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다시, ‘노동강도 저하’를 위하여

[해미의 당장멈춰] 노동안전보건 투쟁의 공감대와 주체 확대해야

해미  / 2006년02월13일 8시06분

이래도 될까? 이래도 부족하다!

경기도에 있는 한 사업장을 다녀왔다. 얼마전까지 외국 자본이 무쟁의 선언과 단협안 대폭 개악을 전제로 인수를 타진하던 사업장이었다. 외국자본은 3교대의 가능성에 대한 타진을 했으며 이후 회사는 주간연속 2교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 외국 자본은 인수를 철회한 상태라고 했다.

작년 말 외국자본의 소위 전문적(!)인 현장진단 결과 각 공정별, 라인별 여유인원을 산출해 냈었다. 인수 협상의 전제 조건이 정리해고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소에서는 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기준의 ‘여유율1)’을 산출하기 위한 작업을 했었다. ‘이만하면 할 만하다’는 것이 현장의 일반적인 정서이고 고용불안과 맞물리면서는 ‘그래도 이만큼은 해 줘야 되지 않나?’ 또는 ‘우리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는 불안 섞인 질문이 나오는 사업장이건만 사전조사 결과는 다른 사업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정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20%의 여유율이 있어야 하고 적정여유율은 50%정도였다.2)

현장 노동자들은 ‘이래도 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충분히 노동강도가 낮다고 이야기 하고 작업량도 라인에서 마음대로 조정하기로 유명한 사업장인데도 여전히(!) 노동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자본의 이윤율에 시비걸기, 적정한 노동강도

문제는 ‘적정한 노동강도’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기준은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천수’를 누릴 수 있을 만큼 건강하게 노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매출이나 물량이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은 자본의 이윤율에 반하는 것이고, 자본의 이윤율에 속박당해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저 ‘좋기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위 사업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작업량을 조절하고 작업배치나 작업스케쥴을 조장이나 반장이 아니라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마음대로 하기는 하지만 노동자들 스스로 자본의 총 매출에 타격을 주지 않는 수준에서 잔업과 특근을 하면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노동강도가 그냥 ‘널널하게’ 일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본의 ‘이윤율’에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수준으로 가려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강도 저하를 위한 교두보 만들기

노동안전보건투쟁은 예방(작업환경개선)투쟁과 보상(산재인정)투쟁의 단발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발전해 왔다.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원인으로서의 ‘노동강도’를 제기하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파열구’를 내었기 때문에 그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급속한 자본과 정부의 체제내화(저들의 언어로 ‘합리화’) 시도와 법·제도적 공세 속에서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는 그저 ‘건강권’에만 갇히는 한계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시기 다시 ‘노동강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예방투쟁과 보상투쟁의 변증법적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노동강도는 자본의 이윤율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개념의 노동강도는 그저 ‘좋은 이야기’에 그칠 수 있으며 ‘현실성이 떨어진’ 이야기로 생각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교두보의 형성이 지금 가장 중요한 투쟁의 집중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투쟁의 집중점은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해야 하고 현재적 의의와 발전 가능성을 동시에 포함하면서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런 실천의제에 대한 공유와 소통 속에서 전국적인 전선을 형성하고 노동강도 저하를 위한 투쟁 주체를 조직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교대제로부터 생명 지키기 - 심야노동철폐

교대제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표적 노동방식이다. 최근에는 뉴패러다임이라는 이름 등으로 변주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자본의 이윤율이라는 절대선(!)과 조응하면서 어떻게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냐가 쟁점이다.

교대제 운영에 있어 노동자의 삶과 의지는 중요한 고려지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다보니 몸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요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자본의 시간에 속박당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특히 심야노동은 그 폐해가 더욱 크다.

완성차 사업장을 중심으로 주간연속 2교대를 통한 심야노동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이는 노동자의 요구이기도 하나, 자본의 입장에서도 그리 손해 볼 것은 아니다. 노동밀도에 대한, 즉 (저들의 용어로) 편성효율에 대한 주도권이 자본에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익일 수도 있다. 심야노동철폐 투쟁은 노동밀도에 대한 견제와 투쟁 없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심야노동철폐가 곧바로 자본의 이윤율을 타격을 주거나, 노동자의 삶을 보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야노동철폐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시간에 주체가 되기 위한 시작임은 분명하다.

숨 돌리면서 일하기- 휴게시간, 작업 중 여유율 확대

노동시간과 휴식시간은 노동자의 건강 뿐 아니라, 현장 활력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집단 휴식은 불만과 정서 나눔으로 인한 반란의 시공간이다. 더불어 교대제와 같이 핵심 인력운영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동자들이 ‘여유롭게’ 일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부족한 ‘여유’임이 분명하다. 여전히 우리의 노동은 몸을 병들게 만들고 수명을 갉아 먹는 노동이다.

노동시간과 휴식, 필요 작업강도와 여유율 등은 자신의 노동시간과 건강에 대한 문제제기 뿐 아니라 잉여가치(이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한꺼번에 되찾는 것도 좋지만, 우리도 조금씩 갉아먹어, 잉여가치의 분기점에서 자본과 만나보자.

유해요인으로 벗어나기 - 작업중지권 복원

거부할 권리는 모든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의 현장을 자신과 어울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그동안 제도화하려고 부단한 애를 썼다.

작업중지권 투쟁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한편 현장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력을 확대하기 위한 주요 투쟁 고리로 작용하였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수세적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이것이 몇몇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

골병의 유해요인이건 물질과 장비의 유해요인이건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하는 대중적 노력과 실천은 다시금 현장의 안전보건투쟁을 정상궤도로 올려놓을 것이다. 유해요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투쟁은 내 ‘몸’을 보호하는 투쟁일 뿐만이 아니라 자본의 일방적 통제를 거부하는 투쟁이다.

제대로 우선 치료받기 - 공단 3대 독소규정 폐기

05년 하이텍 공대위의 투쟁은 산재보험의 법규정만이 문제가 아님을 폭로했다. 실제 같은 법조항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법·제도에 대한 투쟁이 정책 테이블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투쟁이기도 했다.

우리가 자본과 정부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투쟁을 조직하고 실천을 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저들의 ‘합리화’와 ‘효율’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노동자의 목을 조르고 자본을 위한’이라는 본질이 생략된 문구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투쟁의 장이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고 조직할 수 있는 주요한 고리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공단의 ‘합리적 보험운영’이라는 원칙하에 만들어진 3대 독소규정3)은 법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고, 법 개정의 방향이기도 하다. 산재보험의 개혁을 연구하고 제시하는 한편, 실천적인 명확한 과제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공단 3대 독소규정 폐기’이며, 이러한 요구와 실천이 일선에서 부딪치는 현실적 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다.

다시, ‘노동강도 저하’를 위하여

이렇게 노동자 건강권의 문제는 자본의 이윤율을 직접 공격하는 매개로서의 최전선의 의미와 함께 언제든지 포섭되고 체제내화 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노동강도를 통해 자본의 잉여가치에 대한 직접 공격의 큰 흐름 속에 노동보건운동의 현재 과제가 위치지어져야 한다.

노동강도와 노동자 건강이 분리되는 순간, 노동강도 저하는 실현 불가능한 듣기 좋은 얘기가 될 뿐이며 노동자 건강은 그저 인정 받기고 치료 받기만 하면 되는 문제가 된다. 따라서 노동안전보건투쟁은 잉여가치에 대한 적대적 의미로서의 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향한 투쟁과 실천의 흐름속에서 현장 주체를 조직하고, 현장 투쟁을 조직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에 대한 파열구를 내는 것으로 다시 자리매김 해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 ‘교대제로부터 생명지키기 - 심야노동철폐’, ‘숨돌리면서 일하기 - 휴게시간, 작업 중 여유율 확대’, ‘유해요인으로 벗어나기 - 작업중지권 복원’ 그리고 ‘제대로 우선 치료받기 - 공단 3대 독소규정 폐기’라는 실천의제가 놓여있다. 이런 실천의제로부터 우리의 투쟁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 시작의 지점에 지금 우리는 서 있다.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요양 투쟁과 하이텍 투쟁을 경과하며 형성된 노동안전보건투쟁의 의미에 대한 공감대와 주체들을 기반으로 하여 해방을 향한 토대를 다시 다지고 그 발걸음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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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1) 국제노동기구(ILO)의 휴식여유율을 한국수준에 맞게 보완한 지표임. 노동자를 과동한 노동에서 보호하고 정년퇴직후에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밀도의 정도를 의미함. 연구소에서는 자본의 편성효율에 대응하기 위한 개념으로 구상하고 있음. 사용되는 힘이나 자세, 진동 등에 의한 작업특성으로 인해 생기는 물리적 피로와 온도와 습도 등의 작업환경에 의한 피로를 포함한 개념임. 2) 최소 여유율이 20%라 함은 100분만에 할 수 있는 작업은 최소 120분에 하게 작업을 편성해야 하며, 150분이 되게 편성해야 적정하다는 의미임. 규칙적이고 정기적인 휴식시간과는 다른 개념임. 3)근골격계 질환 인정기준에 관한 지침, 요양업무처리규정, 집단민원 대응지침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