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례]의 언제나 영화처럼
삶은 영화를 꿈꾸고 영화 또한 삶을 꿈꿉니다. 푸른영상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장애와 여성과 가난을 생각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그저 이웃되기

알엠 rmlist@jinbo.net / 2005년06월10일 1시39분

주일 미사를 끝내고 올라오는데 3층 계단에 살림터 아이가 서있었다. “안녕?”하고 인사를 하니 아이는 우리들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살아요?”,
“응, 우린 5층에 살아”
여느 때처럼 “안녕하세요”하는 의례적인 인사만 돌아올 줄 알았는데 모처럼 대화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5층이요? 와, 너무 좋겠다. 나도 따라가서 집 구경해야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5층에 있는 집들이 제일 좋대요”

내가 사는 곳은 ‘함께 사는 세상’, 장애인센터, 위기가정공동체, 청소년센터가 모여있는 곳이다. 우리 집은 맨 꼭대기층에 있는 사택이다. 그러나 2년을 살았지만 나는 내 이웃들을 잘 모른다.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는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도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청소년센터 ‘행복한 우리집’의 아이들과 참 친하게 지냈었다. 우리는 견진성사 동기였다. 미사가 끝나면 성경공부를 함께 했고 부활을 기다리며 성서쓰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장애인센터 마당에 살던 진돗개 황진이가 새끼를 낳자 아이들은 자주 우리집에 놀러왔고 TV를 보거나 펌프(DDR 말고!)를 하며 놀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애들은 사라졌다. 청소년센터에서 10년 넘게 일을 해온 담당 선생님에게 그런 일들은 다반사였겠지만 내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긴 시간이 지난 후, 그 애들 중 한 명을 마을 버스에서 만났다. 노랗게 염색을 한 머리만큼이나 많이 변한 그 애에게 집에 놀러오라는 말을 했지만 그 말은 내 마음에서 나오지도, 그 애에게 가닿지도 않았다.

함께 사는 세상, 이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떠나간다. 3,4층 가족공동체 살림터의 경우, 노숙가족이나 빈곤가정, 가정폭력피해자 중 여성쉼터에 입주할 수 없는 모자가정 등 다양한 사연의 가족들이 모여 산다. 일정기간동안 숙식을 제공하고 취업알선, 저축관리 등을 통해 자립이 가능해지면 분가하듯 근처로 독립해서 나가거나 먼 데로 떠나간다. 갈 곳이 생길 때까지 머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분들의 입장에서는 떠나는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 것이다. 5층의 ‘행복한 우리집’의 경우는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생활하는 대안가정이지만 가출 때문에 인연이 끊어질 때도 많다. 5년의 시간동안 나는 거리두기를 배웠고 그림자처럼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오후, 살림터의 한 아이가 우리 집에 가겠다고 따라나선 것이다.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황하는 것도 잠시, 3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리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과 풍경들이 스쳐지나갔다. 미사에 늦지 않기 위해 허둥거렸던 아침 풍경. 발 디딜 틈 없이 어지러운 집. 무엇보다 나는 그 애의 말처럼 그 애가 살고 있는 방보다 훨씬 넓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17가정, 50여명이 모여 사는 살림터에서 개별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방은 2평이 조금 못된다고 들었다. 5층에는 우리 집과 '청소년센터 행복한 우리집'이 있다.10평이 넘는 우리 집, 30평이 넘는 ‘행복한 우리집’은 그 애 엄마의 말처럼 너무나 넓고도 좋은 것이다.

결국 나는 5층의 계단 참에 쭈그려앉았다. 폭탄맞은 집안 풍경을 보이기도 싫었고(참 이상하게도 정리되지 못한 집안을보이는 것은 내밀한 비밀을 들킨 것같은 부끄러움을 준다. 부부가 함께 사는 공간임에도 어지러운 집안은 온전히 내 책임이라고만 생각되는 것이다), 그 애의 방보다 넓은 우리 집을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다. 나는 옹색하게도 그 애에게 말했다.
“있잖아, 남의 집에 갈 때에는 엄마한테 가도 되냐고 허락받아야 될 걸. 그리고 지금 아기들이 너무 졸려 해서 오늘은 좀 힘들 것같은데 나중에 놀러오면 안될까?”

  책꽂이, 서랍, 장롱 뒤지기가 취미인 유한별. 차근차근 꺼내서 온 방안에 늘어놓는다.

  말리면 싫어하니까 그냥 둔다.

그 애는 집에는 안 들어가도 좋지만 구경은 꼭 해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나는 오늘은 안되겠다고 버텼다. 결국 그 애는 돌아갔다. 오래 전 일인데도 나는 그 날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매정함. 가증스러움. 미안함. 그리고 울고 싶은 마음. 하지만 아직도 나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엉뚱한 자리에 서있는 건지도 모른다. ‘함께 사는 세상’에 살고 있고, 장애인센터의 공동체 계획이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남편의 일터가 장애인센터니까) 나는 일상의 작은 일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품은 너무나 좁고 내 벽은 또한…너무나 두껍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살림 못하는 여자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사제의 아내, 사모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수많은 표상들을 무시하지 못한다. 결혼과 동시에 주어졌던 내 역할들에 충실하기 위해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가면을 쓰는 것이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말없이 웃었고 쟁반을 들고 열심히 쫓아다녔다. 하루의 수고는 6일간의 자유가 있었기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제 함께 살게 되면서 나의 가면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숨어살 수가 없는 것이다. 포장하고 사는 걸 반성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진 지금, 나는 변할 수밖에 없다. 그래,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 솔직하게, 가볍게, 유쾌하게 드러내야겠다.

나는 행동이 느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게 힘에 부쳐서 청소나 머리 손질은 꿈도 못 꾸고, 요리나 빨래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싶다. 누군가가 구겨진 남편의 옷을 지적하거나, 남편이 요리를 잘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결혼 잘한 줄 알라고 말할 때 나는 “남편은 날아다니면서 일하고 저는 휴직한 채 집에서 애만 키우잖아요”라고 솔직하게 반박하고 싶다. 무엇보다 다시 그 아이가 집에 오고 싶어할 때 “우리 집이 좀 어지럽거든. 그래도 괜찮지? 정돈 안되어 있으면 편하지 않냐?”하며 스스럼없이 초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저 이웃일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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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저의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군요. 그래서 부끄러워요. ㅠ.ㅠ

관련자료

동영상 <함께 사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