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끊임없는 은폐, 계속 되는 죽음

정부와 자본, 투쟁을 요구하다

해미  / 2005년08월09일 14시46분

또 하나의 죽음

지난 7월 5일 두산중공업의 목수가 현장에서 사망했다. ‘아무리 공사판 인부 목숨은 개 값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고 유용만씨 동생의 절규는 매년 800명씩 하루 2명의 노동자가 현장에서 죽어가는 건설업의 열악한 상황과 은폐에 급급한 건설자본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과수의 부검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하지만 정수리에 출혈이 동반되어 있어 사건의 전모가 미궁에 빠졌다. 특히 심근 경색이 외부의 온도나 육체적 충격, 정신적 스트레스, 과로 등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일하던 현장의 안전장치가 매우 부실하였다는 사실은 낙하나 추락의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하게 한다.

증폭되는 ‘은폐’ 의혹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측에 의한 적극적 ‘은폐’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6시간이 지난 후에야 경찰에 신고했고, 유족에게는 ‘외상은 없는 자연사’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또 유족과 경찰이 조사를 나갔을 당시에는 현장의 핏자국은 이미 지워져 있었고 사고 당시 쓰고 있던 안전모가 없어진 점, 목격자가 바뀐 점, 119가 아닌 사설응급구조대인 129를 부른 점 등을 들어 유족과 공대위는 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진상조사가 끝난 현재까지도 사측은 “현장에서 난 상처인지 이동하면서 난 상처인지 모르겠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거기다가 교통사고나 지병으로 인한 사고의 경우 현장조사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산업안전감독관 집무규정’을 충실히도 준수한 건설현장에선 수많은 산재사고가 은폐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번 사망건도 ‘지병’이라는 사측의 말을 들은 부천노동사무소는 ‘규정대로’ 현장조사를 나가지 않았고 노조와 유족의 요구로 발생 나흘째에 산업안전공단과 함께 현지조사에 나섰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돼는 정황을 앞에 두고 갑자기 형을, 아버지를, 남편을 잃은 가족들에게 이해하라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죽었으면 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라며 유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오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어 오던 자본의 산재 은폐와 열악한 건설업 노동자들의 노동보건 현실이 빚어낸 참극이다.

너무나 열악한 건설업 노동자들의 노동보건 실태

건설업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04년 산재통계를 살펴보면 건설업에서의 부상자는 1만 8천여명에 달했고 사망자는 779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27.6%로 제조업(23.8%)을 젖히고 1위를 하였다. 더군다나 이런 열악한 실태는 소위 ‘잘 나가는’ 건설회사에서 더 심하다. 노동부가 '2004년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1천대 건설업체의 재해율'을 조사결과 5대 건설사(공사실적액 기준)들의 산업재해율이 중견건설사들에 비해 높았다. 5대 건설사가 지난해 1천대 건설업체 재해자의 15.9%, 사망자의 34.4%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이런 높은 산재 사망의 뒤에는 자본의 안전보건조치 소흘이 자리잡고 있다. 올 6월 노동부의 ‘장마철 대비 일제 안전점검’결과 점검 대상 1.025개 중 95%인 973개소가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했다. 총 3,755건의 위반내역중 추락. 낙하 예방조치 미실시가 1,884건으로 전체의 50.2%를 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감전예방조치 미실시 528건(14.1%), 기계.기구에 대한 안전조치 미실시 349건(9.2%) 순으로 나타났다. 정말 충격적이다. 건설 현장에서는 안전보건조치를 지키지 않는 것이 상식이란 말인가?

이 안전점검 결과 30개소의 건설현장이 사법처리 될 예정이며 6개 현장의 경우에는 전면 작업중지 조치가 내려졌다. 사법처리대상 30개 사업장 중에 두산산업개발(주) 현장이 유일하게 2개소가 동시에 적발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죽음의 악순환, 산재 은폐

이번 사건의 중요한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자본의 ‘산재 은폐’ 시도이다. 많은 현장에서 공상의 이름으로, 또는 정확하게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도 모를 사측의 산재보험을 통하지 않은 ‘은폐’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특히 대다수가 비정규직인 건설업의 경우 더욱 심하다.

노동부가 지난 6월 공개한 산재예방관리 불량 사업장 2백 28곳을 살펴보면 16곳이 산재발생 미보고(산재은폐)로 보고되어 있다. STX조선이 26회로 당당히(?) 1위를 하였고 현대미포조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삼성중공업, 두산중공업 등의 대기업 계열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동부의 발표가 이 정도인데 전체적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은폐가 되고 있는 걸까? 소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이렇게 은폐가 되는데 일용직 건설 노동자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나 될까?

2004년 산재 통계를 살펴보면 건설업이 사망자수는 가장 많았으나 재해율은 제조업이 3만 7,579명(42%)으로 가장 많았으며 건설업이 1만 8천여명으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제조업과 건설업 노동자수에 대한 비교를 하지 않더라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 어떻게 재해자수와 사망자수가 비례하지 않고 달라지는 걸까?

여기 단적인 예를 보자. 건설산업연맹이 실시한 2003년 조사에 따르면 산재를 당한 노동자 중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은 것은 20.4%에 불과했다. 대부분(46.7%)은 공상으로 처리되었으며 보상을 받지 못한 경우도 28.7%에 달했다. 즉, 전체 재해발생의 75.4% 은폐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부의 조사 결과와도 비슷하다. 노동부가 2001년 건설사업주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종합건설업체는 24.1%, 전문건설업체는 59.6%가 산재를 은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특징적인 간접고용 구조로 인해 ‘십장’이나 ‘오야지’와의 인간관계를 이용한 산재은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건설산업연맹에 따르면 건설사업주는 십장이나 오야지에게 <시공참여자 계약서>나 <도급 계약서>를 통해 4주 미만의 산재는 십장이나 오야지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노동부 통계로 잡히는 것은 심각한(!) 손상에 불과한 것이다.

죽을 정도로 다치지 않으면 ‘산재’라고 인정받지도 못 하는 것이 지금의 건설노동자의 현실인 것이다.

이렇게 자본에 의해 전 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산재은폐는 건설 노동자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특히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한 경우에 더 심해진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산재 승인을 받은 이주 노동자들이 3년간 81%가 증가했는데 이중 미등록 노동자는 지난해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대규모 합법화 조치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제 강제추방 될지 몰라 절망한 노동자들의 자살과 자해가 줄을 잇고 있는 마당에 신분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산재 신청은 죽을 정도의 질병이 아닌 이상 엄두도 못 내는 것이 지금의 현실 아닌가?

국내 전체 산업재해율에 비해 이주 노동자들의 재해율이 낮다. 이주 노동자들이 더욱 열악하고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인데 재해율이 낮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주목을 받았던 노말 헥산 중독에 걸린 여성 노동자들처럼 처참한 노동환경과 질병, 감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싸움은 시작되었다.

하이텍 노동자들이 산재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 간지 60여일이 되었다. 미동도 않는 근로복지공단을 향해 한층 더 가열찬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여수산단과 광양산단에서는 노동보건의 사각지대에 놓여 건강 검진도 작업환경측정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건설 노동자가 급성백혈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유해 물질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알려져 있는 정유 공장 내부 전체를 청소하는 대정비 시기에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의 산재 승인을 위해 광주·전남 지역이 뭉쳤다.

한 건설 노동자가 원인을 모르는 채 죽었다. 자본은 여전히 ‘지병’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노동부는 ‘늦장 대응’으로 화답했다. 그의 시신은 아직 편안히 잠들지 못했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1월 작업중 사망한 노동자를 ‘교통사고’로 둔갑시켰던 전력도 있다.

노동자들을 건강을 착취해서 이윤을 올리는 한편 산재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은 근로복지공단이나 노동부나 자본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노동자들의 ‘질병과 죽음’이 문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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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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