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의 현장
1990년 5월 한국화학연구원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후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위원장, 공공연맹의 전신 중 하나인 공익사회서비스노조연맹의 수석부위원장, 전태일 노동자상 수상, IMF 직후 민주노총 사무총장 등의 일을 해왔다. 과기노조 파견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 과기노조 정책위원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05년 4월 12일 과기노조 제 7대 위원장에 다시 선출되었다.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한국의 산업별 노조 운동

고영주 yjko1003@jinbo.net / 2005년07월18일 19시04분

현 시기 한국 사회 산업별 노조 운동의 특징적 양상

최근 산업별 노조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여러 가지 이유로 커지고 있다. 그리고 산별노조 운동을 둘러싼 최근의 다양한 시행착오와 논쟁은 최소한 87년 이후 전개되어왔던 한국사회 산업별노조 운동과는 사뭇 다른 특징적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87년 이후 한국사회 노동운동은 어떻게 보면 산업별노조 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크게 보면 그 시기는 첫째로 구호와 희망으로서의 산업별노조 운동 시기 (1987~1994), 둘째 실체로서의 산업별노조 운동 시기 (1994~2001), 셋째는 산업별 노조 자체에 대한 논쟁과 시행착오 (2002,3~2005.7 현재)로 구분된다.

첫째 시기에서는 기업별 노조 체제하에서 전노협, 대기업연대회의, 그룹별 연합체(현총련, 대노협), 업종회의 등의 다양한 연대조직으로 발전하였지만 그 궁극적인 지향은 모두 산업별 노조 체제였다. 규약, 선언과 강령에서 그리고 집회에서 산업별 노조는 공통의 꿈이었고 희망의 구호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업별노조를 건설할지 기존의 기업별 노조를 어떻게 산업별 노조로 전환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고민과 사업이 없거나 부족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두 번째 시기는 구호와 희망이었던 산업별 노조 체제가 구체적인 실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1994년 4월 당시 전국전문기술노조 연맹 산하 과학기술계 정부출연기관 노조들은 기존 기업별 노조를 해소하고 전국단위 초기업 단위 노조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으로 조직 체계를 전환하였다. 6개월의 투쟁 끝에 기업별 노조의 기존 단체협약과 조합원 권리가 그대로 전국단위 산업별 노조로 승계되는 합법적 조직 전환의 사례를 남김으로써 허공의 구호이자 막연한 어느 시기 희망이었던 산업별 노조 체제는 현실로 다가왔다.

비록 규모가 작고 장차 더 큰 규모의 산업별 노조를 지향했다는 측면에서 소산별 노조로 이름 지워졌고 업종별 단일노조가 먼저인가 아니면 바로 대산별 노조로 갈 것인가라는 논쟁을 불러오긴 했지만 과기노조의 경험은 그것이 소산별 노조이든 대산별 노조이든 실천적으로 법적으로 가능한 구체적인 경로를 남겼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 산업별 노조 운동의 질적인 전환점이었다.

더 나아가 전노협, 그룹별 노조 협의체, 업종회의가 중심이 되어 95년 11월 건설한 민주노총은 모든 조직을 산업별 연맹으로 재편하고 가맹단위를 산업별 연맹 혹은 산업별 노조로 함으로써 산업별 노조 체제로서의 그 조직적 지향을 명확히 하게 된다. 그 이후 전문노련과 사무금융 노련은 내부 업종의 다양함과 조직적 편차로 인해 소산별 노조 건설 운동이 확산되고 병원연맹, 대학연맹, 금속산업연맹은 아예 연맹 자체를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다. 한편으로는 규모 있는 산업별 노조를 지향하며 연맹끼리의 통합이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세 번째 시기는 그동안 산업별 노조의 경험과 시행착오 및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노동운동의 전략을 둘러싸고 오히려 산업별 노조에 대한 논쟁이 확대되어온 시기이다.

민주노총은 조직혁신위원회에서 제조업, 건설, 공공운수, (민간)사회서비스, 언론, 교육, 공원 등 7개 대산별 노조로 2007년 이전에 재편하는 ‘산별 이행 방안’을 제출하였다가 구획에 대한 기준의 모호성과 상층부의 내리꽂기 사업이라는 비판, 서울대 병원 지부의 탈퇴를 둘러싼 논쟁 조정 등의 이유로 일단 유보하고 삭제하였다. 이것은 이후 조직별 논의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조정 과정을 거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보건의료산업 노조에서 서울대병원 지부의 탈퇴와 공공연맹 가입은 산업별 구획 논쟁, 사업장 단위 집단 탈퇴의 유효성 논쟁, 통일교섭 및 통일 협약의 성격 논쟁, 본부와 지부의 권한과 역할 논쟁, 조직 대상의 충돌과 조직간 갈등시의 해결 시스템 등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편 공공연맹은 최근 내부 산별기획단에서 96년 하반기까지 ‘공공산별노조’를 건설하는 방안을 제출하였으며 중앙집행위원회와 현장 간부 합동 수련회, 분과별 토론, 소산별 노조 토론 등을 거치며 연맹의 주요한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직의 뼈대를 업종으로 할 것인가 지역으로 할 것인가, 최근의 운수산별 노조 운동과는 어떻게 관련지을 것인가, 기존 소산별 노조 운동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내릴 것인가, 공공산별 건설의 원칙과 방향은 무엇인가, 공공부문 교섭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제시된 시기는 적절한 것인가 등등이 주요한 논쟁의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대 병원 지부 노조의 가입은 여기에 조직 대상 및 이후 대산별 노조 추진과 관련한 논쟁을 추가시켰다.

금속산업연맹은 99년부터 2년여의 토론과 사업 속에 17만 연맹 조합원, 더 나아가 160만 금속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금속노조를 2001년 2월에 건설하였지만 아직 대공장 노조들이 가입하지 않고 있어 연맹의 구조와 사업이 혼선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서울대병원 지부의 탈퇴 사례와 함께 산별노조 건설 및 건설 이후 교섭 및 조직 운영에서의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 사업장의 이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쟁점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하여간 금속 연맹의 현 집행부는 선거 때 금속연맹 해소를 약속한 바 있어 금속 노조를 둘러싼 이러저러한 논쟁은 확대될 전망이다.

더 나아가 가속화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한국 사회 외국 (투기)자본의 지배력 확대, 사회 경제적 양극화, 제조업 공동화와 고용 없는 성장을, 현장 단위에서는 상시적인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산, 신인사제도 도입 등에 따른 노동 강도 증가와 고용 불안 확대를 초래하고 있고 이는 한국 사회 노동 운동의 산별 노조 운동에 새로운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래서 더욱 산업별노조 건설을 서둘러야한다며 일정을 정하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한쪽에서는 그럴수록 더욱 현장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실질적인 계급적 단결의 토대, 그리고 조직 민주주의의 담보가 없는 상층부 중심의 내리꽂기 식 산업별노조를 경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B>향후 산업별 노조 운동의 전망과 과제 </B>

현 시기 한국 사회 산업별 노조 운동의 이러한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논쟁은 그 자체로 상당히 역동적인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기업별 노조 구조에서 여전히 상층 간부 차원의 고민과 토론으로 편중되어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존의 산업별 노조 체제의 조합원들에게는 구체적인 고민과 논쟁거리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산업별 노조 체제로의 재편에 대한 조급함과 강박관념이 있고 한편에서는 강한 우려와 문제제기가 있다.

한편에서는 산업별 노조에 대한 깊이 있는 논쟁에 매달리고 한편에서는 여전히 산업별 노조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다. 이러한 역동적인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어 갈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최근의 논쟁은 한두 번의 토론이나 조급한 사업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노동운동의 대내외적 환경 요인 또한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별 노조 운동은 그 자체로 여전히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중요한 화두이며 실천적으로도 산업별 노조 추진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제대로 갈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니 오히려 또 다른 시행착오와 논쟁이 그 과정에서 확산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칫 조직 형식주의와 도깨비 방망이식 논리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현 시점에서 산업별 노조 운동의 원칙과 방향을 제대로 세우는 일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것은 산업별 노조 운동의 올바른 목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전략, 그리고 그 전략을 수행하는 지배구조 및 조직운영 체제를 어떻게 올바로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며 더 나아가 외부의 환경 요인 - 사회경제적 조건, 제도 및 문화, 이해관계 집단의 구조, 이념 및 아이디어 등 - 을 민주노조 운동이 어떻게 주도적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이른바 ‘사회이행 전략과 프로그램’속에 산업별 노조 운동을 올바로 배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중 현 단계에서 짚어졌으면 하는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산업별 노조 운동의 목표와 전망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산업별 노조 운동의 1차적인 목표는 물론 기존 기업별 노조 체제를 산업별 노조 체제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영역에서 산업별 노조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산업별 노조의 건설 과정과 이후의 조직 운영 과정에서 기업 내에서의 노동자 투쟁과 의식을 산업 및 사회적 영역으로도 확대하고 노동자 연대의 성격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산업별 노조 운동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민주노조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적 수단이자 조직적 무기로서 그 임무를 중실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산업별 노조 운동이 작금의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갖고 있는 부정적 문제와 극복해야할 가치들 - 빈곤, 사회적 불평등, 경제의 항상적 불안정, 자원의 낭비와 환경파괴, 전쟁, 물질 만능주의 등 - 을 대체하는 가치들 - 자유, 평등, 연대, 효율성, 다양성,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등 - 을 확산시키고 정착시키는 ‘가치 대체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 이행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기능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신뢰받는 민주적인 지도력’과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참여’를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우선적으로는 산업별 노조 운동을 일선에서 책임지는 상층 간부와 현장 간부들이 건강한 노동자적 품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헌신적으로 운동에 복무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신뢰받는 지도력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장의 노동자 대중이 산업별 노조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당면한 사업과 다양한 투쟁,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뢰받는 헌신적인 지도력’과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참여’가 역동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현장의 조직력과 투쟁력에 기초한 강력한 산업별 노조 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셋째는 조직, 정책, 투쟁 및 각종 사업에 총체적인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총연맹에서부터 단위노조에 이르기까지의 조직, 정책, 투쟁 및 각종 사업을 종합적으로 통합하고 연결시켜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대공장과 중소 사업장간에, 총연맹 및 연맹과 단위 노조 현장 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간에, 노조 간에, 사회 공공성 강화 투쟁과 사업장내 노동자 권리 투쟁 간에, 이념 및 담론 투쟁과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 해결 투쟁 간에, 지역/업종 및 산업 간에, 상층 간부와 노동자 대중 간에, 기존 산업별 노조의 본부와 지부 간에 커다란 단절과 장벽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천 개의 부품이 어우러져 하나의 자동차를 이루는 것처럼, 그러한 단절과 장벽을 허물고 차이가 있지만 각자가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몸체를 이루려는 노력이 산업별 노조 운동 속에 녹아있어야 할 것이다. 대공장과 중소 사업장 노동자 이해의 조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통일 단결, 미조직 노동자의 보호와 조직화, 이념 및 사회 공공성 강화 투쟁과 구체적인 현장 투쟁과의 통합 연계, 기업별 노조(지부)를 뛰어넘는 단결과 통합적인 사업, 폭넓은 공동사업 및 공동행동의 확대, 중장기 전략에 기초한 단기 과제의 해결 등을 통해 산업별 노조 운동을 질적으로 확대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 지배구조와 조직 운영, 조직 문화를 획기적으로 혁신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사회이행 전략 및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한 축으로서 산업별 노조 운동이 기여하려면 민주노조 운동의 체제 - 목표, 전략, 지배구조, 조직 운영 - 를 어떻게 건강하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함께 이 체제와 상호작용하는 외부 환경 요인 - 사회 경제적 조건, 제도 및 문화, 이해관계 집단의 구조, 이념 및 아이디어 등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별 노조 체제는 민주노조 운동의 체제 중 주요한 전략적 수단의 하나이자 지배구조 및 조직 운영의 뼈대를 이룰 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산업별 노조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며 또 한편으로는 산업별 노조 체제가 민주노조 운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직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원칙인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책임성을 어떻게 지키고 강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변화하는 사회 경제적 조건에 반응하거나 이를 바꾸어 나가려고 할 때, 혹은 많은 이해관계 집단과 충돌하면서 노동운동을 지지 지원하는 세력을 키우려고 할 때, 또 기존 제도와 문화 중 노동운동에 장애를 일으키는 것들을 제거하고 바꾸려고 할 때, 기존의 자본주의를 확대 강화하는 이념 및 각종의 아이디어와 씨름하고 새로운 이념과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려고 할 때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연대성, 책임성의 문제는 노동운동의 정체성을 지키고 산업별 노조 운동을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이것을 제대로 확대 강화할 수 있을 때라야 산업별 노조 운동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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