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선]의 에듀워스토리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서울 구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범국민교육연대 활동과 진보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교육과 문화적 실천으로 사회진보와 인간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 길 찾기에 노력 중이다.

온 민중에게 '철밥통'을

모든 노동자 민중에게 확장되어야 할 권리, '철밥통'

천보선  / 2005년06월14일 9시45분


1. 사기극 '교원평가' 공세의 한 이면

지금 교육계에선 '교원평가'라는 새로운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가 '교원평가'를 처음 들이밀 때만 하더라도 이 싸움은 해봐야 게임이 안 될 것만 같았다.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와 '교사만 평가를 안 받겠다는 게 말이 돼?'라는 압도적 여론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웬 걸. 그게 아니다. 교사들의 저항이 벌어지고, 논쟁이 되면서 양상은 새로워진다. 정부는 당황하고 거의 일방적일 것만 같았던 여론도 조금씩 달라진다. 교원평가 도입을 둘러싼 대립은 앞으로도 한 참을 갈 가능성이 높은데 논쟁이 되면 될수록 명분과 근거는 사라지고 상황 또한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교원평가라는 제도 - 자율적이고 협력적이며 다양한 의미를 지녀야 할 '교육실천을 정해진 매뉴얼로 개별적으로 계량화하고 서열화'하려는 것 - 자체가 비교육적 발상이고 실제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정책적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부의 교원평가 공세는 일종의 '사기극'이다. 많은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교육의 질을 높을 수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부적격 교원을 걸러내고 학부모, 학생의 참여 욕구가 실현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해지는 것도 물론 사실과 전혀 다르다. 오히려 영, 미, 일 등 '시장과 경쟁'의 신자유주의 논리가 판치는 몇 개 나라에서 해 본 결과 점수경쟁으로 교육왜곡이 심화되고, 협력적 교육관계가 파탄 나며, 평가와 관련된 잡무가 증가하고, 관료주의가 심화되고 민주적 교원들만 구조조정 당하는 것이 실제의 진실이다. 한 때 세계최고 수준의 복지를 구가하던 영국에서 공교육이 망가지고, 교원이 3D 업종으로 전락하여 높은 실업률에도 지원자가 없어 영연방의 세계 각지에서 용병교원을 모집해야 하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아직 신자유주의 정부의 사기는 통하고 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고 정부의 뻔뻔한 사기가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배경 중의 하나로 공무원, 교사 등 소위 '철밥통'에 대한 사회적 심리가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교원평가와 관련된 논란 속에 '철밥통'에 대한 비난이 그득하다. '철밥통' 교원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그래서 어떻게든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깃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든다. '근데 철밥통이 뭐지?'

2. '철밥통'과 신분보장

그 동안 많이들 써왔지만 '철밥통'의 분명한 뜻을 모르고 있었다. 사전을 한 번 찾아보았다. 그런데 아직 사전에는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내용으로 이해하고 쓰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설명글들이 올라와 있다.

"철밥통은 일명 깨지지 않는 밥통을 말하죠. 밥이라는 것은 주요 먹거리입니다. 일반적으로 돈을 의미하고 있죠. 그래서 직장을 구분할 때 철밥통이라고 하면 짤릴 위험이 없는 직업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죠. 예를 들면 공무원의 경우 정리해고라던지, 회사가 부도난다던지 하는 걱정을 안하쟎아요. 그래서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것이죠."('네이버'의 문답란에서)

"난 철밥통 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얼마후에 알았지만 공무원을 빗대서 생겨난 신종 단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깨지지 않는 밥그릇, 다시말해 채용해서 퇴직할때까지 근무를 한다는 이야기란다. 그러나 요즈음은 철밥통도 깨진다고 한다. 요즘 주변 친구들이 날 철밥통 이라 부른다. 주변 친구들은 모두가 업자? 들이다. 박봉으로 좀 힘들게 살아갈 때는 잘 나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친구들이 날 부러워 하니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가 보다."(daum의 어느 블로그에서)

몇 가지를 더 찾아봐도 비슷하다. 대개의 경우 엄청난 비난을 담고 있어서 무언가 대단한 내용이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따져보니 별 것 아니다. 무미건조하게 얘기하면 그냥 '고용이 안정된 직업'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정리해고라던지, 부도 걱정을 안 하고 채용해서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는 공무원, 교사' 등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용적으로는 이미 있는 말인 '신분보장'이나 '고용안정', '평생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신분보장 [身分保障] : 공무원이 형(刑)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신분상 불이익처분을 당하지 않는 것) 물론 '말'이라는 게 살아있는 것이라 '철밥통'이 더 확장된 의미로 쓰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신분보장'이나 '고용안정'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3. '철밥통'의 비밀 : 신분보장은 악이다!!!

철밥통과 신분보장...그런데 이 둘이 가리키는 대상은 같지만 느낌과 쓰임새는 천지 차이다. 신분보장은 제도화된 '권리'로서 좋은 것이고 따라서 '확대해야 할 노동조건'으로 느껴지지만 철밥통은 '특혜'이고 '악'이며 반드시 깨뜨려 나가야 할 '개혁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허 참 신기하다. 이렇게 말 한마디로 '선'을 '악'으로 만들 수 있다니. '철밥통'이라는 말에는 안정된 고용 상태가 '매우 잘못된 것이고 당연히 깨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안정성'을 '철'이라는 이미지로 극단화하고 '생존권적 고용'을 '밥통'으로 비하함으로써 그 의미를 매우 효과적으로 상징한다. 그리하여 '철밥통'이라고 하는 순간 '노동자들의 소중한 고용안정'이 '밥통이라는 별 것 아닌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죽어라 부여잡고 있는' 비난받아 마땅한 듯한 '악'의 상황이 되어버린다. 생존권투쟁을 비하하는 '밥그릇싸움'이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신분보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철밥통이 유행하는 시절이다. 그러고 보니 신분보장이란 말 들어 본 지 오래됐다. '철밥통'의 유행은 IMF 이후 노동유연화를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맥을 같이 한다.

4. 노동유연화를 강요하는 강력한 분할 지배의 도구

돌이켜볼 때 IMF 이후 유행해 온 '철밥통' 공세가 매우 교묘하고도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 자명하다. 그 동안 철밥통 공세가 주로 지배세력이 아니라 직업이 생존인 노동집단을 향해왔고, 실업과 비정규직 등 신자유주의가 몰고 오는 문제를 '덜 유연화 된 노동 때문'으로 엉뚱하게 초점을 돌리는 기능을 해왔으며, 노동자와 민중을 서로 이간질해 왔다. 그리고 효과 만점이었다.

철밥통 공세가 가해질 경우 지배세력은 물론이고 다양한 계급, 계층이 가세하도록 만들고 마녀사냥처럼 몰아쳐 해당집단이 수세적으로 거의 대응력을 상실하도록 만든다.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마냥 철밥통이 좋은 것이라고도 못하고 철밥통이 아니라고도 못한다.

'철밥통' 공세의 이데올로기적 힘은 무엇보다 효과적인 분할에 있다. 내 것은 '신분보장'이고 '고용안정'이지만 나머지는 '철밥통'이라 부르게 만듦으로써 각 부문의 각개격파에 불특정다수화된 형태로 민중까지 동원해낸다. '지하철 파업' 때 '시민볼모론'에 민중이 동원되듯이.

흔히들 신분보장이나 고용안정이 무사안일, 복지부동, 비효율을 가져온다고 말해진다. 이 역시 관료주의의 폐해를 노동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실과 다른 이데올로기적 공격이다. 신분보장 아래서도 공무원 사회를 보면 치열한 승진경쟁이 있다. 문제는 그것이 비민주적으로 왜곡되는데 있다. 많은 부분 복지부동 따위는 오히려 신분안정을 위협받을만한 상황 회피에서 비롯된다.

진짜 철밥통은 없다. 철로 된 밥통도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짤리지 않는 직장도 없다. 공무원, 교원의 신분보장도 '형(刑)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에 의하여' 얼마든지 해고를 당할 수 있으며 다만 '법이 정한 사유가 아니고서 신분상 불이익처분을 당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 정도면 모든 노동자가 누려야 할 기본적인 신분상의 권리여야 하는 것 아닌가?

5. 철밥통은 좋은 것. 온 민중에 철밥통을

철밥통이 신분보장이나 고용안정. 안정된 생존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결코 비난의 대상일 순 없다. 거꾸로 모든 노동자, 민중에게로 확장되어야 할 권리이다.

옹호되어야 할 신분보장, 고용안정이 노동유연화 공세 속에서 '철밥통'이라 비난당해온 상황, 게다가 구조조정으로 내몰리고 고통받는 사람들마저 흩어져서 '모든 노동의 유연화' 공세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은 현재의 이념적 지형을 반영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념 지형은 매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철밥통 비난의 다른 한편에는 비정규직 확대에 대한 염려도 있다. 이 거리를 메워야 한다. 이 거리를 메워야 분할 지배를 극복할 수 있다.

개념의 반전이 필요하다. '철밥통'은 비난의 언어에서 옹호의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 "철밥통을 깨자"에서 "모든 민중에게 철밥통을"로!

물론 이미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는 말을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철밥통이 신분보장과 고용안정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 것은 고용안정이고 남의 것은 철밥통인'인 거리를 메울 수 없다. '철'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밥'의 소중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 '철'은 더욱 안정된 생존권을 지향하는 의미로 쓰자.

철밥통의 쓰임새가 확장되면서 때로는 관료와 기득권세력을 비난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욕심은 결코 '철밥통'이나 '밥그릇싸움'에 담겨지지 않는다. 밥통이나 밥그릇에 담기에 그들의 욕심은 너무 크고 지저분하다. 그렇게 부르는 순간 오히려 그들의 엄청난 욕심을 너무 작게 바라보고 너무 적게 비난하는 것이며 민중의 소중한 생존권을 상징하는 '밥'을 모욕하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소중한 밥그릇을 지키고 확장하면서 모든 민중이 '철밥통'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온 민중에게 철밥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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