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선]의 에듀워스토리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서울 구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범국민교육연대 활동과 진보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교육과 문화적 실천으로 사회진보와 인간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 길 찾기에 노력 중이다.

꼼수는 없다

천보선  / 2005년08월08일 11시57분


1. ‘교원평가 저지’를 위해 1대1 교섭구조를 두고서 다자간 사회적합의구조를 택하다.

전교조가 ‘학교교육력 제고를 위한 특별협의회’(이하 협의회)라는 이름의 일종의 사회적합의기구에 참여하기로 하였다.(7월15일 참세상 뉴스 참조) 여기에는 교육부와 전교조 외에도 교총과 학부모단체를 포함 7개의 단체가 참여한다.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평가가 핵심의제다.

그런데 굳이 ‘사회적합의주의’에 대한 비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노동조합으로서는 여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마땅히 교섭테이블에서 다룰 문제를 협의회에서 다루는 것부터 일단 손해고, 참여하는 여타 단체들이 공격적으로 교원평가를 촉구하는 매우 불리한 논의구조라는 점에서 더욱 손해다. 게다가 비록 ‘합의에 의한다.’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교원평가 시행’을 동의해 줘 버리기까지 하였다. 아예 처음부터 집문서를 내주고 들어가는 모양새다.

노동조합으로서는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전교조 집행부는 적극 추진하였고 대의원대회도 승인해 주었다. 왜 그랬을까?

2. 당하고도 이긴 것 같은 착시현상

기본적으로 협의회 참여가 매우 위험하다는 걸 집행부나 대의원과 조합원들이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사람들로 하여금 혹시나 혹은 나아가 ‘음. 이거면 됐어!’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장치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합의’라는 문구였다. 협의체 참여의 조건으로 교원평가를 시행하기는 하되 ‘합의’를 조건으로 단 것이다.

문구로만 본다면 뭐 ‘시행’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고 ‘합의’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지만 이런 경우 강자인 교육부의 입장이 관철된 것으로 보는 게 맞고 객관적 사실 또한 그러하다.

그런데, 무엇에 홀린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합의’라는 문구를 두고 집행부와 일부에서 ‘교원평가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고 전교조가 승리했다’는 부푼 해석을 한 것이다. 비록 교원평가 시행엔 동의해 주었지만 시기와 방식 등 구체적 방안의 문제를 동의해 주지 않으면 교원평가를 물 건너가게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정말 교원평가가 물 건너 간 것처럼 호들갑을 떤 일부 보수언론도 착시현상을 도왔다.(그들의 호들갑은 사실 5-6월 시기 광범한 교원들의 저항으로 이미 난감해진 교원평가 9월 시행 일정이 조금 유보된 것에 대한 아쉬움의 격한 표현이었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힘겹게 싸우지 않고서도 교원평가 저지투쟁을 승리’하는 것 아닌가? 투쟁으로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도 않고, 여론의 비난도 피해가면서 목표를 달성하는 그야말로 ‘지혜로운 투쟁’을 이루는 게 아닌가? 뭔가 불안하긴 하지만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기대였고 그 기대 속에서 그 모든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기로 하였다.

3.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지혜로운 투쟁‘의 꿈

착시는 실현되기 어려운 어떤 욕구가 강렬하게 표현되는 현상이다. 도대체 어떤 실현되기 어려운 욕구가 ‘협의체 참여가 승리의 길’이라는 착시 현상을 가져왔을까?

언제부턴가 대중운동 바닥에서 ‘가열찬 투쟁’ 대신에 ‘지혜로운 투쟁’이라는 말이 귓가에 익숙하게 들려온다. 협의체 참여와 관련된 전교조 논쟁 속에서도 ‘지혜로운 투쟁’이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하곤 하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지혜로운 투쟁’이란 말이 자못 심상치 않은 말이다. 투쟁을 지혜롭게 벌여야 한다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론 대중운동의 손발을 스스로 자르는 의미심장한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도 ‘지혜롭지 못한 투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혜로워야 한다.’는 추상적 지향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지만 이번 논쟁에서처럼 그것이 ‘가열찬 대중투쟁’을 부정하고 ‘상층의 놀라운 정치력과 협상력’에 기대하는 의미로 쓰여진다면 노동계급 스스로의 무장해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결코 ‘지혜’로운 것도 아니며 ‘투쟁’도 아니다.

사실 노동자, 민중에게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지혜로운 투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배세력은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치열하게 싸운 만큼 조금씩 성과를 내어 올 수 있을 뿐이다. ‘투쟁만이 살 길’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민중투쟁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한 교훈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지혜로운 투쟁’과 같은 꿈은 자꾸만 생겨나고 최근에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아마도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시달리는 대중운동의 혼란과 잠재된 패배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분명한 것은 노동계급과 민중에게 당당하게 투쟁하는 것 말고는 지배와 억압에 맞서 요구와 권리를 실현해 나가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4. 노동자, 민중에 꼼수는 없다.

이번 전교조의 협의체 참여만 하여도 그 실체는 결코 지혜가 아니다. 냉철하게 본다면 사실은 ‘굴복’이고 잘해야 ‘꼼수’이다. ‘교원평가 시행’을 동의해 주었다는 점에서 굴복이며 그럼에도 ‘끝까지 합의해주지 않음으로써 교원평가를 무산시키겠다.’는 궁리를 한다는 점에서 꼼수인 것이다.

그러나 약자의 꼼수는 통하지 않는 법이다. 꼼수는 가진 자들의 몫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어디 구석에 처박힌 작은 장치로도 전체를 뒤흔들 힘과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자는 명분을 포기한 순간 작은 장치마저 아무런 의미 없이 날려버리기 십상이며 더 이상 말 빨조차 세울 수 없다.

5-6월 교육계를 뒤흔들던 교원평가저지투쟁의 와중에서 협의회 참여의 흐름이 만들어진지 한 달 여. 아는 새 모르는 새 교원평가저지투쟁의 지형은 한 참 어려워졌다. 대중투쟁의 흐름은 끊겼고 전교조마저 반대의 목소리를 못내는 사이 여론은 더 악화되었다. 당사자인 교원들의 격렬하고 압도적인 저항에 직면했던 교육부는 한 숨 돌리면서 자신 있게 ‘교원평가 시행’을 공언하고 있다. ‘13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선을 물리친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꿈꾸었지만 실제로는 이길 수 있는 대중투쟁의 장을 놔두고 질 수밖에 없는 적진으로 무모하게 달려든 원균이 된 모양이다. 협의체 구성은 사실은 전교조가 아니라 한 때 어려움에 직면했던 교육부의 꼼수였고 그것이 통했던 것이다.

최근 교육부는 협의회마저 아예 무시하고 교원평가 시범실시 일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리기도 하였다. 각 언론에는 9월 실시 강행으로 보도되었다.(8월4일 참세상 뉴스 참조). 그런데 교육부의 급작스런 배신에 격하게 항의하여 얻은 대답이 “교원평가를 2학기 중에 시행할 수 있도록 하되, 가능하면 9월중 시범실시를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었다. 해명은커녕 늦어도 2학기 중으로 교원평가를 시행할 것임을 못 박고 있었다. 이 사건은 협의회가 교사들의 대중투쟁을 중단시키는 수단이었을 뿐, 대중투쟁이 멈추는 순간 강자인 정부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까뭉갤 수 있는 허약한 구조이기도 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5. 당당한 대중투쟁만이 신자유주의 저지의 길

노동자 민중에게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그런 식의 ‘지혜로운 투쟁’이란 없다. 기껏해야 스타일 구기는 꼼수고 또 그런 꼼수를 써봐야 통하지도 않는다. 오직 신자유주의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이에 맞서는 당당한 대중투쟁만이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확보해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불과 한 달 만에 협의회 참여는 교원평가 저지를 위한 승리의 과정이 아니라 교원구조조정의 늪으로 빠져드는 길임이 확인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소위 ‘사회적합의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사례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꿈이 한 낱 물거품임이 확인된다고 해서 곧바로 ‘그렇다면 싸워서 이기자’라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꿈’의 밑바닥에는 투쟁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두려움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패배주의가 자리 잡고 있으며, 물거품으로 확인되는 순간 ‘지혜’로 포장되었던 패배주의가 비로소 자신을 드러내면서 결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냐/굴복이냐의 근본적 대립을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체가 한단계 전진하는 새로운 차원의 진정한 고민과 결의가 필요하다.

아마도 이 문제는 신자유주의 도래 이후 지금 거의 모든 대중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중심 문제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 문제를 전교조는 교원평가저지투쟁과 협의회에 대한 경험을 거치면서 매우 구체적이고 극적인 모습으로 상황을 대면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전교조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해 나가느냐는 매우 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전교조 자체의 운명과도 직결되며 또한 ‘사회적합의주의’로 포장된 신자유주의 공세를 우리 운동이 어떻게 대면해 나가느냐의 구체적인 과정의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미 이 과정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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