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식]의 내 맘대로
자본과 권력이 꿈꾸는 유비쿼터스 사회. 모든 사물에 전자칩이 깃들고 온라인을 통해서 무엇이건 제공받을 수 있는 이 사회는 희망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극단화된 감시사회의 전형이다. 필자는 지문날인 폐지를 필두로 전자감시 반대활동의 선두에서 일해 온 사람이다. 모든 감시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필자를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들어보자.

열손가락 지문을 9세부터 찍는다고?

언제나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정자치부

지문반대 finger@kdlp.org / 2006년02월12일 1시06분

지난 2월 10일, 프레스 센터에서 "주민등록증 발전모델 연구방향 설정을 위한 제2차 공청회"가 열렸다. 주민등록증을 어떻게 발전시킨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청회가 2차까지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어이도 없고 해서 방청을 하게 되었다. 행정자치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독선적 행정행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기본적으로 공청회는 발전모델의 연구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갈 방향 다 정해놓고 공청회라는 요식행위를 거치는 것 뿐이었다. 행정자치부는 이미 주민등록증을 스마트카드화 하는 전자주민카드로 바꿀 것을 결정해놓고 그 카드의 사양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있었다. 국민을 가지고 노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이미 1996년에 전자주민증 도입에 대한 전 국민적 반대가 있었고, 그것이 1997년 대선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유야무야된 바가 있다. 대신 종이로 되어 있던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으로 일제 갱신하였다. 주민등록증 일제 갱신의 이유는 종이주민등록증이 위변조가 쉬워 위법·불법 행위에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돈은 돈대로 쓰고 이제와서 목적했던 바 주민등록증 스마트카드 작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공청회의 내용에 대해 설명할 것이 없다. 어차피 요식행위일 뿐, 시민사회의 의견이라는 것은 다만 지들이 거칠 것을 거쳤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치루는 과정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이번 공청회에서 아주 웃기지도 않는 두 가지 논의가 있어 이건 좀 짚고 넘어가야겠다.

우선, 현직에서 주민등록업무를 보고 있는 군포시의 종합민원처리과장의 발언이다. 군포시 관할 기관에서 2005년 한 해 발급한 주민등록증 중 약 10%의 주민등록증이 탈색이나 변형으로 인해 민원을 초래했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연간 약 320만개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데 이 중 10%면 32만개의 주민등록증이 탈색이나 변형으로 인해 발급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주민등록증 하나를 발급하는데 5000원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볼 때, 한 해 16억원의 돈을 주민등록증 재발급에 국민들이 소비하는 것이 된다.

지난 1999년부터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을 일제히 사용했던 것을 감안할 때 일제갱신 당해년도를 빼더라도 만 5년 동안 그런 현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도 아닌 탈색과 변형때문에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는데 들어간 비용이 그동안 80억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행정자치부의 미흡한 행정으로 인해 국민의 피같은 돈 80억원이 그냥 날아갔다는 이야기다.

비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없다. 원래 스마트카드를 발급하기 위해 도입했던 설비의 비용이나 사업수행의 중단으로 인해 날아간 돈은 얼마일까? 게다가 새로 발급한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이 오히려 종이로 된 주민등록증보다 위조가 쉽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등록증의 사양을 바꾸는데 들어간 돈은 또 얼마일까? 이렇게 들어간 돈은 고사하고 기껏 탈색과 변형때문에 국민의 돈이 들어간 게 또 80억원이다. 행정자치부가 주민등록증에 퍼 부은 돈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돈 이야기는 지긋지긋하니까 여기서 일단 중단하자. 공청회 과정에서 나온 웃지 못할 이야기 하나. 청소년들의 신원확인이 어려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단다. 청소년보호위원회에서 나온 어떤 분은 아예 이 참에 주민등록법을 개정해서 주민등록증을 9세 이상 청소년에게도 발급하는 것이 어떠냐고 한다. 난리가 났다.

다른 것은 고사하고 이제 만 9세가 되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열손가락 지문을 찍게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가 어떠한 효용도 없다는 것은 이미 수사일선에 있는 검경조차 인정한 사실이다. 물론 이 위대한 나라 헌법재판소의 고명하신 재판관들께서는 '북괴'의 위협이 아직 상존하므로 지문을 계속 찍어야 한다는 해괴한 판결을 내리신 바가 있지만 이건 법적으로 보아도 매우 질떨어지는 소리이다.

지문날인제도가 가지는 위험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문날인의 위험성 중의 하나가 바로 국가에 대한 복종의 서약의식이라는 점이다. 지문을 찍음으로서 성인의 대열에 동참했다는 의식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동시에 국가에 등록된 사람으로서 국가의 훈육체계에 포섭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지문날인제도. 최근 국기에 대한 맹세나 국민교육헌장의 문제점에 대해서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데,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이 언어체계를 통한 훈육의 기제라면 지문날인은 신체정보의 국가등록을 통해 훈육의 장 안에 들어섰음을 선포하는 기제이다. 이걸 9살짜리 어린애들이 해야한다는 말인가?

청소년 보호위원회에서 나오신 분은 아주 고귀하신 발상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9세 아동에게까지 주민등록증을 발급토록 해야한다는 이유가 걸작이다. 성인인증 등에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성인인증을 위해 주민등록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스마트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은 곧 모든 컴퓨터에 스마트카드 단말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걸 원하는 건가? 그렇게 하면 진짜 우리 청소년들이 순백의 정신을 가진 아름답고 순수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건가?

청소년을 생각하시는 그 고귀한 자세에는 경의를 표한다만 그 발상의 생뚱맞음에는 고소를 금할길이 없다. 외국에 주민등록번호로 인터넷 사이트 성인인증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가 있는지? 그 나라 청소년들과 한국의 청소년들을 비교할 때 한국의 청소년들이 그 나라의 청소년들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가? 그런 데이터 있으면 좀 소개 좀 시켜줬으면 좋겠다. 세계 만방에 자랑이라도 좀 하고.

행정자치부의 공청회는 애초 사회인권단체들에게 충분히 고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공청회 방청을 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정부기관의 사람이거나 업체 사람들이었다. 누구의 의견을 듣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들 멋대로 갈 방향 다 정해놓고 공청회라는 요식행위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이러한 자세로 무슨 행정을 하겠다는 걸까?

또 돈만 펑펑 쓰고 나서 책임도 지지 않는 그런 행정을 할 것이 너무나 눈에 선하게 보인다. 주민등록번호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에 대한 지적이 있은지가 벌써 15년을 넘어가는데, 그동안 행정자치부가 한 일이라고는 주민등록번호 불법사용에 대한 처벌조항강화 이외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처벌조항 만들어 놓고 지금까지 몇 건이나 주민등록법상 처벌조항에 의하여 처벌이 이루어졌나? 해마다 법 개정해서 처벌을 강화하는데 왜 주민등록번호 불법사용현상은 늘어만 가나?

주민등록증을 스마트 카드로 만들어 놓고 나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행정자치부는 또 어떻게 자기 책임을 회피할지 궁금하다. 아니 두렵다. 국민의 세금을 지들 호주머니돈처럼 생각하면서 수백만원을 들여 개최한 공청회의 자료집이라는 것이 중고등학교 학생회의 팜플릿만도 못한 이 상황을 국민들이 알기나 알까?

충분한 검토와 논의 없이 추진되고 있는 전자주민등록증사업. 아무래도 이 건 하나만으로도 정부와 머리 깨지게 싸워야할 일이 생길듯 하다. 난 주민등록증 자체가 싫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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