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의 사노라면
도시빈민운동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전과자들... 나의 삶 속에서 때로는 이들과 다투고 지치고 힘들어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 대화 할 준비를...

어느 장애인 노점상의 분신

최인기  / 2005년08월03일 20시35분

휴가를 마치고 출근해서 그동안 밀린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국회에 항의를 차 들어간 장애인 노점상 한 분이 분신을 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누구나 경험을 했을 테지만 작은 성냥불에 손끝을 잠깐 데어도 그 쓰라림은 며칠은 간다. 화상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그 고통은 일시적인 아픔에서 치유되지 않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일그러진 형태로, 그리고 후유증으로 끝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장애인 노점상의 분신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노점상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저항은 끝내는 스스로의 몸에 불을 당긴다는 것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은 장애인들이라는 것이고 이 또한 주기적으로 2-3년에 한번은 열사투쟁을 기어코 치루고야 만다는 것이다.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서 온몸이 일그러진 채 응급실에 누워있는 장애인 노점상(황효선씨 남, 55세, 한국장애인문화협회 부천이동상담소장)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들은 연신 분신한 이유에 대해서 묻고 사진을 찍고 그랬다.

그의 분신이 있기 한달 전 이미 부천에서는 또 다른 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동반 자살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 7월 10일 새벽 3시경 쇠망치와 파이프로 무장한 150여명의 용역반들이 부천역으로 들이닥쳤다.

무차별적인 단속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수많은 노점상들이 남녀 가리지 않고 아스발트 위로 나동그라졌고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자신의 승용차를 걸어 잠그고 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석유를 부어 분신을 기도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은 연기와 불이 활활 타오르자 지나가는 행인들이 차 문을 부수고 '일촉측발'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도시빈민들 특히 노점상들의 투쟁은 대부분은 이와 같이 극한적인 한 개인의 희생을 통해서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 그중 95년 서초 강남지역에서 휠체어에 잡화를 실어놓고 판매를 하던 최정환열사 투쟁은 수많은 사회단체가 결합을 하여 제대로 된 투쟁을 전개했던 유일한 투쟁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장애인과 노점상의 문제를 크게 알려냈던 주요한 투쟁이었다.

같은 해 인천에서 농성중 한 장애인 노점상이 의문의 변사체로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그분은 이덕인 열사 였으며 몸에 밧줄이 감긴 채 실종된지 3일만에 인천 아암도 앞 바다에 의문의 변사체로 떠오른 것이었다.

이밖에 99년 대전역 앞 지하도에서 조그마한 좌판을 내걸고 장사를 하던 장애인 노점상 윤창영 열사의 투쟁은 그해 8월을 뜨겁게 달군 바 있으며 2003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실시이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내걸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다 끝내 유명을 달리한 청계천의 장애인 노점상 최옥란 열사에 대해서는 모두 다 기억할 것이기에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슬픔은 계속이어졌다. 이미 봄부터 월드컵경기를 앞두고 전국적으로 몰아닥친 단속은 서울청계천복원 공사를 앞두고 여름까지 강행이 되었다. 결국 노점상 단속에 맞서 환갑이 훨씬 지난 장애인 노점상이 분신을 한 사건이 있었다. 이분의 이름은 박봉규열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그해 가을과 겨울을 넘기고 다음해 봄까지 서울시와 중 구청을 상대로 질기고 질긴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올해, 2005년 3월, 40대 청각장애인노점상이 벌금 70만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 네 식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컨테이너 노점을 차렸다가 당국에 적발돼 벌금을 부과 받았지만 낼 형편이 안 되자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기한 내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는 법원 소환장을 받은 것과, 밀린 월세 30만원도 함께 자살의 배경이 됐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 6월에는 서초강남의 장애인노점상 김혜일씨가 생계를 비관하여 한강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며 병든 어머니와 어린 두 자녀의 가장으로 어렵게 노점상을 했으며 강남구청의 단속을 오랫동안 받아오다가 비관자살을 한 것이다. 비록 목숨을 건졌지만 분신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장애인 노점상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96년 부산의 이동재 씨 그리고 종로 5가에서 장사를 하던 98년 전창옥 씨 등이 모두 장애인이자 노점상들이었다.

가난도 부족해 장애의 이중굴레 속에서 발버둥치는 사람들 그들이 극한 상황에 내몰린 끝에 선택한 이 비극적인 상황이 우리의 현주소인 것이다. 또한 문제는 죽음의 벼랑으로 몰고 간 것이 가난과 장애만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사회의 그늘을 보듬지 못하는 행정과 경직된 법 집행이 사실상 이 비극을 방조한 것에 다름없는 또 다른 이유다. 장애인 노점상 황효선 씨와 장애인 노점상 부부가 분신을 시도한 배경에는 부천시의 납득하기 힘든 행정 처사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살펴보자.

부천시에서는 노점상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자 약 3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어용 장애인단체들에게 용역계약을 체결해 주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반도덕적인 처사인가? 부천 역 광장에서는 장애인과 노점상, 장애인과 장애인들이 서로 할퀴고 싸우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연출이 되었고 결국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갈등을 조장하고 상호반목을 하도록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교묘히 농락한 것이다.

4월 26일자 부천타임즈 원미구청 정수식 도시정비과장 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이번 일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과 아울러 불법영업을 자행해온 이들을 근절시킬 계획” 같은 신문의 원미구청 김환화 가로정비팀장의 발언은 가관도 아니다. “장애인에게 단속권을 주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하루 종일 노점상 옆에서 영업을 방해하면 무서워서 그만둘 것이고, 또 장애인들은 일당도 비장애인들의 1/2 밖에 안되고 식사제공 등 제반경비를 비롯한 예산이 적게 들어 이들에게 맡길 계획.."이란다.

4백50만 장애인 가운데 20%는 절대빈곤, 30%는 절대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현실을 당국도 우리사회도 모두 유념해야 한다. 그런데 지역자치단체의 장애인에 대한 정책이라는 것이 위와 같은 것이라면 얼마만큼 문제가 심각하고 도대체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는지 묻고싶다. 빈곤층들이 피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의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지 않는가

이날 병원에서 대책을 논의하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채널을 뉴스에 고정시켜 놓고 기다렸지만 국회에 항의하러 갔다가 분신한 장애인 노점상의 사건은 끝내 보도가 되지 않았다...
참새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