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욜]의 Rainbow +action!
Rainbow는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성소수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며 각 색마다 섹슈얼리티, 생활,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정신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에 action의 의미를 더하고자 한다. 현재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작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위기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정욜  / 2005년08월24일 15시49분

얼마 전 지역번호 061로 시작되는 부재중 번호가 휴대전화에 찍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었고 그는 다름 아닌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회원 A였다. 지금 전라도 순천에 있는 한 절에 있다고 했다. ‘왜 그곳까지 갔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이미 A의 삶 속에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무미건조한 대화만을 한 채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고, 난 나의 일상에서 잠시 멀어져간 그 친구의 삶을 떠올렸다.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꿈을 만들어 나갈 19살의 청소년, 2003년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조항 삭제를 위해 많은 성소수자들이 캠페인·집회를 벌이며 거리에서 뛰어다녔던 그 때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청소년 동성애자,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인해 가족과 학교로부터 버림받고 서울로 상경해 힘든 노동을 해가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던 그 친구는 동성애자 모임에서만큼은 언제나 밝은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만큼은 자신 있게 얘기하는 밝고 적극적인 친구로 기억되고 있다. 반대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는지 아니면 관심을 끌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간혹 ‘충격적인 문자’를 날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좋지 않은 취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지방으로 내려가기 얼마 전 양화대교 위에서 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그 친구를 경찰서에 찾아가 신변인도 서약을 하고 데려 올 만큼 '위기, 불안, 우울' 이 세 단어는 A의 일상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었다.

위기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의 현실

지난 7월13일에 방영된 MBC <뉴스투데이-현장 속으로>의 이반문화 확산 보도는 이 사회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억압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사이트를 무분별하게 접하면서 동성애 성향에 무감각해진 아무생각 없는 존재로 표현되었고, 청소년기 가질 수 있는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상적인 이성애적인 성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되었다. 아울러 동성애에 대한 윤리적 공포심을 조장한 것은 물론 동성애와 관련된 정보 접근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는 여전히 ‘음란’과 ‘유해’한 행위이고 동성애자는 청소년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유해한 집단들인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과 무관하게 90년대 후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인터넷 등 각종 미디어의 보급은 정보획득에 취약했던 청소년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였고, 그런 만큼 과거보다 일찍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청소년들이 예전보다 동성애에 대해 좀 더 유연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한 반면, ‘야오이’, ‘팬픽’과 같은 현실과 거리가 먼 매체들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자신들만의 환상과 이미지를 키워 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이버공간을 벗어나 실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 심각한 충돌과 갈등을 보인다. 학교에서는 동성친구와 스킨십이 있기만 해도 제재를 가하는 검열의 현실에 놓여있고, 자신의 성정체성이 주변 친구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게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우팅(Outing)에 대한 불안과 존재감에 대한 좌절을 겪는다.

한국청소년상담원이 2003년 실시한 조사 중 ‘가까운 친구가 동성애 성향이 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거부하는 행동(79%)이 수용적 태도(17%)보다 월등히 높았다는 사실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동료들로부터 가해지는 신체, 언어적 폭력에 충분히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성애에 대한 태도연구에 있어서도 ‘이해하기 어렵다’ ‘징그럽다’ ‘정신병이다’ ‘변태다’ 등의 응답이 가장 높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한 청소년들은 불과 9.3%로 나타났다. 교사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상담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지도하겠는가? 에 대한 답변 중 ‘이성애로의 전환을 유도하겠다.’ ‘병원가서 치료를 받게 하겠다’ ‘건전한 이성만남을 권장한다’ 등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더욱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는 대답이 많았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는 사회적 스트레스는 그들로 하여금 심각한 고립감을 느끼게 해 신체적, 사회적으로 황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우울과 자살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청소년의 자살 요인 중 30% 정도가 동성애적인 성정체성 때문이라는 보고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매 45분마다 자살을 시도하고, 매 6시간마다 자살에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교적응 장애, 낮은 자아존중감, 가출, 약물남용, 높은 음주·흡연율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다중의 위기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이 단번에 ‘음란’과 ‘유해’가 되는 세상에서 청소년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누구를 위한 청소년 보호인가

지금의 청소년들은 무엇을 하든 ‘덜 자란’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당한다. 10년이 넘는 교육기간 동안 이들은 행동과 생각이 제한된 미완성의 존재이자, 보호의 대상이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은 사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쓰여지는 기득권층의 사고일 뿐 청소년 당사자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헌법에 규정된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다양한 권리들은 청소년들을 비껴간다. 그들에게 집회 결사의 자유도, 표현의 자유도,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없다. 두발자유화, 내신등급제 반대 등을 목적으로 청소년 당사자 스스로가 청소년 운동을 만들어나가고 집회를 조직하려 했을 때 이들을 감시하려고 집회 장소에 다수의 교육청 직원과 교사들이 배치되었다. 이는 기득권층에게 청소년 ‘보호’와 ‘통제’의 의미가 전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동성애와 같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단서가 잡히기라도 하면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으로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의 머리 속까지 검열, 통제하려들고 자녀를 둔 노동자들에게는 윤리적 공포심을 갖게 하여 국가, 학교가 개입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검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끔 한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둔 노동자 부모들은 자신이 제대로 부모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며 또래 동료들은 편견으로 가득 찬 제도교육으로 가지게 된 동성애혐오증(homophobia)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이중, 삼중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기득권층이 말하는 청소년 보호의 대상은 분명 청소년이지만 결코 그들 권리 전반이 보호되지 않고 있다. 단지 성적 보수주의를 강화함으로써 사회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고, 청소년기의 자녀를 둔 노동계급 가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윤리가 청소년 보호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성인들 스스로를 자기검열시키는 무의식적 요구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소수자 인권은 쉽게 묵살되어지고 사상, 표현의 자유는 제한받는다. 청소년이라는 약한 고리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물론 모든 성소수자들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투쟁을 시작하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동성애 조항이 삭제된 지 1년, 성소수자 운동 진영이 4년 동안 싸워 얻어낸 성과는 실질적인 차별철폐운동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했지만, 당연한 가치라고 여겨져 왔던 ‘동성애=청소년들에게 유해하고 음란한 행위’라는 해묵은 공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현재 성소수자 운동 진영은 위기에 놓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바꿔나가고자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0대 동성애자들이 학교에서 경험했던 차별실태를 접수받거나(한국레즈비언상담소), 교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매뉴얼 발간 활동(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 캠프 및 교사들과의 간담회 개최(한국남성 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성정체성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한 거리 캠페인(동성애자인권연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성소수자 운동 진영이 청소년 이슈로 모아지고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은 당연하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성정체성 자기 결정권을 통제받고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는 청소년 당사자들의 분노를 어떻게 운동으로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활동들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을 언제나 미성숙한 존재로만 바라보고 그들의 총체적인 권리를 제약하는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과 함께 할 때만이 빛을 볼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이 글을 마무리할 때 쯤 A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순천에서 부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어쩌면 그 친구가 진정으로 보고 싶은 것은 바다가 아니라 청소년 성소수자로서의 자유로운 삶일지 모른다.
참새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