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연대투쟁으로 치료하는 정신질환

해미  / 2005년06월09일 20시29분

1999년 여름이었다. 전국의 노동보건운동단체는 허리가 아파 산재로 치료 받다가 근로복지공단의 강제 퇴원조치로 자살을 선택한 이상관 동지의 자살 책임자를 처벌하고 근로복지공단을 개혁하기 위한 155일의 농성을 진행하였다.

당시 의대학생 단체의 조직실장이었던 나에게 그 투쟁은 장마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동지들과 나누어 먹었던 백숙으로, 천막 철거에 싸우다가 두어 번 들어가 본 유치장으로, 천막을 끝까지 지켰던 동지들과 아버님의 얼굴로, 천막을 빼앗긴 후 돌아가며 지키던 조금은 외로웠던 트럭의 뒷자리로, 그리고 지금 나와 동지들의 활동으로 남아있다.

6년이 지난 2005년 여름, 다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의 농성이 시작 되었다. 6년전 산재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여전히 많은 산재 환자들을 자살로 몰아넣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 이제는 노동조합 탄압으로 정신질환에 걸린 조합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이하 하이텍)가 싸움을 시작한 것은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이었다. 천지노조와 태광하이텍 노동조합의 요구는 소박하게도(?) 생활임금쟁취였다. 한 달 300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7-80만원의 기본급을 주던 자본에 맞서 임단협을 체결하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였다. 이는 96년 필리핀 공장을 설립과 가리봉 공단의 산업공동화로 인한 태광 자본의 구조조정에 대한 당연한 저항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2002년, 1999년부터 진행되던 천지태광노조와의 공동투쟁을 문제 삼으며 사측은 교섭에 응하지 않기 시작했고 조합원들에 대한 해고로 정면 대응했다.

41일간 위원장의 단식농성이 이어지자 사측은 직장폐쇄와 조합원 회유로 맞섰고, 임신 7개월이었던 임신부를 폭행하는 한편 ‘개인적으로 죽여 버리겠다’는 폭력적 발언과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이후 이루어진 노조에 대한 지속적 탄압 속에서 당시 21명이었던 조합원은 지금 13명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13명이 모두 그 동안의 감시와 차별 속에서 정신질환을 얻은 채로 말이다.

직장폐쇄 이후 조합원에게 이루어진 탄압은 상상을 초월했다. 40명의 생산직중 조합원만 별도 생산라인으로 배치해 상시적 관리를 해 온 것이다. 과장・반장이 4-50분을 주기로 교대로 근무시간 중 휴대폰을 받으면 소리를 지르기도하고 작업 중인 조합원을 뒤에서 지켜보며 끊임없이 지적사항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사측은 이런 관리자들에 의한 감시뿐만이 아니라 현장 입구, 출퇴근 카드기 주변, 식당입구, 총무과 사무실 등에 20여대의 CCTV를 설치하고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심지어 녹음기까지 조합원들의 감시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비조합원만 임금인상을 해주고, 복지혜택이나 야유회에서도 조합원을 소외시키는 차별을 자행하였다.

이런 감시와 파별 그리고 자본의 차별 속에서 제(?) 정신을 지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13명의 조합원들은 안면근육마비 증세, 잦은 통곡 및 우울증, 불면증, 과격한 행동 등의 증상을 보였고 전원이 정신질환이라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조합원들은 자본의 탄압속에서 평상시에도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별일도 아닌데 글씨로 써서 이야기하고 불안감에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속에서 어이없게도 자본은 오히려 “노조가 외부단체를 불러 협박하는 등 피해자는 회사”라며 “정신질환이라는 진단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노조를 상대로 총 7억6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쯤 되면 사측의 정신질환도 걱정될 판이다.

근로복지공단 이런 상황속에 집단 산재신청을 한 하이텍 동지들에게 ‘과격집단민원 대응요령’을 가지고 CCTV 때문에 정신질환까지 생긴 조합원들에게 다시 CCTV와 사진기를 들이댔다. 결국 이에 격양된 조합원 두 명이 과호흡증후군 등의 증상으로 실신하기도 했다. 이어 진행된 18일 현장조사에서 관리자들이 해고조합원과 기자들의 출입을 완강히 막는 것을 보고 있던 한 조합원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들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근로복지공단은 결국 5월 27일 ‘전원 불승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내놓았다. “장기간에 걸친 노사갈등으로 인해 조합원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정신질환이 발병한 사실은 현장조사과정에서도 확인됐다"며 "발병 사실이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아닌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만큼 전원 불승인 결정은 정당하다”는 관악지사장의 해명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이는 2003년 8월 근로복지공단이 "노조탄압에 따른 정신질환이므로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던 청구성심병원의 사례를 정면으로 뒤집는 일이며, 최근 있었던 KT 상품판매팀 노동자들의 우울증에 대해 산재인정을 해준 사례와도 배치되는 일이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것도 아닐텐데, 자기들이 내린 판정을 까먹기도 잘 까먹는다.

이런 상황에 뭐가 찔렸는지 방용석 이사장은 지난 3일 서울관악지사 관내 집단요양신청에 따른 자문결과에 대하여 보안유지 및 자문의 보호에 철저를 기하고, 과거 사건과의 차이점을 분석, 대처방안을 마련하되 필요하면 설명회도 개최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개별사안에 대한 구체적 지시로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근로복지공단의 판정기준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비슷한 원인의 사건에 대해 정반대의 결과를 내어 놓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6월 9일 13명의 하이텍 동지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자본과 공단의 작태에 맞서 ‘재심의’를 요구하며 근로복지공단앞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6년전 이상관 투쟁으로 155일을 지켰던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다시 농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때와 바뀐 것은 적다는 것이, 오히려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안 해주고, 조기에 종결하고,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한 초법적 공세들이 득세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6년전이나 지금이나 이사장은 얼굴한번 내비치지 않고 아픈 환자들은 길거리로 나선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생활임금쟁취’, ‘임단협체결’을 외치고 있고, 자본의 노조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하이텍 동지들의 정신질환은 최근의 문제도, 개인의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이 땅 1500백만 노동자들이, 특히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이런 정신질환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닐까?

근로복지공단의 심사 과정상의 문제와 다른 사례와의 차이, 사측의 불법 직장폐쇄에 대한 이견을 들어 보통의 ‘재심사청구’가 아닌 ‘불승인 철회’와 ‘재심의’를 요구하고 노숙농성에 돌입한 13명의 동지들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을 보고 싶다. 공단앞에서 노숙투쟁을 진행할 동지들에게 따뜻한 연대를 해야 할 때다. 6년전 근로복지공단 천막을 찾아주었던 끊임 없는 동지들의 연대와 투쟁의 모습을 지금 다시 보고 싶다. 그것이 하이텍 동지들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길이다.

  5월 10일 집단요양신청시 진행한 노조탄압 퍼포먼스 [출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집단정신질환해결공대위]

  6월 9일 농성돌입 투쟁현장에서 [출처: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집단정신질환해결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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