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중과 함께 아래로부터 새로운 좌파 프로젝트를"

[해외칼럼주장] 사빠띠스타, 2006년 7월 대선 앞두고 '다른 선거' 준비

엑또르 델라 꾸에바(멕시코)  / 2005년10월17일 12시55분

2006년 7월 6일 멕시코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대선은 6년 마다 진행된다) 그러나 대선 3년 전부터 멕시코에는 ‘선거 전 징후', 즉 정치적 부패, 스캔들과 이에 대한 투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지난 2000년, 제도혁명당(PRI)은 70년 만에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했다. 멕시코는 민주국가 임에도 불구하고 제도혁명당(PRI)이 사실상 단일정당으로서 독재 지배를 해왔고, 사회를 전체주의로 통제했으며, '사회적으로 합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폭력으로 관철시키는 폭압을 일삼아왔다. 1968년 이후 여러 정치,사회운동은 제도혁명당(PRI) 정권에 맞서기도 했고 때론 굴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멕시코 좌파 진영은 많이 성장했고, 멕시코 정치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엑또르 델라 꾸에바
한 예로 1988년에는 좌파의 상당수가 제도혁명당 출신이자 민족민주주의자인 꾸아우떼목 까르데나스(Cuauhtemoc Cerdenas) 후보를 지지했다. 선거에서 까르데나스는 정치적 음모로 인해 당선되지 못했지만 사실상 승리한 것과 다름 아니었다.(까르데나스는 제도혁명당에서 분리해 나온 민족민주전선(FDN) 후보였다. 1988년 대선 당시 투표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개표 전산 시스템이 고장 났고, 이 틈을 타고 제도혁명당 살리나스 후보 측이 득표율을 조작하여 결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후 까르데나스는 민주혁명당(PRD)을 만들었고, 제도혁명당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좌파의 상당수를 민주혁명당(PRD)으로 규합했다.)

그런데 2000년 코카콜라 사장 출신인 빈센떼 폭스(Vincente Fox)와 그의 전통 우익정당인 전국행동당(PAN)이 등장하면서 그간 진행되어온 민주화운동의 여러 성과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당시 선거에서는 '실용적으로 투표하자'는 현상이 대중을 압도했고, 제도혁명당을 권좌에서 밀어냈다. 심지어 좌파 중 일부도 제도혁명당을 밀어내야 한다는 이유로 이런 흐름을 따르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권 교체'라는 명분으로 폭스 정권은 정당성을 확보했고, 개혁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면서 출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정권 교체'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폭스는 유례없는 무능함과 나약함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폭스는 이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속했으며, 멕시코를 미국에 종속시키기 위한 통합 정책까지 구사했다. 게다가 제도혁명당이 낳은 비민주적 구조를 바꾸지 못했다. 예를 들어 노사협조주의적 노동조합 구조는 지속되었으며, 출범하면서 제도혁명당의 국가범죄(70년대 ‘더러운 전쟁’ 때의 여러 실종사건들, 학생들에 대한 학살, 정치적 살인 등)와 관련해 '처벌하겠다'던 약속은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그렇다고 폭스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이 큰 진전을 이룬 것도 아니다. 제도혁명당과 민주혁명당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도 있었지만, 어쨋든 지방에서든 수도에서든 폭스에 대한 지지도는 낮아졌으며, 그가 무능력하고 비전문적인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갈수록 확산됐다.

그래서 '한 국가의 정치변화의 기회는 오로지 6년 마다 열리는 대통령선거 밖에 없다'는 식으로, 폭스는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음을 비공식적으로 선포했다. 그 이후 멕시코는 사회적-정치적 해이, 마약밀매를 둘러싼 전쟁, 부정부패, 여러 정당의 '예비 후보들' 간 상호 공격과 정치적 분쟁들로 얼룩지고 있다.

이 과정에 최근까지 민주혁명당 출신으로, 멕시코시티 시장이었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뻬스 오브라도르(Andres Manuel Lopez Obrador)는 세력을 규합하며, 정치적 힘을 키워나갔다. 모든 여론 조사 기관들이 1년 이상 '오브라도르가 그의 상대편보다 우위에 있으며 대통령 후보로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사'라는 여론 결과를 내놓았다. 연방정부는 이런 대중적 지지여론을 무마하거나 법률 조작을 통해 아예 그가 선거에 출마조차 못하게 하려 하고 있는데, 연방 정부의 이런 어리석고 필사적인 노력은 오히려 '오브라도르의 지지율' 상승을 부채질 할 뿐이었다. 만약 내일이 선거라면 오브라도르와 민주혁명당이 이길 것이고, 제도혁명당이 2위로 밀렸을 것이다.

게다가 주요 기업인들도 오브라도르가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고, 협상을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포퓰리스트(populist)이자 좌파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중도’를 자임하며, '좌파를 대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매일 터지는 부정부패 사건과 의회주의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민주혁명당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오브라도르의 승리가 정치 영역에서의 지정학적 지형 변화를 상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 대한 종속을 극복하고 남미의 다른 진보적 단위들과 함께 할 경우에만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어떻게 드러날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다.

올해 말 공식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될 것이며, 지금까지의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들은 이미 이런 끝없는 ‘쇼’에 지쳐가고 있으며, 정치 지형 전체에 대한 불신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싸빠띠스따의 "다른 선거"

이 제반 상황에도 불구하고 몇 개월 전 또 다른 정치적 주체가 등장했다. 바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선언이다. 이는 공식적인 대통령 선거의 외곽에서 "다른 선거(La Otra Campaea)"라 불리는 사업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며 전국적인 사업 기획을 선포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1994년 1월 1일 대통령 선거 바로 전날, 멕시코 동남부 지역 원주민 마을을 중심으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이 무장봉기를 일으켰고, 마르꼬스 부사령관이 이들의 목소리 역할을 했다. 싸빠띠스따 봉기는 전국을 뒤흔들었고, 살리나스 데 고르따리(Salinas de Gortari)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타격을 가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의 엘리트 정치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비록 제도혁명당이 선거에서 승리를 했지만.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의 위력, 이에 대한 전국적, 국제 시민사회의 엄청난 지원, 그리고 멕시코 내 정치 상황 때문에 정부는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싸빠띠스따의 ‘저강도 전쟁’은 치아빠스에서 계속됐고, 연방정부는 원주민 지역에 수만 명의 군인을 항시적으로 주둔시켜왔다. 원주민 공동체에 기반을 둔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의 인민군은 산속에 흩어져 지내며, 연방군을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전국적 또는 국제적 정치 기획들을 내놓았고, 전지구적 투쟁의 중요한 주체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원주민 권리 쟁취와 원주민 문화 수호라는 그들의 절대적 요구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런 요구는 지난 몇 년 간 거의 유일한 요구였다. 지난 2001년 ‘대지의 색채 행진(Marcha del Color de la Tierra)’으로, 싸바띠스따민족해방군(EZLN) 대표단은 전국을 횡단하면서 '평화 협상' 당시 약속받았던 원주민 마을에 대한 인정과 헌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회는 이런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침묵을 선택했고, 원주민 마을 자치권을 수호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반란지역의 기반을 다졌다. 이런 노력은 ‘좋은 통치를 위한 회의(Juntas de Buen Gobierno)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원주민 마을 내부 통치제도를 지칭함-역주)’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현재의 새로운 선거 국면과 더불어 정치적, 도덕적 해이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설 것을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라깡도나 숲의 여섯 번째 선언'(역주 : 라깡도나 숲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EZLN은 봉기를 일으켰을 당시부터 선언문을 여러 차례 내보냈고 이번이 여섯 번째이다.)을 통해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민주혁명당과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포함한 모든 정당에 대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더 이상 원주민 투쟁에만 자신들을 국한시키지 않을 것으로 - 비록 원주민 투쟁을 여전히 우선시 하겠지만 -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모든 사회적 부문 주체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새로운 대륙 간 회합 등을 포함한 전국적, 국제적 기획을 추진할 것이며, 전 민중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를 만들어내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이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새롭고 진정한 '좌파 프로젝트'를 추동하자고 호소했으며, 이런 모든 노력이 '선거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를 위해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은 공식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선거'를 실천하고 공식 선거 과정 속에서 '소멸된 민중들의 이해에 복무하자'고 호소했다. '다른 선거'는 투표 거부를 의미한 것이라기보다 아래로부터의 대화를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선거'는 2006년 1월 1월에 출범할 예정이며, 이 때 마르꼬스 부사령관은 전국 횡단에 나설 예정이다. 그리고 이후 보다 확대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 대표단이 나서서 멕시코 좌파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단계를 밟아나갈 계획이다. 이런 목표 하에 이미 수백 개 조직과 수 천 명의 사람이 이런 새로운 기획을 조직화하기 위해 치아빠스 숲에 모여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EZLN)과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멕시코 정치 지형에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다. 이들은 향후 수개월 간 전개될 복잡한 상황에서, 그리고 이미 정치 게임에 돌입한 멕시코의 미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복잡하고 미약한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단계를 밟아나가기 시작한 멕시코 사회운동 진영은 지금 상황의 핵심 주체이다. 그러나 단일한 전략은 없다. 어떤 이들은 선거를 앞에 두고 정치인들과 협상을 노골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들은 싸빠따주의를 명확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다. 선거 이후 상황이 많이 변할 것이다. 멕시코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멕시코 좌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다.

[번역] 전소희 -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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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엑또르 델라 꾸에바(Hector de la Cueva) 현재 멕시코 노동연구조사센터(CILAS) 소장이며 자유무역반대행동네트워크(RMALC) 공동대표임. 미주사회동맹(HSA)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1994년 평화협상 당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이 임명한 민간협상단에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