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기]의 사노라면
도시빈민운동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전과자들... 나의 삶 속에서 때로는 이들과 다투고 지치고 힘들어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 대화 할 준비를...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유령 마을

최인기 takebest@naver.com / 2005년03월28일 18시13분

-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

강남구 양재천을 끼고 마을 버스는 10분을 더 달려 국민은행 앞에 내렸다. 24시간 편의점을 끼고 돌아서는데 사진으로 만 봤던 철거지역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골목 안으로 천천히 들어서는데 육안으로 보기엔 꽤 잘 지어진 빌라들이 죽 늘어 서 있고

근처의 나무들이며 벤치등 조경 시설도 멋지다. 하지만 올해는 봄이 좀 늦는 편인지 소나무 밑에 그늘진 곳은 한기가 여전하다. 커다랗게 고물상이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들어서니 폐지들과 고철들이 쌓여 있고 그 밑에서는 한참 포크레인이 씩씩거리며 짐들을 쌓아 올리고 있다. 몇 발자국 더 들어서니 붉은 글씨로 '빈민해방 철거민 연대'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낡은 집들이 하나 둘씩 보인다.

입구에는 낮설은 이방인을 경계라도 하듯 강아지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골목 안은 의외로 겉에서 보기보다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작은 화단이며 깨어진 장독에다 심어놓은 파나 나물 같은 것들이 봄을 맞아 한참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있고 창틀 넘어로 슬쩍 방을 훔쳐보니 따뜻한 온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떤 집은 이제 막 공부를 하다 등교를 했는지 공책과 책들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여 있고 이제 막 식사를 한 흔적도 보인다.

저 작은 방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을 상상을 해보니 하루 세끼만 해결한다면 무슨 걱정 꺼리가 있겠는가? 아무런 걱정도 고민 꺼리도 없을 것 같지만....대한민국 서울의 강남구 포이동 동사무소 공식 문건에는 이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방금 눈으로 직접 확인 한 사람들은 유령이란 말인가?

- 사라진 망태 할아버지 그리고 부랑자들 -

망태 할아버지 온다.~ 골목길 저쪽에서 나타난 망태 할아버지, 뒤에 큰 망태를 걸치고 사시사철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반쯤 술에 취해 나타난 망태 할아버지, 지금 30대 후반 정도면 유년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공포의 대상 인 망태 할아버지, 골목길 안을 돌아다니며 집게로 망태에 종이를 주워 담아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다시 생계의 터전을 일군 곳이 바로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다.

젊은 날 이곳으로 결혼와 살고 있는 '포이동 사수 대책위 조철순 (여 47세)'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정부는 1979년 서울4대문 안에 넝마주이, 부랑자들을 모아 소위 ‘자활근로대 또는 재건대’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관리하다가 1981년도부터는 이곳에 정착시켰습니다. 하지만 당시 포이동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전기, 하수도는커녕 화장실조차 없는 그야말로 허허벌판 황무지였습니다. 비가 오면 온 동네가 진흙탕으로 넘쳐흘렀고 한여름에는 양재천이 범람을 하여 자다가도 대피를 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이나 과거나 도시빈민들에 대한 정책 가운데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주를 시키는 것이다. 70년대 청계천 변등 도시빈민 20여 만 명을 경기도 광주로 강제로 이주시켜굶어죽을 위기에 처해지자 폭발했던 투쟁, 80년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등 국제적인 행사에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그리고 수출입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단속과 철거를 당해왔던 노점상과 상계동 등지의 철거민들 이러한 도시빈민 배제 정책은 노출된 판자촌을 가리기 위해 지어진 삼일 아파트와 청계천 고가도로를 철거를 하며 2천년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88년 온 국민이 축제에 빠져있던 올림픽때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포이동은 국가의 어두운 치부이고 국제적인 망신거리라는 이유로 문밖에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굴욕을 감수했던 것은 다시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찰들은 한달에 한번씩 우리가 수집한 고물들을 돈을 계산을 해서 수거 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감시속에서 이렇게 24년간을 악착같이 살아오며 버텨냈던 것입니다."

- 불법점유 '천문학적인 토지변상금" -

황무지 였던 이곳을 개척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들이 거주하는 주변의 지대는 하루가 다르게 천문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서울의 가장 비싼 노른자 땅이 되어버린 강남, 양재천을 끼고 건너편에는 하늘을 찌르며 솟아 있는 '타워 펠리스'가 우뚝 서 있어 누가 보더라도 대조를 이룬다.

'포이동 사수 대책위 김종만 (남 47세)' 총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7년 강남구는 포이동 266번지를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구획정리’사업을 실시하며 도서관부지로 용도를 변경하였습니다. 1990년도부터는 ‘토지변상금’을 부과하였는데 이는 노점상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듯이 불법점유자라는 이름을 붙여 과세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자활대’라는 이름을 붙여 이곳으로 내몰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토지 변상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액수는 주민들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나 104가구 405명에게 일인당 수 천만원의 족쇄가 채워져 재산가압류까지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주민세도 내고 수도전기세도 내며 살지만 이들은 대한민국 주민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출생신고도 학교를 보낼 때도 그리고 결혼을 하여도 다른 곳의 주소를 얻어서 신고를 할 수 밖에 없다. 또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을 하고 싶어도 법으로는 주민이 아니기에 대한민국 하늘에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살아도 보장을 받지 못한다. 작년에는 이곳에서 23년째 살아온 김(58)씨가 군대 간 두 아들에게 빚 7천 만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끓었고 한달후 김씨의 부인도 뒤를 이어 자살한 일까지 있었다.

-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유령마을은 없었다. -

지난 3월 14일 이들은 강남구청 앞에서 전노련 소속 노점상들과 함께 집회를 개최하였다. '전국빈민연합' 확대 강화를 앞두고 함께 연대의 집회를 개최 한 것이다.
이들은 이날 "포이동 266번지를 주거 ‘환경개선’ 지역으로 용도 변경하라 그리고 60억에 달하는 토지변상금을 없애달라" 고 주장을 하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무엇보다도 당장 절박한 것은 주민등록에 주소를 올릴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골목길을 한참을 돌다 보니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인다. 양재천이 보인다.

"4월이 되면 저 양재천 주변으로 갖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봄철이 되면 나물 걱정은 안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물이 하도 맑아서 빨래를 하거나 동네 사람들이 모여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웃들과 함께 멱을 감기도 하고 그랬어요 옛날에 여름밤에 이곳은 그야말로 칠흙 같은 밤이 된답니다... 사람들은 우리보고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건너편 빌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집 값이 떨어진다고 동냥아치라고 놀리거나 때로는 옥상에서 돌을 던져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이들을 설득시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여론이 나빠지거나 민원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쨌든 저희에게는 불리하니까요... 주민등록상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이지만 저희들도 어엿한 이곳의 주민입니다. 몇십년을 살아온 주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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