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욜]의 Rainbow +action!
Rainbow는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성소수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며 각 색마다 섹슈얼리티, 생활,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정신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여기에 action의 의미를 더하고자 한다. 현재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작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육우당은 여전히 희망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4월22일 동성애자 ‘육우당’ 3주기 추모식을 맞아

정욜  / 2006년04월18일 17시06분

‘문이 열리지 않아~ 문고리는 돌아가는데 왜 문이 안 열리는 거야!’

묵직한 돌덩이가 사무실 문을 가로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 한숨을 쉬며 다시 한번 힘차게 문을 열었던 그 순간, 사무실 문틈 사이로 보였던 소주병과 휴지조각들을 난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예쁜 자주색 체크무늬 남방 끝자락이 문틈으로 보였을 때, 남방이 예쁘다며 그와 수다를 떨었던 전날의 기억이 내 머리를 잠식했다.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현실이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그냥 사무실 문 앞에 열리지도 않을 만큼 큰 물건이 떨어져 있기를 기도했다. 왜 이런 시련을 우리에게 주는지 하느님을 원망했다. 아니 너무나 유치하게도 그동안 내가 잘못한 일들을 반성하며 모든 것이 꿈이라고 나에게 얘기해 주길 바랐다. 30분이 지났을까? 누구에게 전화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사무실 주변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구경나온 건물 사람들, 급하게 뛰어온 회원들,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온 경찰관계자들. 문이 열렸다. 마치 보라색 물감으로 온몸을 색칠한 듯한 그의 고개 숙인 모습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둡고 조그만 사무실이 무섭지도 않았는지 문고리에 목을 맨 그의 열아홉 인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직도 사무실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육우당의 편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쓰여 진 편지는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친구라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한 내용을 담고 있다. 2만원을 후원금으로 기탁한다며 힘내라는 격려의 말과 함께 자기도 모임에서 활동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전부였다. 난 그 편지를 보며 속으로 ‘이런 기특한 친구가 있구나.’하고 생각했고 다른 회원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매월 편지로 만원씩 보내주며 인터넷과 메일을 통해서만 소식을 주고받던 그가 2002년 송년의 밤에 처음으로 사무실에 왔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분명 기억하는 것은 ‘설헌’이라는 닉네임으로 자기를 소개한 것. 찰랑거리는 귀걸이와 화장기어린 얼굴, 곱슬머리에 작은 체구. 그리고 주변 분위기를 유쾌하게 주도하던 그의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그렇게 우리와 처음 만났다.

그는 주로 아침에 사무실에 왔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돗자리만 깔고서도 금방 잠이 들만큼 항상 지쳐있었다. 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와 만나면 서로의 꿈에 대해서 얘기하거나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얘기했다. 고등학교를 불과 2개월 남겨두고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지만, 난 그에게 어머니 잔소리처럼 대학진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는 또 내가 만든 빵을 제일 먼저 시식하고 평가해주기도 했었다. 큰 봉지에 담겨진 페스츄리 빵을 게 눈 감추듯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게 전해온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본명을 당당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 소원처럼 말하던 육우당의 본명을 우리는 여전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의 바람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하는 작은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이 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자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점을 새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혹여 생겨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익숙하리만큼 잘 알고 있다.

육우당이 세상을 떠난 2003년부터 현재까지 청소년 동성애자의 삶과 인권 문제가 집중 조망되고 있고 육우당의 삶은 언제나 청소년 인권문제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더딘 변화이지만 육우당의 사연은 이 땅의 동성애자들의 삶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바랐던 것처럼 그의 사연은 모든 동성애자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힘을 내라고 말하고 있다.

2003년은 동성애 운동의 큰 역사로 남고 있다. ‘동성애는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라는 사회적 담론을 깨기 위해, 그리고 청소년보호법 상의 동성애 차별 조항 삭제를 위해 많은 동성애자들은 골방이 아니라 거리로 나갔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동성애자들의 집단적인 커밍아웃은 그동안 우리를 지지할 사람들이 있겠냐? 하는 의구심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물론 동성애혐오를 가직 있는 사람들로부터 욕설도 들어야 했지만 우리들의 자신감을 꺽지는 못했다. 그리고 연대라는 이름으로 동성애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준 소중한 기독청년들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육우당의 죽음에 냉소적으로 반응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보수우익 단체, 개인들은 동성애자 인권에 노골적인 반감으로 드러냈다. 동성애자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손가락질 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운운했던 그들과 달리 같은 종교의 젊은 기독인들은 우리와 함께 나란히 섰다. 평행선으로만 갈 것 같았던 동성애와 기독교. 그 접합지점을 찾는 순간이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육우당이 희망했던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동성애자인권연대를 비롯한 다양한 성소수자 단체들은 부족하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려 노력했고 학교, 상담기관 등에서 필요한 다양한 정보제공은 물론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좀 더 향상될 수 있는 활동을 벌여왔다. 이것은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다’라는 정치적 구호를 뛰어넘어 성정체성 자기 결정권이 통제받지 않고 주변의 동료들과 가족, 교사들로부터 지지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활동이자 청소년들이 주변인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건설해 나갈 수 있도록 하고자 활동이다.

추모식에 앞서 육우당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작은 방 한 켠에 육우당이 썼던 책상과 책이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고인의 유품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상이 자상하게 웃고 있었다. 육우당과 어딘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내내 슬픈 듯한 표정으로 애써 재밌는 농담을 던지시던 어머니는 우리가 돌아갈 때가 되자 설날 세뱃돈을 주지 못했다며 지갑을 여셨다. 한사코 사양하며 손사래 치는 우리에게 어머니는 만원을 기어코 쥐어 주셨다. 그리고는 결국 아껴두었던 눈물을 터뜨리셨다. 그 순간 어머니는 육우당과의 추억을 쏟아내고 계셨다. 끔찍하리만큼 서로를 생각하는 母子. 육우당도 유서에서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번에 3주기 추모의 밤을 맞아 동성애자인권연대는 작은 추모집 하나를 준비하고 있다. 제목은 ‘내 혼은 꽃비 되어’. 그가 생전에 썼던 일기, 시 그리고 유서를 모았고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글을 편집해 실었다. 육우당은 어쩌면 추모집이 아니라 그의 꿈이기도 했던 멋진 시조시인이 되어 시조집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시조시집보다 더 갚진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다.

이 추모집은 단지 추모의 의미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추모를 넘어서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동성애자의 삶과 눈물을 녹여 내고자 했다. 물론 추모집만으로 세상의 변화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추모집을 통해 단 한명이라도 우리 성소수자의 지지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이 책으로 인해 얻게 될 지지자 한명 한명을 통해, 우리는 좀더 수월하게 ‘우리가 바라는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발자국들은 고 육우당이 우리에게 남겨준 귀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발자국 하나하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펴내며, 그 거룩하게 빛나는 발자국들의 의미를 새삼 가슴속에 굳게 새겨 두고 싶다.

육우당은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참새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세상 편집국이 생산한 모든 콘텐츠에 태그를 달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단어, 또는 내용중 중요한 단어들을 골라서 붙여주세요.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

덧붙임

육우당 3주기 추모의 밤은 4월22일 늦은 6시 고대 학생회관 내 생활도서관에서 개최되면 추모집 ‘내 혼은 꽃비되어’는 60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동성애자인권연대(02-778-9982 / lgbtpride@empal.com)로 문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