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진 장관 말대로 하면 보육 '시장'도 무한 경쟁만

쭌이의 아이는 태어날 수 있을까?

쭌모{진보블로거)  / 2005년11월09일 18시39분

민주노총. 전국보육노동조합. 한국보육교사회. 서대문참여보육네트워크 등 보육단체들은 8일 보육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여성가족부가 보육을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국공립 신축 감소’와 ‘국공립시설의 인건비 지원 축소 행위’가 보육의 공공성을 위한 기본 토대를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보육단체들은 또한 06년 보육예산안을 폐기하고, 국공립보육 50% 이상 확충, 기본지원금제도 철회와 보육노동자 임금 현실화, 장기적 보육정책과 예산 마련 등을 요구했다. 진보블로거 쭌모 님이 글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오늘, 11월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2006년도 보육예산에 대한 검토가 있었다.

여성부 예산의 90%를 육박하는 비율이 보육예산이다.
보육예산 총액은 2005년 대비 32.1%가 상승했다.
정부가 드디어 보육의 국가책임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나?

그런데 이상하다.
국공립보육시설 점유율 5%선이 무너져 이제는 4.8%이고,
그런데도 2006년도에는 국공립보육시설은 100개만 짓겠단다.
보육의 공공성확보 우짜구 하면서 매년 국공립보육시설을 400개씩 지어서 2008년까지 최소한 국공립보육시설은 전체 시설대비 10%선까지 올리겠다는 정책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뒤적.. 뒤적..그러고 보니 그게 올 9월이었다.
그럼 2007년도부터는 한해에 1200개소씩 짓겠다는 건가? 그건 아닐텐데..
그럼 달랑 한달 반 만에 아무런 설명 없이 보육정책의 기조가 바뀐것일까?
이거 원 구멍가게 가게부도 아니고 일국의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설마??

예로부터 유명한 말 중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이었다.
2008년까지 국공립보육시설 10%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적 계획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여성가족부 장하진장관은 10%달성하겠다는 계획이 도달 가능성이 없어 내부에서 다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 아이들이 줄고 민간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비율에 관한것은....어렵다”는 것이다. 계획을 제출하라고 하면 하겠단다. 그러나 노력은 해보겠지만 어렵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장하진 장관은 정부의 재원투자 없이도 공공 임대 주택 내에 국공립시설을 설치하는 보육시설 무상제공협약을 대한주택공사와 체결했다고 걱정 말라고 복안이 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내년에 임대주택 내에 설치될 계획인 국공립 보육시설의 수는 달랑 46개소이다. 2008년까지 총 합계를 내봐도 510개가 전부이다.

오늘 장하진 장관은 답변 내내 국공립보육시설 짓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유인즉 첫 번째로 지자체에서 부담이 과중해서 안 짓겠다고 하니, 한두 달 정도 여성부 장관님이 몸소 몇몇 지자체를 방문하여 '독려'도 해보았지만 말을 안 듣는 단다.
또 두 번째 이유는 민간보육시설들이 애들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국공립보육시설 짓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에 어렵단다. 그래서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우짜겠냐고 한다.

이제까지 지향하던 보육정책을 포기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이유로는 참 민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낳기만 하라고 그럼 키워주겠다고 호헌한 정부에서 관련예산은 좀 늘여야 면이 서겠고, 그렇게 늘어난 예산 32% .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나?

다시 뒤적 뒤적... 다른 예산은 도통 물가상승분 3%만큼만 늘어났는데..뒤적 뒤적...

아! 저소득가정보육료지원 62.8% 상승.

그러니까 2백80만천칠백 원 버는 가정의 아이까지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어린이집에 보내는 맞벌이 부부의 총수입으로 생각하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수입이지. 좋은 일이지.

근데.. 왠지 느낌이 안 좋다. 좋은 일이기만 한가?

그나마 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은 국공립보육시설 수는 전체 보육시설의 4.8%에서 머물고, 주무부서에서는 국공립설치정책에 대해서 의지가 없는 상황이고..
민간보육시설에 이용하는 저소득층 아동의 수만큼 돈을 직접지불하면, 그 돈은 어디에 쓰일까?
그 돈을 받고 부모들은 질 좋은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게 될까?
그래서 자식 키우는 걱정은 좀 덜 수 있게 될까?

정부는 민간보육시설의 가격규제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한국조세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50인 규모의 보육시설일 경우 0세아(80만원~110만원), 2세아(42만원~57만원), 5세아(27만원~35만원)이 든다고 한다. 정부가 여기서 일정 비율의 부모 부담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민간보육시설에 채워줄 수 있을까? 다 채워주지 못한다면 답은 한 가지 보육료 자율화해서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아이들은 차별화된 보육을 받아야 한다. 어려운 말로 이런 걸 사회양극화라고 하던가?
이제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적 등급에 따라 인생의 스타트라인이 달라지는 것이다.

더 이상한 건 툭하면 신문지상에 터지는 보육시설의 비리문제를 보고도 세금으로 지급된 그 돈이 정상적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한 주간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미취학자녀를 둔 부모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교육비 수준은 32.9%가 5만원이하, 28.8%가 10만 원 이하였으며 무상교육이 맞다는 의견이 22.8%였다. 결국 84.5%가 10만 원 이하의 교육비용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인데 이 엄청난 간극은 어디서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는 보육이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하기 전부터 20년 동안 줄곧, 보육은 공공재이며, 보육시설에 다니는 아이들의 50% 이상은 국공립보육시설에서 보육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물론 초기에는 보육시설의 50%라고 더 심하게 주장했었다.)

정부도 이제까지는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공립보육시설이 최소한 10%는 되야 하지 않겠냐고 해왔다. 물론.. 오늘 장하진 장관이 그것도 어렵겠다고 꼬리를 내리긴 했지만. 어쨌든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오늘부터 여성가족부가 국공립보육시설을 더 많이 짓는 것보다 아이들 머리에 돈을 얹어서 보육시설에 주는 것이 더 맞는 정책이라는 기본보조금 제도는 왜 나온 것일까?
여성가족부가 그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은 보육아동의 형평성이라는 것이다.
여성가족부에서 보육정책에 이 말을 사용하는 취지는 ‘어떤 아동이 민간보육시설을 이용하느냐 국공립보육시설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지원체계를 갖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형.평.성.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말이긴 한데,
이 말은 최소한의 국가책임을 다하고 나서 해야 하는 말이다. 지금 그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국공립시설의 존재 자체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니 모든 아이들을 다 공평하게 시장에서 키우라는 이야기와 같다.

나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정부부처에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닐텐데, 도대체 왜 나의 나쁜 머리에 물음표만 가득 차게 만드는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 기억나는 문구가 하나있다. 여성부 정책 자료에 반드시 등장하는 문구.
"보육예산은 증대되었으나 국민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고..."

국민의 정책 체감도는 내가 얼마를 지원받는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를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보육료의 급격한 상승이나 보육료 자율화 등으로 내가 내야 하는 총액이 늘어난다면, 국민들이 원숭이가 아닌 이상 정부의 보육정책이 훌륭했다고 평가하지는 않을텐데..

여성가족부가 9월에 제출했다가 짤린 2006년 예산안을 보면,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들 모두의 머리수 당 얼마씩을 얹어서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모든 보육시설에 돈을 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름 하여 기본보조금제도.

당시의 예산안을 보면, 매달 41,888원에 시설이용 아동의 머리수를 곱해서 주는 것이다. 그래서 첨엔 그 돈에 '서비스제고지원비'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그 돈이 들어가는 만큼 민간보육시설의 서비스 질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이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예산에 한해의 물가상승분 만큼만 곱해서 인상하려고 해도, 인상비용이 국공립보육시설 100개 신축비용이 나온다. 그 돈을 매해 물가인상분 만큼이라도 올릴 수 있을까? 못 올리면 어떻게 되나? 그럼 당연히 질 높은 운영을 하기 위한 시설 운영비는 모자랄 테니 차액의 돈은 부모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겠지.

장하진 장관은 오늘 여성가족부의 보육정책기조를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이 아닌 기본보조금제도로 전환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이야기 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최소한의 국공립보육시설과 민간보육시설만 남아있는 보육‘시장’에는 무한 경쟁만이 남는다.

내가 부모로서 경쟁력 있는 시설에 찾아서 내 아이를 보내지 못한다면, 내 아이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한 반에서 정당한 월급도 못 받는 선생님으로 부터, 덜 좋은 환경에서 덜 좋은 식단을 제공받으면서 지내야 한다.

앞으로 보육시설의 경영난은 그것이 민간이든 국공립이든, 제대로 원아모집을 못한 원장과 교사의 책임이다.

우리 반 아이들이 줄면 교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감원을 당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없으니 그 시설에 다니는 아이 역시 제대로 돌보아 질 수 없을 거다.

지금도 95%의 민간보육시설은 그렇다고? 그러니 별다를 게 없다고? 그러니 국공립보육시설 안 짓고 그 돈으로 민간보육시설을 지원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쭌이는 이담에 자식을 낳을 엄두 낼 수 있게 될까?
과연 우리 쭌이의 아이는 태어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지금 보육시설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 걸까?

누가 내 머릿속의 이 무수한 물음표들을 없애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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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쭌모 님은 전국보육노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