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식]의 내 맘대로
자본과 권력이 꿈꾸는 유비쿼터스 사회. 모든 사물에 전자칩이 깃들고 온라인을 통해서 무엇이건 제공받을 수 있는 이 사회는 희망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극단화된 감시사회의 전형이다. 필자는 지문날인 폐지를 필두로 전자감시 반대활동의 선두에서 일해 온 사람이다. 모든 감시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필자를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들어보자.

"엄마가 보고 있다"

감시카메라가 대안인가?

지문반대 finger@jinbo.net / 2005년03월22일 7시39분


“엄마가 보고 있다”
어느 학급 급훈이다. 처음 이 급훈을 보고 뒤로 자빠졌다. 누가 작문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 발칙한 아이디어에 한 표를 던졌다. 그리곤 곧장 서글퍼졌다. 그 엄마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편히 쉬지도 못하고 학교 교실까지 와서 자식을 보고 있어야 하나? 구구절절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 급훈 안에는 입시지옥에 내몰린 아이들의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공부 열심히 하는지, 행여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하지는 않는지 항상 뒷골 서늘하게 지켜보는 그 눈이 엄마의 눈이라니, 이 허탈감을 어찌 해야 할까.

유체이탈로 육신을 빠져나와 물질적 형태를 갖추지도 않은 채 자식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슬픈 “엄마”의 눈길로도 이제는 부족하다. 공부 잘 하는지는 둘째 치고, 이제는 학교 잘 다니는지부터 먼저 확인을 해야 한다. 제대로 학교에는 가는지, 누구한테 얻어터지지는 않는지, 혹시 ‘일진회’로부터 협박을 당하지는 않는지, ‘왕따’라도 당하고 있는지 “엄마”의 눈만으로는 도대체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도 첨단으로 무장한 기술의 은혜가 강림한다. 학교 곳곳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화장실, 담벼락, 옥상, 쓰레기장 등 소위 “취약구역”에다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여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겠단다. 학생들을 학교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고 하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발상이다.

교육인적‘자원’부. 학생들을 인적 ‘자원’으로 취급하는 이 몰지각한 국기기관은 결국 제 본색을 이렇게 드러내고 만다. ‘자원’을 가공하여 사회에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인 학교생활인 고로 공정의 원활한 가동과 작업안전을 위해 컨베이어 벨트 구석구석을 비출 수 있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다운 발상이다. 학생들을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했다면 이런 졸렬한 방안이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올 수가 없다. 항상 책상머리에서 백년지대계를 지들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교육인적‘자원’부, 결국은 이런 식으로 또 삑사리를 내고 말았다.

학교가 무슨 몰래카메라 작품제작소냐? 화장실에다가 카메라 설치해서 도대체 뭘 보려는 건가? 교육인적‘자원’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결정적 원인은 학생들의 문제가 학교 담벼락 밖으로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는 단견 때문이다. 학교 안에 감시카메라 설치하면 ‘일진회’는 학교 밖으로 나와서 하던 짓 계속 하면 그만이다. 요새 아이들 머리 돌아가는 거, 교육인적자원부 책상물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민하다. 그깟 감시카메라 피할 방법 도처에 널렸다. 교도소 가는 것도 무섭지 않은 폭력청소년들이 카메란들 그냥 두겠나? 아까운 세금 퍼부어 공들여 설치한 감시카메라는 졸지에 파손되기 십상이거나 화장실에서 변냄세에 찌들어갈 뿐이다. 괜히 어느 날 포르노 사이트에 ‘모 고교 화장실 몰카’ 시리즈나 올라가기 딱 알맞다. 아니면 옥상에서 찬바람 맞고 풍화작용을 일으키던가.

사실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놓아야할 대안은 이따위 감시시스템의 도입이 아니다. ‘일진회’라는 전국구 학생폭력집단이 실존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학생들 사이에 집단적 폭력행위가 상존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교교육환경의 전면적인 개선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 평균 40명 선에서 왔다 갔다 하는 각 학급 정원을 35명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과거 한 반에 60~70명, 많게는 100명이 넘는 학생들이 2교대, 3교대 수업을 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은 발전이라고 할 것이나 담임교사 1인당 4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일일이 지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35명이라는 숫자 역시 한명의 담임이 일상적인 ‘전인교육’을 수행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숫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20명 안쪽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관심이 많아질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학생들의 문제점을 되도록 신속하게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지도교사를 배치하거나 상담전문 교사를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과과정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일반 교사들이 전문적인 상담역까지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요구이다. 또한 학생들로 하여금 인성의 발전과 자아의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입시교육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현재의 학습과정으로는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보다는 시험기계를 양산하는 결과밖에 기대할 수가 없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학생들이 그동안 보아왔던 세계 이상의 다른 세계를 접하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더 나가서는 고등학교 정도의 학력만 가지고 있어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을 정부차원에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4년에만 고졸자의 대학진학률이 81%가 넘어가는 이 나라의 현실은 고급인력의 다량 확보라는 인적‘자원’충족의 측면에서 기분 좋은 현상일지 모르겠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거의 모두 대학진학이라는 학업목표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고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수치임을 생각해보면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학력 경쟁 속에 내팽겨쳐진 청소년들에게 무슨 인성의 발달과 자아의 성취를 바라는가?

아이들 머리 위에 감시카메라 설치하면 학교폭력이 예방되고, 스쿨폴리스 제도를 운영하면 아이들이 겁을 먹고 폭력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 지나치게 유치하다. “엄마”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머리 속은 답답하다. 해방되고 싶은 열망으로 넘쳐난다. 거기다가 감시카메라를 설치한다고? 아예 불난 집에 휘발유를 퍼붓지. 그렇게 해서 감시에 길들여진 인적‘자원’들을 배출하거나, 아니면 아예 쓸모없는 ‘불량품’을 제조하게 된다면 그 책임, 교육인적‘자원’부가 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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