 부각시키고 투쟁을 조직, 셋째 불안정노동의 철폐와 노동3권 강화 투쟁을 집중적으로 전개, 넷째 민주노총을 아래로부터 혁신하여 노동자 대중에게 돌려주는 것, 다섯째 현장이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계급적 산별노조 운동을 투쟁으로 전개하는 것, 여섯째 공무원 및 비정규 노동자의 투쟁을 조직하고 노동운동의 중심으로 진입시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장기적인 사회 이행 전략을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일 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칙과 방향은 노동운동의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책임성을 크게 신장시키는 데로 모아져야한다.

노동자 대중의 건강성과 역동성을 신뢰하자

이를 위해서는 총연맹과 연맹, 지역, 단위노조 수준에서의 지배구조와 운영방식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상급단체 임원의 선출 및 통제 권한을 가능한 수준에서 조합원에게 돌려주어야 하고 비정규 및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대의기구에의 실질적인 참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재정과 사업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통제와 평가 시스템도 구축해야한다.

기존 산별노조의 조직 민주주의와 현장에 의한 통제 강화와 함께 현 시기 추진되는 산별 노조 건설 운동이 상층부 중심의 관료적 사업, 뜬 구름 잡는 관념적 산별노조가 되지 않도록 현장 조합원의 참여를 보장하고 현장의 구체적인 현안을 모아 공동투쟁으로 확대하는 목적의식적인 사업의 배치 속에서 계급적 연대를 공고히 하는 산별 노조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위노조의 일상 활동과 현장 활동이 강화되도록 하는 지배구조와 조직 운영의 혁신이 또한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고통과 불만에 가득차있는 노동자 대중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이 스스로 투쟁과 조직의 선봉에 서도록 쟁점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노동운동이 되어야 한다. 노선의 차이를 드러내고 공개적인 논쟁과 토론이 생산적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노선 경쟁이 분파주의나 패권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강제하고 압도하는 거대한 노동자 대중의 투쟁과 참여를 여하히 만들어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단기간 내에 어느 한 가지 방안으로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호흡을 길게 하고 상층부 간부나 선진 활동가들이 보다 진지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투쟁을 조직하고 쟁점을 만들어내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노동자 대중의 건강성과 역동성을 신뢰하는 데서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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