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의 당장 멈춰!
감기부터 죽음까지, 노동자들의 건강에 대한 모든 문제는 자본과 관련이 있다. 건강한 일터, 살맛 나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막아내고 해방을 이루는 중요한 행위라 생각한다. 골병과 죽음의 현장을 당장 멈추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는 단정과 울컥의 실무형 인간

언니, 이상해요

해미  / 2005년03월14일 13시01분

얼마 전 한 유통업체를 찾았다. 조금씩 만나온 지 1년이 넘어가는 (대부분의 유통업체가 그러하듯) 노안부서가 작년에야 처음 생긴, 노동보건활동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조합이었다. 내가 조직주체가 아닌지라 현장의 소소함에 면밀하게 닿아있지는 않은 상황에서 단지 직장에서 비슷한 대형마트를 돌아다녀봤다는 경험을 이유로 지부 대의원 및 조장 간담회에 교육을 하기로 하고 동행한 자리였다.

도착한 지부의 조합 사무실은 소파만 덩그라니 놓여있는 약간은 황량한 공간이었고, 다른 사업장과는 다르게 어려보이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동지들이 모여앉아 있었다. 간담회 참석 상황을 확인하던 때였다.

“O층의 OO가 안 보이네? 바빠? 얼릉 올라오라고 해.” 라는 한 대의원의 말이 끝나자 같은 층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동지가 대답한다.
“언니, 걔 임신했잖아요. 아까 화장실 갔다 오더니만 이상하다고 병원 갔어요. 아무래도 이슬이 비추나 봐요. 아직 (예정일이) 한 달이 넘게 남았는데...”
순간 시끌벅적 해지는 조합 사무실... 다들 걱정을 한 마디씩 늘어놓는다. 약간의 소동이 진정되고 간단한 소개가 오간 후 교육이 시작되었다.

“동지들, 아까 병원 가셨다는 분이요, 근무형태가 어땠어요?”
“요새는 A조1)만 했어요.”
“그전에는 B조도 하신 거지요?”
“그럼요, 다 했죠.”
“동지들, 조산이나 자연유산이 교대근무랑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거 아세요? 오늘 병원에 가신 그 동지 역시 그 동안의 교대근무랑 관련이 있어요.”
“그래요? 어떡하죠? 저도 지금 임신 중인데, 사람이 없어서 B조 근무도 하고 있거든요. 오늘도 B조예요.”

교대 근무는 저 체중아(2500g 혹은 미만) 출산의 위험을 1.88배 조산(임신 37주 미만)의 위험을 1.6배 높이며, 자연유산의 위험을 1.25배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서있는 자세, 기계에서의 작업, 육체적 소모, 정신적 스트레스, 환경노출 (추위, 더위, 화학물질, 소음) 같은 다섯 가지 요소가 조산에 관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통업 노동자들의 경우 변형된 형태의 교대근무2)라는 기본적인 위험요인에 하루 종일 서 있는 작업형태, 고객을 상대하는데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의 위험까지 관련된 요인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의 실태는 자세히 조사된 바가 거의 없다. 일부 기초적인 결과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평균 유산율이 10~12%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3조 3교대의 교대근무를 하고 있는 병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이 두 배에 가까운 22.8%가 유산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비공식적인 내부 조사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지하철 여성노동자들의 유산율 역시 25% 가량 된다고 한다.

그녀들은 이런 위험을 안고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임신중인 대의원은 사람이 없어서 B조 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점포가 내부 단장을 하는 사이 파견나와 있던 다른 점포의 조합원들이 재개장과 함께 빠져버리고 난 후 인력 충원이 안 되면서 도저히 A조 근무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동지가 A조 근무만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B조 근무만 해야 하는 동료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새 사람이 많이 부족해지면서 간담회에 올라오기도 미안하다고 했다. 월차 쓰기도 미안한 마당에 임신했다고 A조만 하겠다고 고집 부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법정관리체계에서 얼마 전 노조탄압으로 악명 높은 자본이 인수한 후 현장의 통제는 심해지고, 인력은 줄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신부라고 해도 남들처럼 근무할 수 밖에 없고, 오늘처럼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없어서 이 계산대에서 저 계산대로 뛰어다녀야 하는 마당에 고객들은 늦어지는 계산에 “이렇게 서비스가 안 좋으니까 망했지!”라면서 면박주기 다반사고,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다리가 퉁퉁 부어 힘든데 뛰기도 불편한 샌들을 신어야 한다.

교육이 끝나고 간담회를 진행하던 와중에 다행히 병원에 갔던 조합원은 조기진통이나 양막 파열은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언제 또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열심히 일하다가 “언니, 이상해요.”라면서 동료가, 부인이 또는 누이가 병원으로 실려 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병원에 가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언니, 미안해요.”가 되고 있는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인력이 부족해 주변 눈치를 보느라 교대근무를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임신이 동료들에게 누를 끼치고 미안한 일이 되는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최소한(정말 최소한이다.) 임신을 한 여성 노동자는 어떤 형태의 교대근무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녀들이 상대적(!)으로라도 안전한 근무형태를 택할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지금의 고용현실에서 철없는 소리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건강하게 노동해야 하는 것은 기본권의 문제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누가 (물론, 자본가들도) 자신의 아이가 유산되거나 조기 분만되거나 저체중아로 태어나기를 바라겠는가? 기본을 그리고 상식을 지키는 현장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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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유통업 사업장들은 변형된 형태의 교대근무를 한다. 마트가 영업을 하는 아침 10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낮에 손님이 많은 시간이 겹치는 변형된 형태의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즉, A조의 근무시간은 아침 10시~오후8시, B조의 근무시간은 오후 12시~밤10시이다. 2)교대근무란 일상적인 낮 시간을 제외한 시간의 근무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의 일상적인 낮 시간이라 함은 아침 7시에서 저녁 6시를 말한다. 즉 이 시간을 벗어나는 것을 소위 교대근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