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의 생각
언제나 탐구하고 앎에 이르며 뜻을 바로 세워 마음을 깨끗이 하는 사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 세상을 해석만 하지 않고 실천으로 변혁하려는 사람, 사람을 생각하되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이것이 그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대우교수로 사회과학 글쓰기와 유럽정치를 강의한다.

‘스크린쿼터 늑약(勒約)’이라 기억할 것이다

[정병기의 생각] 영화인들의 싸움, 모두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연대해야

정병기  / 2006년02월15일 17시40분

그동안 우리 영화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올바른 영화인들은 그것이 세계적인 수준이라 자만하지 않으며, 적어도 이윤창출 수단으로서 우리 영화의 시장점유율과 경쟁력을 과대망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내 영화시장 점유율과 경쟁력 신장을 근거로 스크린쿼터를 50%나 축소하면서 스크린쿼터가 영화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선전을 버젓이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셈은 한미FTA압력에의 굴복과 얄팍한 경제적 이익을 계산한 데 지나지 않는다. 훗날 우리 후손들은 한미FTA에 따른 이 결정을 ‘스크린쿼터늑약(勒約)’이라 기억할 것이다. 늑약을 맺은 당대 정책담당자들은 강제에 굴복한 죄와 치욕스런 조약을 맺은 죄를 함께 단죄 받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 영화의 괄목할 만한 국내시장 점유율은 스크린쿼터에 힘입은 바가 크며, 미국영화시장 점유율은 단 5%에 지나지 못한다. 반면 헐리웃의 영화자본은 세계영화시장의 85%를 장악하고 있으며, 평균제작비 1천억 규모의 영화를 연간 800편씩 지속적으로 생산하여 200여편을 세계시장에 내보내고 있다.

정부가 영화계에 4,000억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제 발 저려 내놓은 얄팍한 정책이자 썩은 동아줄에 지나지 않는다. 스크린쿼터의 축소로 야기될 한국영화 산업의 몰락은 4조원을 들여서도 복구할 수 없으며, 스크린쿼터 50% 축소로 예상되는 직접 매출 감소는 연간 6천억 원대 이상에 달한다.

헐리웃 독과점을 견제하는 장치인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파괴할 것이다. 쿼터일수가 146일인 지금도 저예산과 독립예술영화의 입지가 턱없이 부족한데, 그 50%에 해당하는 73일을 줄인다면 저예산영화와 독립영화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의 산수로도 계산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스크린쿼터늑약이 ‘코카콜라 제국주의’의 전초전이라는 사실이다. 은막 침탈로 시작되는 한미FTA는 곧 영상산업 전반으로 확대 될 것이며, 지금 이득으로 보이는 경제적 이익도 곧 또 다른 침탈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영화와 같은 문화는 이윤을 추구하는 ‘교역의 대상’이 아니라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교류의 대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이 과연 집단이기주의에 얽매여 있는가? 물론 영화인들 중에서도 쇠고기 수입이나 농산물 수입 등에 대해 무관심하다가 막상 스크린쿼터가 축소되자 발등에 불 떨어진 자기 이익 챙기는 데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올바른 영화인들이 사수하고자 하는 스크린쿼터의 명분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집단이기주의는 영화계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미국의 다국적 기업 및 헐리웃 자본과 이해를 같이하는 이 땅의 거대 자본이 제기하는 이데올로기적 공세이다. 따라서 집단이기주의 비난은 오히려 이 거대 자본들이 받아야 마땅한 논리이다.

비록 늦었지만 우리 영화인들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시작하려면 한국영화부터 죽이고 오라!”는 미국의 오만한 요구에 무릎을 꿇었음을 간파했다. 그들은 스크린쿼터가 한-미FTA와 WTO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그들도 농민투쟁 및 비정규직 투쟁과 연대할 것이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부문에서도 이 영화인들의 싸움을 모두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연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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