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의 사노라면
도시빈민운동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전과자들... 나의 삶 속에서 때로는 이들과 다투고 지치고 힘들어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 대화 할 준비를...

광화문 풍경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최인기  / 2006년01월16일 10시00분

시청앞 노숙인

며칠간 포근하다. 시청 앞에서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터벅터벅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 서점으로 향하는데 땅은 촉촉하고 물기에 젖어 걷는 느낌이 평소와 다르게 부드럽다. 광화문 ‘동아일보사’ 건물을 막 지나 지하도로 들어가는데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

한 노숙인이 자고 있었다. 박스를 깔은 채 그 위로 발이 삐죽 튀어 나오고 이불은 상채만 덥고…. 아니 이불이란 말은 참으로 호사스러운 표현이다. 얼기설기 엮인 두꺼운 잠바를 뒤집어 쓴 모습 그것은 마치 한 마리 짐승이 웅크리고 누워 있는 모습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몸을 누일 곳이 없어 한뎃잠을 자는 사람들, 이슬을 맞고 잔다고 해서 노숙자(露宿者)로 불린다는데 1월 초순 예년 같으면 추위가 맹렬히 기승을 떨칠 것이지만 다행히 날씨는 푹하다.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은 아닐까 잠시 염려가 되어 주시를 하고 있는데 간간히 숨소리가 들린다. 정말 다행이다.

노숙인과 노점상, 철거민들이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

시인 신경림은 그의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고 노래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2003년 11월 30일 청계천에서 있었던 노점상 싹쓸이 행정대집행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이날 새벽부터 들이닥친 수백 명의 철거반원들 가운데 선두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딘가 부실하고 석연치 않았다. 허름한 옷차림에 양말도 신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보이기까지 했다. 며칠 전부터 서울역 등지에서는 이들을 모집하는 공문이 나붙었고 소집 책인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다는 소문이 있었다.

마침내 청계천 현장에서는 노점상, 노숙인들이 서로 적이 되어 새벽부터 오후까지 치고 박고 난리가 났던 것이다. 같은 시간 이명박 서울시장을 비롯하여 경찰수뇌부, 건설회사 사장들은 청계천 다산로 근처 삼호호텔 전망 좋은 방에서 이들의 싸움을 관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서울시의 감사 결과 이날 청계천 노점상 싹쓸이 비용으로 1인당 15만 원의 돈이 집행되었다. 하지만 용역회사 측과 중간 소집브로커들이 나누어갖고 노숙인 들에게 돌아간 일당은 4-5만 원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마저 당일 집행이 되지 않자 저녁에는 단속에 참여했던 노숙인들이 다시 농성을 벌이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 되었다.

노숙인들을 위험천만한 철거현장과 노점단속에 끌어들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부상을 당해도 이들을 소집하는 브로커들이 점조직 형태로 되어 있기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부천시나 구리시에서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

용역 비용이 전국적으로 1년이면 100억 가까이 낭비되고 있다. 2004년 서울시와 정부의 노숙인 의료지원 예산으로 책정된 14억 원과 비교해보면 정말 천문학적인 비용이 아닐 수 없다. 사회적 약자간의 대가리 터지는 싸움과 없는 사람들끼리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노숙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인권침해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의 대표를 맡고 있는 ‘문헌준’ 씨의 말에 따르면 노숙인 인권침해에 대해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다. 노숙인들은 염전과 조선족 위장결혼에 동원되기도 하고 노숙인들의 신분을 도용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융사기에 휘말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자 전혀 무고한 노숙인에 대하여 경찰에서는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표적수사를 진행하여 이들을 사회적 악으로 비춰지게 한 적도 있다.

얼마 전 부산에서는 아팩정상회의에서 테러를 예방한다며 공공역사에 노숙인들이 이용하는 물품보관함을 강제로 철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지금도 사회한 구석에서는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용해 매혈이나 장기 매매를 강요하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고 종종 언론에 보도가 되고 있다. 노숙인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인권 침해에 대한 실상이 어디까지 왔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 나라는 전체 국민 10명 중 1명이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상하위 10% 계층 간 소득격차가 18배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 사회의 빈곤화의 과정에서 거리의 노숙인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현상이다. 노숙인들은 해마다 400여 명 넘게 사망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고 평균 사망연령은 48.3세라 한다. 이들은 거리에서 사람들의 무관심과 소외 속에 아무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숙인 에 대한 대책은 갈 길이 멀다. 얼마 전 한 방송에 따르면 작년 1월 22일 서울역 노숙인 사망사건으로 추진되어진 특별 자활사업이 진행 중에 있지만 그나마 진정한 자활사업이라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땜 방식의 지원 사업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날 어떤 노숙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죽지 못해서 일을 한다’ 라고 호소하고 있다. 올 한해는 이들이 진정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숙인에 대한 긴급 구호야 당연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들이 노숙 상태로 전락되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예방하는 것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나아가 동정과 사혜를 넘어 다시는 길거리에서 짐승처럼 아무렇게 쓰러져 영원히 잠들지 않도록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다시 청계천 방향으로 나오기 위해 지하도를 막 빠져 나오는데 오후 시간이 되어도 노숙인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전에 포근했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빌딩들 사이로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는 그의 옆에는 언제 마셨는지 안주조차 없는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오후로 달려가는 광화문 지하도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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