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의 현장
1990년 5월 한국화학연구원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든 후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위원장, 공공연맹의 전신 중 하나인 공익사회서비스노조연맹의 수석부위원장, 전태일 노동자상 수상, IMF 직후 민주노총 사무총장 등의 일을 해왔다. 과기노조 파견으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후 과기노조 정책위원과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05년 4월 12일 과기노조 제 7대 위원장에 다시 선출되었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과학기술의 공공성

과학기술의 공공성 강화는 노동운동의 과제

고영주  / 2005년09월07일 4시27분

일상과 노동을 지배하는 과학기술

과학기술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노동을 지배하고 있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잠이 깨고 전자레인지나 가스레인지를 이용한, 아니면 포장된 인스턴트식품으로 아침을 때운다. 자동차나 버스 아니면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회사 들어설 때 현관문에 전자 출입증이나 CC TV가 출근을 체크한다. 책상에 앉아 인터넷 뉴스나 이메일을 열어보거나 기계나 자동화된 장치 앞에서 노동을 한다. 핸드폰은 이미 생활필수품이 되었고 은행이나 주식투자도 상당부분 컴퓨터로 이루어진다. 식사나 대형마트 쇼핑 후 카드를 쓴다. 전기가 없으면 컴퓨터도, 에어컨도, 히터도 기계도 모조리 멈춘다. 이렇듯 과학기술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일상과 노동을 지배한다.

그것만이 아니고 과학기술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기초이고 자본의 세계화를 가속화시크는 첨병이기도 하다. 아무 신문이나 펴들고 모든 기사를 들여다보면서 과학기술과 관련이 있는 것을 찾으면 참으로 많다. 외국 투기자본, 허리케인에 무너진 제방, 원자력 방폐장, 인공 청계천, 황 우석, X- 파일, 비행기 추락, 베니스영화제, 인터넷 강의, NEIS, 유비쿼터스 사회, 전자투표, 유전자조작식품, 행정도시, 기업도시 건설, 개인정보 유출 등 모두가 과학기술과 깊숙한 연관이 있다.

개인적인 일상생활과 노동, 사회 시스템에서의 과학기술은 합쳐져서 우리의 의식과 문화마저 바꾼다. 그러한 과학기술의 변화 발전은 편리하거나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심각하게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론적인 접근도 대단히 다양하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① 기술결정론

과학기술의 진보를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대표적인 시각에는 대표적으로 다니엘 벨의 정보화 사회론이나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론 등이 있다. 이런 이론이나 시각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계속 발전하고 결국에는 사회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다양한 문제가 과학기술로 해결되는 유토피아적 사회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이자 단계적, 순서적 선형이론, 혹은 파이프이론이라 일컬어진다.

칼 막스나 국가사회주의 이론가들은 과학기술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보고 누가 과학기술을 통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체제가 안정화되고 발전되나 과학기술을 이윤추구의 도구이자 노동자 통제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노동의 소외와 노자간의 계급적 대립과 갈등을 확산시켜 노동자의 투쟁을 야기한다. 결국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넘어가며 사회주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간적 통제가 가능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확대 강화하게 되고 하고 결국 과학기술은 사회주의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결정적인 수단이 된다고 보았다.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부흥했던 옛 소련의 과학기술혁명론과 함께 막스의 접근은 근본적으로 기술결정론이자 선형이론에 기반하고 있으며 다만 누가 통제할 것인가 하는 데 문제의식이 닿아있다. 칼 막스는 주류 경제학이 종속변수로 취급했던 과학기술을 대단히 주요한 변수로 설정하고 사회구조변화를 설명한 최초의 경제학자, 사회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머튼(Merton)은 과학기술 자체의 가치중립성과 기술결정론에서 더 나아가 과학기술자 사회는 특수한 규범과 원칙에 의해 굴러가는 특수한 영역이며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우선순위 설정이나 연구개발 과정에 대해 정부 관료나 다른 영역에서의 간섭을 배제하는 한편 과학기술연구개발이 자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제도의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구조기능주의 이론을 주창하였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유럽의 주요한 과학기술정책과 문화가 되었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② 사회결정론,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경우의 공통점은 과학기술 지식 자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단선적이고 누적적으로 발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기술자의 특권적 영역이었다.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이다. 그러나 1971년 토마스 쿤(Thomas Kuhn)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자 사회나 전체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에 의해 영향을 받아 발전하는 것이며 어느 한 시기 구 패러다임과 신 패러다임이 충돌하다가 신 패러다임으로 바뀌면서 과학기술 지식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일례로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서의 변혁, 뉴턴의 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의 변혁 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과학지식 자체의 가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은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 과학의 구조주의 이론등으로 이어지면서 과학기술도 다른 여타의 사회학적 지식처럼 사회로부터 구성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고 이는 기술결정론과는 달리 역으로 기술의 사회결정론의 형태로 발전한다. 이것은 과학기술도 기획, 연구 단계에서 어떻게 통제되는 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는 의식을 확산시켜 칼 막스의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주의 통제와 맞물려 과학기술의 올바른 통제나 민주적 통제가 주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1970년대 80년대 크게 유행하였고 지금도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기술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등은 이러한 인식의 확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③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주의

최근에는 기술이 사회변화를 결정한다거나 사회 구조가 과학기술을 결정한다는 단선적인 접근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사회는 상호작용하면서 발전한다는 상호주의 접근법이 확산되고 있다.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를 변화 발전시킨다는 이론적 접근인 것이다. 최근 자본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기획이 확대되어 과학기술이 급속한 속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그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더욱 가속화하거나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그러한 상호주의 접근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④ 시장실패, 정부실패, 시스템 실패

여기서 또 다른 측면의 이슈는 과학기술을 누가 기획하고 누가 연구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케인즈주의나 국가사회주의에서는 시장의 실패를 강조하며 정부와 국가의 과학기술 투자와 기획에의 개입, 공공부문의 연구개발을 확대하게 되며 반면에 신자유주의에서는 국가나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가져오는 비효율성과 실패를 강조하며 시장의 주도성이 확대됨으로써 사유화, 시장화, 상업화, 공공부문의 시장주의/성과주의 경영 등이 과학기술 부문의 주요한 이슈가 된다.

2차 대전 이후 70년대까지 유럽과 사회주의 국가 과학기술혁신연구나 정책을 주도한 것은 시장실패이론이었으며 80년대 이후 과학기술혁신 연구나 정책에 있어 정부 실패 접근법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90년대 한국사회 공공부문의 연구개발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추진되었으며 이것은 공공부문개혁 혹은 신공공경영(New Public Management)의 대두와 더불어 90년대 정부출연기관에서 사유화, 시장화, 시장주의/성과주의 경영, 구조조정, 유연화, 비정규직화, 노조탄압 등이 최대의 이슈가 되게 하는데 일조하였다. 한편 과학기술을 종속변수로 취급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반발, 공공이냐 민간이냐의 이분법적 접근에 대한 반발로 과학기술을 주요한 변수로 취급하면서 공공, 민간과 함께 교육, 인프라, 문화와 여타의 제도 등 다른 관련된 요소들까지 적절히 배합하여 고유의 자기 역할과 상호 협력을 강화해야 혁신이 가능하다는 시스템혁신 이론이 80년대 후반부터 기술경제학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며 국가나 지역을 강조하는 국가혁신이론, 지역혁신이론으로 발전한다.

혁신이론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실패 이론에 대한 좌파의 대응 논리로,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가속화시키기 위한 기술혁신의 논리로서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노무현 정부는 혁신 정부라 할 만큼 혁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과학기술부문에서는 국가혁신시스템이라는 표현과 주장이 주도적인 담론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토니블레어의 제3의 길이 시장주의 확대와 공공부문에서의 시장주의 경영을 확대하는 등 신자유주의의 변형으로 가버렸듯이 노무현 정부도 크게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였으며 이는 국가혁신시스템 논리가 시장중심, 시장주의 경영 시스템으로 변해가는 요인으로 작동하였다.

과학기술의 공공성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접근에 대한 간략한 고찰에서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과학기술은 개인의 일상과 노동, 사회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며 그러한 과학기술은 그 사회가 어떠한 사회인가, 어떠한 시각과 논리, 어떠한 목적, 어떠한 방향을 위해 그 사회는 과학기술의 진보를 기획하고 추진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과학기술의 공공성’이란 이슈가 중요해진다. 과학기술의 공공성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그 사회가 건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 되고 그 사회가 건강하다면 과학기술의 공공성이 더욱 확대된다는 의미가 된다. 과학기술 공공성의 개념은 첫째, 어떤 과학기술을 할 것인가, 즉 예를 들어 과학기술진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와 목적은 무엇인가, 둘째, 이러한 가치와 목적을 이루기위해서는 어떠한 전략이 필요한가, 셋째, 누가 어떻게 과학기술을 통제할 것인가, 즉 과학기술과 관련된 기획과 연구, 결과의 활용, 기타 관련된 결정을 누가 어떻게 주도할 것 인가하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시장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담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학기술진보의 최대 가치는 자본의 이윤을 확대하는 것이며 주요 전략은 과학기술을 자본이 주도하는 전 세계적 무한경쟁 체제를 튼튼하게 구조화하는 도구로 삼는 것이 된다. 그리고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는 자본, 시장, 그리고 이에 복무하는 정부와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가치와, 전략, 통제구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은 감시되고 통제되며 과학기술은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최근 CC TV, 전자신분증과 출입체크 시스템,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RFID (전자테그) 등을 이용한 노동현장에서의 감시와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전자주민증, 도ㆍ감청, 휴대폰 위치추적, 인터넷 검열, 생체 칩, RFID 등 일상생활에서의 감시와 인권 침해가 갈수록 정교해지고 강화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국가 단위의 저항에 대해서는 IMF, WTO, 투기자본을 앞세운 위협이나 전쟁을 통한 진압이 이루어진다. 이때도 과학기술은 주요한 수단이 된다. 연구개발 현장의 시장화, 성과주의, 경쟁주의, 임금 및 고용의 유연성 확대 강화 또한 통제를 위한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된다.

이렇듯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스템에서 과학기술의 공공성은 파괴되고 왜곡된다. 과학기술의 공공성이 약화될수록 자본의 세계화는 확산되고 노동자, 민중에 대한 통제와 감시는 강화된다. 노동운동은 근본적으로 이윤, 착취, 빈곤, 불평등, 무한경쟁, 환경파괴, 전쟁, 물질만능주의, 사회갈등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양산하는 왜곡된 가치들을 새로운 가치들로 대체하는 운동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운동은 매우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이다.

과학기술의 공공성 확대를 위하여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과학기술 진보의 궁극적인 가치와 지향점을 자본의 이윤과 무한경쟁 시스템 구축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 평등, 연대,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효율성, 다양성, 평화 등을 확대하고 강화하는데 두는 것이다. 이윤보다 사람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과학기술 투자와 정책 기획, 연구개발과 활용의 우선순위와 내용 등의 전반적인 전략을 위 가치와 목적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셋째는, 1차적으로는 과학기술혁신의 정책 기획, 연구개발, 평가, 투자 우선순위, 연구결과 활용 등의 결정과 집행과정, 전체적인 지배구조에 노동자 민중의 참여와 통제가 가능해져야 하고 2차적으로는 이와 연관된 교육, 인프라, 문화, 각종 제도 등의 바람직한 혁신을 위한 노동자 민중의 참여와 통제 또한 이루어져야한다.

넷째, 위 세 가지가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이 필요하고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져야한다.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위해 구체적인 통제가 이루어지는 작업 현장에서 그리고 주거 지역에서, 아주 작은 문제부터 아주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눈으로 분석하고 집단적으로 요구하며 투쟁해야한다. 그리고 그 노동조합의 강화, 연대, 투쟁의 지향점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가치가 아닌 새로운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거대한 발걸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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