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로 잡힌 다자간 기구들(Multilateral Institutions Taken Hostage)

다미엥 밀레 & 에릭 투상  / 2005년05월01일 1시23분

최근 다국적 기구 내에서 보수파의 공세가 도를 더해 가고 있다. 우리처럼 다른 논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잠시 쉴 새도 없다. 그러나 이런 좌절은 투쟁의 열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에릭 투상 (Eric Toussaint)
장면1: 2005년 1월 18일 코피 아난 UN사무총장은 국제아동기금(UNICEF)총재로 부시 정부의 앤 배네먼 농무장관 지명을 결정했다. 그러나 UN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미국과 소말리아 단 두 곳뿐이다(189개 국가가 UN아동권리 협약을 비준했다). 우리는 코피 아난이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미국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압력을 받았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장면2. 2005년 2월 28일 코피 아난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으로 수파차이 파닛차팍을 지명했고, 오는 9월 1일부터 4년간의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들이 “수프 박사”로 부르는 이 사람은 현재 WTO의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국제금융자본 및 초국적 기업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세계 경제의 강제적인 규제완화를 희망해왔던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기구가 WTO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놀라운 결정이다. UNCTAD는 남반구 국가들의 관점을 옹호하는 기구로, 특히 가난한 나라들에 비우호적인 경제정책을 끊임없이 요구해온 인사를 우두머리로 둔다면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3세계 국가들은 G77의 깃발아래 항의를 하고 있다. 이번 지명 과정에서 이전에 항상 있어왔던 사전 논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코피 아난 총장은 그의 아들이 연루된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비리가 폭로되면서 그의 입지가 약화되었고, 미국에 쉽게 굴복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장면3. 2005년 3월 7일 조지 부시는 UN 미대사에 존 볼튼을 임명했다. 2003년 전쟁 직전 엘 바라데이가 이라크 무장해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UN 기구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당시, 존 볼튼은 그를 해고하려 애썼다. 미국이 국제형사재판소를 비준하지 않은 데 책임이 있는 사람도 볼튼이고, 2001년 더번에서 있었던 ‘UN인종차별 철폐회의’에서 철수한 사람도 바로 볼튼이었다. 그는 UN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UN은 미국의 지도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까지 나갔다. 그가 UN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의 입장은 명확한 것 같다. UN을 향한 존 볼튼의 적대감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서, 미 의회의 다수(공화당 의원을 포함해서)가 그의 임명을 반대하고 나섰다.

장면4. 3월 10일 조지 부시는 미 국방부의 2인자이자,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의 광적인 지지자였던 폴 월포위츠를 세계은행 총재 자리에 임명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사건은 최근 몇 주간에 일어났던 일들의 결정판이다.

세계은행 총재직을 임명하는 과정은 시작부터 반민주적이었다. 세계은행 총재에 월포위츠를 임명하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외교관계를 상징하는 조치이다. 남반구 국가들에 대해서 세계은행은 바람직한 통치(good governance)를 핵심적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세계은행은 가장 기본적인 민주주의 마저 존중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내가 하는 대로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상황은 더욱 비참한데, 호주 출신의 뉴욕 은행가인 현직 총재 윌펜숀은 1995년 총재로 지명되기 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야만 했다.

  다미엥 밀레(Damien Millet)
세계은행 관료들의 말만 들으면 1980년대 사악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과거의 일일뿐이고, 빈곤과의 전쟁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세계은행의 존재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몇 십 년 간 세계은행의 정책은 최적의 논리에 믿음직하고도 충실히 복종해 왔다. 이 논리는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서 은행을 설립했던 주요 강대국에 항상적이고도 배타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고, 여기서 손을 뗀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거대 은행가나 전직 미 국무부 출신에게 항상 총재자리가 떨어지는지를 이런 사실들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1968년 베트남 전쟁을 수행하고, 미국의 전략적 동맹을 돕기 위한 지정학적 도구로 세계은행을 이용했던 로버드 맥나마라를 지명할 때부터 이런 전통은 이미 세워져 있었다. 맥나마라의 처음 총재임기 5년 동안 개도국에게 대부해 준 돈이 지난 23년간 세계은행 존재기간동안 보다 더 많았다. 목적은 그 고객들이 수행한 외교정책에 대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통해 미국의 전략적 동맹들(자이르의 모부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칠레의 피노체트,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 등)을 지원했다. 폴 월포위츠도 지정학적 목적으로 세계은행을 이용해 온 이런 총재들의 노선을 따를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공식적으로 모든 세계은행 관리들은 추천된 지명을 거부할 수 있다. 지명거부는 항상 유럽출신만을 총재로 뽑아왔던 IMF에서 이미 있었다. 2000년 미셀 캉드쉬가 임기를 마치고, 당시 독일 재무부 장관이었던 카이오 코치 베세르가 유럽 후보로 추천되었을 때,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마침내 협상 끝에 호르스트 쾰러가 총재가 되었다. 그러나 세계은행에서 폴 월포위츠의 지명은 국가들을 대표하는 24개 그룹들이 완전히 만족하면서 만장일치의 찬성을 얻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 미국이 다시 우호적으로 돌아서기를 바란다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프랑스 정부는 WTO총재에 파스칼 라미를,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 베르나르드 코우치너를 앉힐 계획을 꾸미고 있다. 벨기에 정부는 같은 자리에 베르윌겐을 밀고 있다. 영국 정부는 UN개발계획을 노리고 있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상임국이 되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독일, 일본, 브라질, 인도, 남아공, 나이지리아 등은 말할 것도 없다. 비도덕적이고 강력한 거래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어째서 인간개발의 위협에 대한 반대 전선에서 세계은행의 총재는 3세계 시민들에게 한번도 신임을 받은 적이 없는가? 사실,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이자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세프 스티글리츠는 “빈곤과의 전쟁에서 훌륭한 장군을 선택하는 것이 승리를 보장해 주지는 않지만, 잘못된 장군을 선택하면 패배할 위험이 커진다”고 단언했다. 빈곤 확산 정책을 계속 강요하는 자들의 공식적인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명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진짜 전쟁은 빈곤과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은행 및 IMF와 같은 다자간 기구들의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다. 지난 몇 달간의 사건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다른 국제적 구조에 대한 필요를 웅변하고 있다.

[번역 : 변정필(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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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다미엥 밀레(Damien Millet)는 3세계외채탕감위원회(CADTM) 프랑스 위원장을, 에릭 투상(Eric Toussaint)은 CADTM 벨기에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들은 Zedbooks에서 출간한 “누가 누구에게 빚지고 있나?”(2004)와 뭄바이 VAK에서 출간한 “외채사기”(2003)의 공동저자 이다. 이 글은 벨기에 일간지 Le SOIR 4월 16일자에 실렸으며, 필자들은 참세상 창간을 맞아 창간 축하와 함께 이 글을 싣도록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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